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악의없이 무례하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날 내가 기분 좋게 베풀었던 호의가 한 사람을 무참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모른 채로 살아간다.

선입견을 가지고 장애인을 낯설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를 내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 굳이 이분화 하자면 지나친 조심스러움, 혹은 무례함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릴때는 특히 후자가 마음에 상처가 많이 되었다.

나는 20년째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이 집에서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에 입학을 했고, 취업 준비를 했고, 3곳의 직장을 옮겨 다니며 같은 방 같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집 안은 나에게 완벽한 무장애 영역이 되었다.

하지만, 집밖의 세계는 항상 위험하다고 엄마에게 철저히 교육 받아온 나는 열아홉 살에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한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시기 구분을 할 수 있을만큼 한 순간에 극적인 변화를 경험 해야만 했다.

기숙사에 살게 되면서 주말마다 꼬박꼬박 집에 가긴 했지만, 주중에는 혼자서 빨래도 해야 했고, 밥도 먹어야 했고, 수업도 들어야 했다. 처음 몇 학기는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이 있어서 어찌어찌 버틸 수 있었지만, 혼자 들어야 하는 수업이나 관심 있는 교내 자원봉사 프로그램 있으면 홀로 참여해야 할 일도 생겼다.

결국 나는 한 친구에게 부탁해 내가 자주 다니는 동선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생애 처음으로 받게 되었고, 나는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 그토록 지옥 같이 여기던 흰지팡이만 들고 모르는 길 찾아가기를 매우 자주 경험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한 가운데서 입을 움직여 말을 하는데 내 목소리가 안 들리는 이상한 가위눌림 같은 걸 경험하다가 한 번의 성공 경험 이후 낯선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일이 실은 대단히 힘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 내성적이었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혼자서 다니기를 즐기게 되었다.당시에는 활동지원인 제도나 장애인 콜택시 제도가 정착되기 전이라 지하철을 자주 이용했는데 길 익히는 것이 다른 시각장애인들 보다 더뎠던 내가 집에서부터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지하철역이었다.

대구 지하철은 노선도 단순하고 편의시설도 잘 되어있어 이미 익숙하게 길을 알고 있는 내가 이용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는데 문제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만난 나를 도와주려는 많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고, 내 행동이 뭔가 부자연스럽고 길을 몰라 헤매는 것 처럼 보여서 스스로 도움을 자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도움은 나에게 정말 유용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가령, 나는 길을 기억할때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방지턱이나 벽을 트레일링하면서 직진, 방향전환과 같이 길 가는 방법을 부분 부분 저장해서 기억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길을 가는 방식이 본인이 봤을 때 길을 돌아서 간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팔이나 지팡이를 잡아당기며 함부로 길을 알려주려는 경우도 있었다.

‘이쪽으로 가면 돼요.’라며 내가 모르는 길에 나를 세워 놓고는 친절을 베푼 사람의 뿌듯함이 가득 담긴 발걸음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사람들을 내가 속으로 얼마나 욕했는지 그들은 알까?

지하철을 타서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이 느껴지는 경우 굳이 자리를 찾아서 여기저기 탐색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냥 서 있곤 했는데 자리를 권하며 이런저런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몇 살이냐?’, ‘무슨 일을 하느냐?’, ‘언제부터, 어쩌다가 눈이 그렇게 되었느냐?’ 등등...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항상 ‘눈도 안 보이는데 혼자 지하철을 타다니 너 참 대단하다.’ 라는 것이었다. 나는 오히려 질문보다는 질문 후에 듣게 되는 시각장애인을 지하철도 혼자 못하는 무능력자로 여기는 듯한 그런 말들에 더 상처를 받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돌아보면 지하철, 버스와 함께한 나의 대학 시절은 몸과 영혼 모두 자유로웠던 것 같다. 오히려 직장인이 된 후 본격적인 ‘비장애인 세계에서 살아남기’라는 피곤한 미션이 주어진 후 무례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점점 바뀌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는 그 자유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낮은 기대치, 노력은 열심히 하지만 업무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무언의 메시지, 겉으로 무례하지 않은 사람들 조차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무례한 사람들을 더 이상 무례하다고 마음껏 욕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활동지원인, 근로지원인, 장애인 콜택시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어 편안하고 안전한 이동이 보장된다. 그러나 단순한 호의로 순수하게 무례했던 옛날의 좋은 사람들은 자주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만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젠 진심으로 웃으며 친절은 친절로, 호의는 호의로, 몰라서 하는 실수는 정중히 바로잡아 드리고 있다. 그들은 어쨌든 먼저 다가와 준 고마운 사람들이니...

*이 글은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의 당사자 목소리 공유 프로젝트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들' 일환으로, 대구지역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는 배다은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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