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발행한 '인권상담사례집' 표지 모습. '인권상담사례집'은 2010년 7월 1일부터 2011년 6월 30일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상담사례들이 정리, 분석돼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성폭력을 당해 검찰조사를 받던 지체장애 3급인 장애여성 A씨는 검사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했다. 검사는 검찰조사에서 "성관계할 때는 좋죠? 막상하고 나면 좋죠?"라며 성희롱을 일삼았다.

노점을 하는 4급 시각장애인 B씨는 공무원이 내뱉은 장애인 비하 발언에 언짢은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신고를 받고 단속을 나온 군청 직원의 요구로 노점 물건을 정리하던 중 언쟁이 있었는데, 군청 직원이 "눈도 병신이고 다리도 병신이네", "병신 육갑하네" 등의 모욕적인 말을 건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를 사용하는 C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자 백화점 직원으로부터 출입 제지를 당했다. 쇼핑하는 동안 아이들을 맡긴 키즈 카페에 아이들이 잘 있는지 C씨가 확인하려 하자 직원이 달려나와 "다른 엄마들이 안 좋아한다"는 이유를 들며 C씨를 막아섰다. 백화점 홈페이지에 이같은 사연을 남기자 뒤늦게 사과하겠다는 말이 돌아왔지만, 이미 C씨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해, 큰 상처를 받았다.

위의 사례들은 '인권상담사례집'에 실린 상담 사례 중 장애인 관련 상담 일부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달 25일 2010년 7월 1일부터 2011년 6월 30일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상담사례를 담은 '인권상담사례집'을 발행했다. 사례집은 22,596건의 상담사례를 16개 항목으로 정리, 분석돼 있다. 상담내용은 실제 상담을 기초로 독자들이 읽기 쉽게 구어체 문장으로 재구성됐다.

사례별 인권상담 항목은 ▲형사절차 ▲구금시설 ▲군대 ▲정신병원 ▲표현의 자유 ▲막말과 인격권 ▲정보인권 ▲학생인권 ▲장애인차별 ▲성희롱 ▲나이차별 ▲차별하는 사회 ▲사회적 약자 ▲이주민 인권 ▲북한 인권 ▲기타 등이다. 특히 사례집에는 유형별 상담 현황 및 접수경로별 상담현황은 물론, '인권상담 10년 통계' 등이 포함돼 있다. 인권상담을 진행해온 상담원들의 에세이도 실려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사례집은 인권위 홈페이지(www.humanrights.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래에는 인권상담사례집에 실린 '장애인차별'과 관련된 상담 및 인권위 답변 사례를 몇개 정리해 본다. 내용은 인권상담사례집 원문 그대로 싣는다.

폭행, 가혹행위=구치소에서 장애인 아들을 40분 동안 때렸어요.

*상담:아들은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오전에 면회를 갔으나 3시간을 기다려 겨우 면회가 되었습니다. 아들의 얼굴 양쪽 볼이 까맣게 죽어 있었고 손목과 발목에는 빨갛게 수갑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점심밥도 못 먹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가슴이 답답하여 소리를 지르자 기동대원들이 손과 발에 수갑을 채우고 목을 조르고 얼굴을 때렸다고 했습니다. 오전 10시경부터 약 40분간 맞았다고 하는데, 면회를 신청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아들은 맞고 있었던 것입니다. 맞은 장소는 어딘지 모르지만 아들 말로는 CCTV에 찍혔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정신장애가 있어 숨이 가쁘거나 불안해하는 증세가 있습니다. 구치소에서 아들의 병을 알고 배려하도록 하기 위해 진단서와 진료 기록을 제출하고자 면회를 갔던 날이었습니다.

*인권위 답변:「대한민국헌법」 제10조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구금시설의 수용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교도관에 의한 폭행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었다면 인권위에 진정하십시오. 인권위가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 조사할 수 있습니다. 한편 장애인 수용자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장애를 고려하지 않는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장애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인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수 있습니다.

복지시설 내 성희롱=정신장애인 시설 원장이 회원들에게 성희롱을 했어요.

*상담:정신장애인 시설 원장이 회원들에게 성희롱을 했어요. 정신장애인 사회복귀시설 이사장입니다. 시설 원장이 여자 회원을 저녁에 불러내 중국집에 데려가서 “자위행위를 몇 차례 하느냐, 나는 부인하고만 한다, 놀러 갈까”라고 했고 다른 회원 두 명을 불러서 운전기사와 무슨 관계인지 등을 집요하게 캐물었습니다. 회원들이 이에 항의하자 한 달간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습니다. 경찰에도 진정서를 내 현재 경찰에서 조사하고 있지만 언어적인 성희롱이라서 처벌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원장을 해임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권위 답변:위원회에 진정하여 판단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수사기

관에서 수사 중이라면 각하될 수 있습니다. 원장을 형사 처벌하지 못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 언어적인 성희롱 혐의를 인정한다면, 이를 근거로 이사회에서 징계위원회를 열어 원장의 직위해제 여부에 대해 검토하시는 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일단 위원회에 진정하여 담당 조사관이 배정되면 의논해보세요.

교육=현장학습에 보내려면 각서를 써야 한답니다.

*상담:6세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아이가 말이 늦고 반복적 표현이 잦은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데, 며칠 전 방문상담을 했더니 원장이 현장학습에 보내지 말라면서 만일 보내려고 한다면 각서를 쓰라고 요구했습니다. 각서의 내용은 아마도 소풍을 갔을 때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다쳐도 유치원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보내야 할까요?

*인권위 답변:현장학습에 가게 하려면 각서를 써야 한다는 거군요. 마음이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교육책임자는 특정 수업이나 실험·실습, 현장견학, 수학여행 등 학습을 포함한 모든 교내 활동에서 장애를 이유로 참여를 제한하거나 배제, 거부해서는 안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단 학교 측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내용을 들어 각서 요구가 부당하다는 주장을 해보시고, 그래도 각서를 강요한다면 인권위에 진정 접수하여 해결책을 찾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정보통신=IPTV와 디지털방송 서비스 업체들은 장애인 시청편의지원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상담: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실시간 TV 방송은 리모컨 채널 버튼을 눌러 시청이 가능하지만, VOD 서비스(지나간 방송 다시 보기 및 별도 추가로 제공하는 유료 콘텐츠)는 화면에 표시되는 글을 읽고 메뉴 안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보니 시각장애인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인차별 및 권리 구제 등

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3항이 개정되었는데도 우리나라 IPTV와 디지털 방송서비스 사업자들은 아직 법대로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권위 답변: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시청편의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3항과 관련해 시행령이 개정되었음에도, 장애인의 방송매체 접근에 편의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면 인권위에 진정 접수하여 차별 여부를 판단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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