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었다. 이제 10여 일 후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보통은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며 희망을 가지게 되곤 한다.

그러나 제132주년 세계노동절을 앞둔 우리 노동자들에게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는 희망이라는 단어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후보 시절부터 반노동 친기업적 행보를 보여 온 윤석열 당선인이기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에서 마련하고 있는 노동정책의 기조 역시 반노동 친기업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의 노동 현실은 어떻게 될까? 일반 노동계의 우려처럼 우리에게도 어두운 미래가 다가오게 될까? 아니면 장애인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희망의 시기가 찾아오게 될까?

참혹하다 못해 존재 자체가 지워져 왔던 중증장애인들의 노동 현실을 폭로하며 벌인 지난 수년간의 투쟁의 결과로 서울시를 시작으로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공공부문의 장애인고용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상품생산 위주의 노동에서 가치생산중심의 노동으로 장애인 노동만이 아닌 노동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의 모델이 되고 있다.

다만 이것이 민간영역의 중증장애인 고용을 촉진하는 매개로는 작용하지 못해 민간의 장애인 고용률은 정체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이 창출되는 일자리보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로 대체되어 사라지게 되는 일자리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 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현실에서 민간 영역의 장애인 고용률의 제고는 더욱 쉽지 않은 과제일 수 있다.

게다가 수십 년째 문제 제기되어오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제외 조항 폐지의 문제는 아직 사회적으로 공론화조차 되고 있지 않다. 생산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경우 최저임금 이하로 임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은 임금의 결정 기준이 생산성이라는 대중인식 탓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다면 동일한 생산성으로 동일한 노동을 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더구나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최저생계의 보장을 법으로 정해놓은 것인데. 장애인이라고 해서 최저생계 이하의 조건을 감수하며 일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며 인간 존엄의 침해다.

제대로 된 국가라 한다면 민간 기업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장애인을 최저임금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국민의 최저임금을 국가가 지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대한민국은 국가 차원에서 장애인 차별과 인간 존엄의 침해를 용인하는 비정상적 노동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수위에서 밝힌 장애인 노동정책에는 이런 가치생산중심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중증장애인 일자리 확대라든지, 최저임금적용제외 폐지를 통한 장애인 노동의 정상화라는 장애인 노동에 대한 철학은 찾아볼 수 없다.

고작 장애인에 적합한 민간·공공부문에서 새로운 직업 모델을 만들고, 디지털 전환 시대에 필요한 디지털 훈련센터를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 전부다. 새로운 일자리가 아닌 ‘직업모델’을 만들고, 장애인 접근이 어려운 비장애인의 노동환경을 장애친화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훈련센터를 확대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의 노동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만 시키겠다는 거다.

이는 궁극적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민간이 해야 할 일이지 공공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윤석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발상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대로라면 현재 그나마 공공영역에서 견인하고 있는 장애인고용률 정상화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인간의 일자리가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잠식되어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은 상품의 생산이 아닌 가치의 생산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치생산 노동의 임금은 민간의 개별기업이 아닌 공동체가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시대의 노동은 공공영역의 역할이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철 지난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을 추진하게 된다면 노동 소외계층이 더욱 열악해질 뿐 아니라 국가경제 전체의 심각한 퇴행을 가져올 것임이 분명하다,

이에 우리는 새로운 희망이 아닌 새로운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속도와 생산성을 중시하는 상품생산이 아닌, 인간 존엄과 연대를 중시하는 가치생산 중심의 노동철학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먼저 우리 내에서부터 실천으로 체화해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속도와 생산성을 중시하는 반노동자적 습속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하며, 그렇게 획득한 정당성으로 윤석렬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반노동자적 반장애인적 폭거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단법인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 이번 제132주년 세계노동절을 노동패러다임 전환의 시기, 대한민국 장애인 노동운동의 새로운 원년을 선포하고, 윤석열 정부의 장애인 노동정책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투쟁을 준비해 나갈 것이다.

2022년 4월 29일

제132주년 세계노동절에 즈음하여

사단법인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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