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1일 개최한 '형사 사법 및 행형절차 과정상의 장애인 인권침해 현황과 대책' 토론회 모습. ⓒ에이블뉴스

#1=지적장애인 남성 A씨. 타인에게 장기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비인간적인 생활환경 속에서 살다가 인권센터에 구조되어 생활시설로 인계됐다.

재판에서 상대방 변호사가 ‘지금 생활하는 곳이 어떠냐, 가족 같으냐’라고 묻자 ‘예’라고 답했다. ‘그럼 그때 당시 생활했던 곳은 어땠느냐, 가족 같았느냐’라고 묻자 역시 ‘예’라고 답했다.

질문방식에 대해 항의하려 했으나 판사에 의해 제지당했고, 결국 가해자는 무죄가 선고됐다.

#2=커튼이나 식탁보 등 부착된 ‘레이스’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여 온 지적장애인 B씨. 20대 여성이 입고 있는 치마의 레이스에 얼굴을 부비는 일이 발생됐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려고 하자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려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B씨 모친이 지적장애인임을 설명하고 고소를 취해하달라고 사정했지만, 피해자는 B씨의 처벌의사가 확고했다. 결국 담당형사까지 나서 피해자를 설득했고, 피해 여성은 B씨가 성 충동을 억제하는 약물 주사를 맞는다면 취하해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3=한 여중생이 다운증후군 장애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무작정 A씨가 근무하던 인근의 보호작업장을 방문해 근로하는 장애인을 한 줄로 세우고 범인을 지목하라고 했다.

당시에는 용의자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한달여 뒤 길에서 A씨를 다시 만난 여중생은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서 A씨는 연행됐고, 단독으로 조사도 받았다.

A씨는 지적장애로 인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엉뚱하게 범행을 시인하는 진술을 하게 됐고, 담당형사 조차도 진술을 어떻게 받아 적어야 하는 지 난감했지만 팀장의 ‘그냥 대답한 대로 써서 처리해라’는 지시를 받아 결국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처리했다. 결국 재판에서 A씨의 무죄가 선고됐다.

이처럼 형사·사법 및 행형절차 과정상의 장애인 인권침해가 빈번히 발생되고 있다.

장애인의 경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형사소송법 등에 따라 형사·사법절차에서 신뢰관계자, 진술조력인 등을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경찰, 검찰, 재판단계에서 관련 편의를 보장받지 못해 가해자로 몰리거나 또는 피해사실을 제대로 진술하지 못하는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21일 이룸센터 교육실Ⅱ에서 개최한 ‘형사 사법 및 행형 절차 과정상의 장애인 인권침해 현황과 대책’ 토론회에서는 개선 방안과 관련,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장애여성 성폭력, 형량 높이는 것만이 대책 아냐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의 형량을 높이는 것보다는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전담재판부, 전담수사관제도의 시행이 바람직하고 제언했다.

염 변호사는 “도가니 사건 이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전면 개정됐는데, 항거불능 조항이 없어지고, 가해자 형량도 징역 7년 이상으로 대폭 강화됐다”면서도 “형량이 높아진다고 과연 피해 장애여성한테 좋은 거 같지는 않다. 징역 7년이면 살인(징역 5년)보다 더 높은데 범죄 사실을 유죄로 쉽게 인정하기 어려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앞으로 개정 방향도 가해자의 형량을 높이는 것만으론 불리하다고도 생각된다”면서 “오히려 피해 여성의 진술 환경을 개선하거나 법률적인 지원으로 (여성의) 피해사실을 정확히 전달해 합당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성폭력 피해 장애여성 전담 수사관·재판부 필요

특히 염 변호사는 법관이 피해 장애여성의 특성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가려지기 때문에 재판절차에서의 진술능력 문제가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재판부가 진술이 일관 되지 않고 신빙성 없어 믿기 어렵다고 판시하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재판부는 지적장애 특성상 일관되게 진술하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인 취지를 보면 항거불능에 속해 유죄로 판결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염 변호사는 “형량 높이고 진술보조인, 법률조력인 아무리 도입해도 재판부의 인식 달라지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장애에 대한 인식 있는 사람이 판시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면서 “성폭력 피해 장애여성을 담당하는 전담수사관, 전담재판부가 정말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장애 특성을 고려한) 질문방식이나 질문을 위한 도구개발, 피해사실을 진술 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이 일반화되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또 다른 토론자들은 지난 3월, 10월 각각 법률 개정에 따라 도입 된 법률조력인과 진술조력인 제도 인식 부족으로 형행 과정 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보완점을 내놓기도 했다.

법률조력인제도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폭력의 피해를 입은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에게 검사가 국선변호인을 지정해준다. 여기서 법률조력인은 형사 재판에서 피해자의 사실상 법률적 대리인 역할을 한다.

진술조력인제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에 따라 13세 미만 아동·장애인의 경우 진술조력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성폭력 피해를 당하더라도 진술능력이 취약해 수사·재판과정에서 의사소통의 애로사항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법률조력인 장애이해교육 부족…체계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서재경 활동가는 “현재 법률조력인 제도가 실시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법률조력인 교육과정에서 장애이해교육은 턱 없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법률조력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조차도 ‘아직도 장애인을 모르겠다’며 법률조력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 활동가는 개선 방안으로 “법률조력인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커리큘럼으로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검경 직무교육에 진술조력인제도 포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남지소 인권센터 박수인 팀장은 “진술조력인이 동석함으로써 수사과정상에서 장애인에 대한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든지, 일반적으로 장애인을 가해자로 몰아가지 않게 한다든지 장애인당사자에게 불리한 진술이 진행되지 않도록 확인 할 수 있으니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팀장은 “법률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과정에서 진술조력인제도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수사담당자들이 조력인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검·경찰의 직무교육에 반드시 진술조력인 제도 및 장애인식교육을 포함시켜 진술조력인의 실효성을 강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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