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8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차별 집단진정 제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인 부모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서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에이블뉴스

장애인차별 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지 만 2년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는 차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으로 달려가는 약육강식의 우리 사회, 약자를 되돌아보지 않는 우리 사회를 혹자는 동물의 왕국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 장애인들이 앞장서보지만 아직 갈길은 멀어 보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왕국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일 뿐입니다. 최소한 이것만은 지키자는 사회적 약속인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로 접수된 장애차별진정은 줄지 않고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접수된 장애차별진정은 745건입니다. 성별, 신분, 나이, 인종 등 나머지 차별진정이 932건인 것과 비교하면 장애차별진정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장애차별은 공적인 영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설치하고 있는가하면 은행의 현금인출기는 시각장애인은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증과 장애인복지카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가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건널 수 없는 횡단보도가 아직도 방치되고 있고, 심지어 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투표소도 여전히 설치되고 있습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하는 학교도 엄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가장 고질적인 것은 보험가입 차별입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절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충돌하는 상법 조항은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4월은 장애인의 달입니다. 4월 20일은 서른번째 맞는 장애인의 날입니다. 4월을 맞은 장애인들은 웃을 수 없습니다. 장애인 차별의 현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은 거리로 나가서 장애인 차별 철폐를 외치고 있습니다. '차별에 저항하라'는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장애인 차별을 없애기 위한 움직임은 지역별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420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인천공동투쟁단이 지난 4월 1일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투쟁 선포식을 개최하고 본격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탈시설·자립생활, 교육권, 이동권, 장애아동 복지 등 주제별로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릴레이 기자회견을 벌입니다.

420 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는 지난 2일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정책요구안 설명회'를 시작으로 장애인차별 철폐 투쟁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7일에는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출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장애인차별 사례를 모아 집단 진정을 하고, 장애인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문화제도 개최할 계획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차별의 현실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차별의 현실을 담아낸 영화들을 모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상영했습니다. 지난 8일 시작된 이 영화제는 오늘(10일) 폐막하게 됩니다. 마치 군대와 같은 시설에서 탈출한 장애인들의 이야기,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지 못하는 현실 등이 스크린 위로 올려졌습니다.

장애인 부모들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 집단으로 진정을 냈습니다. 무려 130여건의 진정서가 지난 8일자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됐습니다. 아동 돌봄 서비스가 없어서 발생한 차별, 재활치료서비스와 가족지원서비스가 없어서 생긴 차별, 보조기기가 없어서 생긴 차별, 희귀난치성질환을 갖고 있음에도 의료적 지원이 부족한 차별 등 다양한 사례들이 담겼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마를 앞둔 장애인예비후보자들도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요청을 했습니다. 바로 장애인예비후보자들에게는 활동보조인을 지원할 수 없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 때문입니다. 후보자는 활동보조인 지원이 되고, 예비후보자는 활동보조인 지원이 안된다고 합니다. 장애인 예비후보자가 공천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막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시설 운영자들이 지적장애인들에게 특정 후보에 대한 투표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한 박창우님의 기고는 참 뼈아픕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이용해 무언가 이익을 노리는 인간들, 어떻게 해야할까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이 2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자치법규 속에서는 장애인차별 조항들이 남아 있습니다. 정부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충돌하는 자치법규들을 조사해서 개선을 하는 것이 마땅한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장애인당사자들이 모니터단을 꾸려서 직접 조사에 나섰습니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장애인 당사자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장애인생활시설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서비스를 요구하고 나선 것입니다. 시설 서비스가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미국의 옴스테드 판결이 한국에서도 가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가를 상대로 지역사회에서의 사회복지서비스를 요구하는 변경신청을 제기했던 장애인당사자들이 관할 지자체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6일 오전 11시 대학로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서의 기자회견 모습. ⓒ에이블뉴스

보이스아이를 적용해 인쇄한 <한겨레 21> 804호를 보니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가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제7회 인터뷰 특강에서 복지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복지에 쓰인 돈이 생산요소로 투입되는 분야가 교육·의료·주택이다. 노르웨이는 석·박사까지 학비가 무료다. 부유세가 있는 프랑스는 대학 등록금이 30만원이다. 심지어 스리랑카도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그 아이들이 잘되면 나라에 도움이 되고 그 도움이 결국 내게로 온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다. 돈이 남아서 복지를 하는 게 아니다. 철학의 문제다. 여기서 진부와 보수가 갈리는 것다. 한 나라다 생산해낸 국내총생산(GDP) 중 얼마를 나누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우리나라 복지 예산은 28%다. 프랑스 50%, 미국 35%, 스웨덴은 57%다. 0%인 나라도 있다. 동물의 왕국이다.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해마다 복지 예산을 올려서 인간의 왕국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동물의 왕국으로 갈 것인지."

이와 관련 노회찬 대표는 결국 정치가 변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연대의식이 확산돼야할 것입니다. 특히 장애 문제와 관련해서는 관점의 전환에서부터 출발해야할 것입니다. 후천적 장애인이 90%가 넘는다는 통계는 장애가 바로 사회적 결과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인구의 10%가 장애인으로 추정된다는 것은 바로 장애가 나와 부모와 형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장애문제는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지성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조차 장애문제는 외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더 이상은 안됩니다.

<작은 연못>이라는 영화가 오는 15일 개봉합니다. 6.25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사건인 노근리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영화인들과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어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보고 노근리사건의 생존자들도 현재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매우 충격적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은폐됐던 우리의 아픈 과거가 적나라하게 담겼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진실을 뒤늦게서야 알게 된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똑똑히 마주해야할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불편하겠지만 꼭 알아야합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이 왕국이 아닌, 인간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똑바로 알아야합니다.

뒤늦게 밝혀진 6.25전쟁 양민학살 사건인 노근리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 이 사건의 생존자들은 현재 장애를 안고 살아아고 있다. 4월 15일 개봉. ⓒ노근리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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