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마지막 날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

4월은 장애인의 달입니다. 그리고 올해 4월 20일은 서른 번째 장애인의 날이어서 더욱 의미가 새롭습니다. 그런데 4월을 맞기 직전, 3월 마지막 날인 지난 수요일 오후 국회에서 한마디로 ‘장애인을 우롱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장애인연금 대상자를 축소한 채로 장애인연금법이 통과된 것입니다. 표결에 참여한 국회의원이 201명이었는데,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반대 토론에 나선 국회의원도 없이 곧 바로 표결에 들어갔습니다. 그 국회의원들 중 몇명이나 자신들이 던진 표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요?

어쨌든 장애인연금법의 제정으로 오는 7월 1일부터 장애인연금이 장애인들에게 지급될 수 있게 됐습니다. 장애인연금법안이 통과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던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연금법이 통과되자마자 준비하고 있던 보도자료를 언론에 뿌렸고, 꽤 많은 언론들이 장애인연금이 도입돼 장애인들이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기사들은 보건복지부가 써준 보도자료를 요약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새로 제정된 장애인연금법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장애인연금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던 그날 아침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기초장애연금법안이라는 명칭으로 보건복지위에서 건너온 법안을 장애인연금법안으로 수정했습니다. 법안 명칭을 바꾼 것은 크게 의미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법안명칭보다는 과연 나도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와 받게 된다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에 관한 것입니다. 연금 수급 대상과 액수가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게 기획재정부 써놓은 시나리오대로

그런데 연금액은 이미 법 제정 이전에 확정돼 있었습니다. 7월부터 12월까지 장애인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서 준비된 예산은 1,519억여 원인데, 이 돈으로 1인당 월 9만원에서 15만원의 장애인연금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은 총 32만 5천여명으로 전체 등록 장애인의 13% 수준입니다. 장애인 100명 중 13명만이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기초노령연금은 노인 10명 중 7명이 받고 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는 예산안에 장애인연금 예산이 너무 적게 편성돼 있다고 판단하고 여야 합의 하에 3,185억여 원으로 증액시켰는데, 지난해 말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한나라당 단독으로 열리면서 무려 1,666억여 원이 깎이면서 도로 1,519억여 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3,185억여 원의 예산 규모는 보건복지부가 최초로 마련한 것이고, 1,519억여 원은 기획재정부가 보건복지부와 협상하면서 정한 것입니다. 그 치열했던 국회 내에서의 심의 과정이 물거품이 됐습니다. 결국 기획재정부가 최초 정해놓은 예산 그대로 확정된 것입니다.

기획재정부의 무소불위는 법안 제정과정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보건복지위 소속 여야 국회의원들은 장애인연금 대상이 너무 적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장애인연금 대상을 넓힐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았습니다. 1, 2급 장애인과 3급 이하 장애인 중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람이라고 연금 수급 대상을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법안은 웬일인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못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기획재정부가 반대를 하고 나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합의해 놓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획재정부가 정해놓은 대로 되돌리라는 것입니다. 그 치열했던 보건복지위 국회의원들의 법안 심의는 과연 무엇이었던가요? 기획재정부의 몽니를 받아주는 법제사법위원회 국회의원들은 동료 국회의원들(보건복지위)을 과연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인가요? 기획재정부의 억지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누워서 침 뱉는 꼴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요?

결국 법제사법위원회는 기획재정부 주장을 받아들여 법안의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법안의 핵심 내용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바꾼 것인데요. 과연 이런 사례가 또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연금 수급 대상을 애초대로 1, 2급 장애인과 3급 장애인 중 대통령령으로 정한 사람이라고 바꾼 것입니다. 장애인연금 대상이 늘어날 가능성이 아예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산에 이어 보건복지위의 결정이 또 다시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보건복지위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획재정부가 정해놓은 대로 어차피 날 결론이 날 것인데, 굳이 보건복지위에서 예산안과 법안을 심의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참여정부에서도 하지 못한 장애인연금을?

장애인연금 도입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참여정부에서도 감히 도입하지 못했던 장애인연금이 7월부터 도입되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의 소득 보장 체계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한 것처럼 가장 기초적인 장애인 소득보장 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그야말로 전 국민 연금 시대를 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것을 꼭 그렇게 해야 했을까요?

장애인연금을 받는 사람은 더 이상 장애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장애수당은 지자체에서 추가로 마련해서 주는 추가 장애수당이라는 것도 있는데요. 추가 장애수당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장애인연금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지 몰라서 거의 모든 지자체가 올해도 추가 장애수당 예산을 마련해 놓았는데요. 서울시의 경우, 올해 7월부터 지급해야할 추가 장애수당 예산은 마련해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거나 다른 예산을 전용해 예산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서울시 거주 장애인들은 장애인연금을 받는 순간 오히려 소득이 줄어들게 됩니다. 다른 지자체들은 추가 장애수당과 관련해 더 이상 장애수당이라는 이름으로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명칭을 찾아서 지급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장애인연금이 장애수당과 뭐가 다른 것인지 장애인들은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장애수당은 소득으로 잡지 않았었는데, 장애인연금은 소득으로 잡아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의 경우 기초생활보장 생계비가 삭감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산이 대폭 줄어서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 만은 3천억대 예산을 갖고 논의할 때는 장애인연금의 몇 퍼센트를 소득으로 잡을지 진지하게 논의가 됐었습니다.

결국 장애인이니까 계속 참으라는 것

어찌됐든 기나긴 싸움은 끝이 났습니다. 연금 액수도 확정됐고, 연금 대상도 정해졌습니다. 여전히 내가 과연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드리자면 장애인복지카드를 가진 장애인 100명 중 13명 정도만이 7월부터 장애인연금을 받게 됩니다. 1, 2급 장애인은 대상이 되고, 3급 장애인은 두 가지 이상 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만 대상이 됩니다. 장애등급 기준을 충족했다고 다 된 것은 아니고요. 장애등급 기준과 함께 소득과 재산 기준도 충족해야합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최저생계비 120% 이내 소득 인정을 받은 사람)까지는 장애인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득과 재산이 적은 장애인부터 연금 대상에 포함이 될 것인데요. 장애등급 기준을 충족한 사람 중에서 절반 정도만이 장애인연금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복지부는 4월 중으로 관련 안내문을 발송한다고 합니다.

기획재정부가 장애인연금 액수와 대상을 확대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 정부 재정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국가 재정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굳이 장애인연금을 도입하려면 장애수당 예산 빼오고, 장애인차량 LPG연료 세금인상분 사업예산 빼와서 장애인연금 예산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2만원 늘어나고, 장애수당 못 받던 장애인 중에서도 장애인연금 받은 사람이 생겨나니 그 정도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동안 잘 참고 살아왔으니 좀 더 참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정부는 자꾸 장애인에게만 계속 참고 살라고 하는지 참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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