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생활실태 전수조사’ 실시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에 대한 법원의 명령을 촉구하며

노숙 생활을 하던 발달장애인이 음식을 훔치다 구속되는, 소위 ‘현대판 장발장’ 사건이 벌어졌다. 법원은 강원 춘천시에 있는 무인 점포에서 물품을 반복적으로 훔친 30대 발달장애인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발달장애인 A씨는 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콜라 1개를 계산하지 않고 가지고 나가는 등 올해 2월 9일부터 5월 20일까지 총 67회에 걸쳐 약 17만 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혐의로 기소되었다.

A씨의 가족은 A씨를 더 이상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A씨는 상당한 기간 노숙 생활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복지 사각지대에서 생존을 위해 범죄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발달장애인 A씨의 상황,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처해있는 열악한 지원체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 각각 안타까움과 우려를 표한다.

법원은 A씨에 대해서 “석방은 곧 방치”라며 징역 6개월을 선고했는데, 이는 열악한 발달장애인 지원체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묻지 않은 채 오로지 힘없는 개인에게 그 원인을 찾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법원은 범죄를 저지른 발달장애인에 대한 처벌에만 방점을 둘 것이 아니라, 이들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도 같이 물어야 할 것이다.

지원체계의 부재로 인해 노숙 생활로 내몰린 발달장애인의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0년에 서울 서초구에 살던 30대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지원하던 어머니가 사망하자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거리로 나와 노숙 생활을 하다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한 사회복지사가 이 발달장애인을 발견하면서, 그를 홀로 키워왔던 어머니의 시신 역시 방치된 지 6개월 만에 발견되었다.

이렇듯 발달장애인이 노숙 생활을 하거나, ‘염전 노예 사건’처럼 강제노역을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는 현재까지 발달장애인에 대한 생활실태 전수조사를 단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

진작에 발달장애인에 대한 생활실태 전수조사가 실시되었다면, 서울 서초구의 발달장애인이나 A씨에게 벌어진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해야 할 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A씨에 대한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하기는커녕 지역사회로 돌아갈 시 노숙 생활로 돌아갈 확률이 높다는 의견을 개진했고, 법원은 “향후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입소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라며 A씨를 시설로 보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보인 무책임과 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부모들이 수십 년 동안 투쟁한 이유는 부모가 없더라도 우리 자녀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 재판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사회 내에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달장애인들은 A씨의 경우처럼 길거리에 방치되거나, 시설로 보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원은 우리에게 이런 ‘불행한 선택지’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지역사회 내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지금 당장 구축할 것을 명령해야 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다음과 같이 법원에 요구한다.

하나. 법원은 국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정부에게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발달장애인을 확인·지원하기 위한 ‘발달장애인 생활실태 전수조사’를 지금 당장 실시할 것을 명령하라!

하나. 법원은 발달장애인이 살해되거나 생존 범죄에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정부가 지금 당장 구축할 것을 명령하라!

국가의 무책임으로 인해 발달장애인들이 ‘현대판 장발장’이 되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러한 현실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2022년 8월 3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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