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도 했던 ‘장애등급제 폐지’가 지난 7월 1일부터 단계적 시행됐다. 개인별 특성과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사람을 등급으로 매기던 과거로부터 단절의 첫발이다. “장애인들이 맞춤형 서비스를 받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며 대통령도 SNS를 통해 의미를 부여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장애인권단체들은 서울 서대문구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기존 등급제를 대신해 실시하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가 등급제와 다를 바 없이 차별적이고 배제적임은 물론, 한정된 예산에 맞추다 보니 지원 규모는 오히려 줄었다는 것이다.

‘종합조사표’상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장애인과 그 가족은 자신들의 무능을 추궁당하고 입증해야 한다. 장애 유형에 따른 고유한 차이가 점수로 경합하다 보니, 서비스를 받기 위해 장애인들은 유형별로 경쟁 아닌 경쟁을 해야 할 상황이다.

등급제나 조사표나 복지를 장애인의 권리가 아닌 시혜로 보는 관점도 달라지지 않았다. 장애등급제가 종합조사표로 껍데기만 바꿔쓴 격이다. 제도를 도입만 하고 예산은 마련하지 않으니 실제 현장에선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오히려 삭감될 위험의 발달장애인들까지 생겼다.

2019년 장애인 관련 총예산이 약 6조6000억 원이다. 최근 국토부와 지자체장들 사이에서 논란인 ‘동남권신공항’이 추진된다면 들어갈 예산이 대략 10조 원이다. 한 해 우리나라 장애인들을 위해 편성된 예산을 다 끌어모아도, 사업타당성도 정책합리성도 없는 공항 하나에 들어갈 예산에 못 미친다는 말이다.

꾸준히 증가는 하고 있지만 여전히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인 장애인 예산. 나라마다 분류 기준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 장애인 예산이 현저하게 적은 수준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내년에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라는 근본적 정책 패러다임 전환에 걸맞게 예산 확대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작년 대비 올해보다 더 적은 인상률의 장애인 예산이 현재 복지부와 기재부에서 논의 중이다.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이다. 정부는 보도자료와 브리핑으로, 대통령은 SNS로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인가. 장애등급제 폐지 시행의 첫날에 결국 천막을 칠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들에게 답을 내놔야 한다.

2019년 7월 10일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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