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혁이를 키우다보니 승혁이와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을 만나면 스스럼없이 말을 하게 되고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며 또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 승혁이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어려운 점은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늦어 친구가 하나도 없어 또래와의 상호작용과 공동생활을 배울 기회가 부족해 이를 위해 집근처 보육시설에 보내보려 해도 마땅히 보낼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설령 사설 보육시설에 보내고 있다 해도 아이를 돌봐줄만한 전담교사가 없어 혹시라도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또 자의반 타의반 퇴소조치를 당하지 않을까 늘 불안해하며 힘겹게 아이를 보내고 있는 것이 엄마들의 실정이다. 또 보육시설을 다니는 교육비 이외에 아이들의 치료교육비 또한 만만치 않은 부담이라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늘 아이에 대한 걱정 이외에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지고 산다.

그래도 다행히 아이에게 복지카드가 있는 경우 보육시설을 다니는 데 드는 교육비나마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특수학급이 있는 초등학교 입학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될 수가 있어 이미 승혁이의 복지카드를 발급받은 나로서는 주변의 장애아 엄마들에게 복지카드의 유용함을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아이의 장애로 인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아직 복지카드를 신청하지 않고 있는 엄마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공포 그 자체였다. 당장 아이로 인해 경제적, 정신적 어려움은 겪을지언정 아이가 복지카드를 발급받는 것(다시말해 장애인 등록을 하는 것)은 될 수 있으면 미루고 싶다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복지카드를 발급받게 되는 것이 아이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처럼 끔찍한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또한 승혁이의 복지카드를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마음의 갈등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장애아에게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장애아와 비장애아를 통합하는 교육형태라고 생각해왔고 지금 현실에서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찾다보니 결국 구립어린이집에 오게 되었고 승혁이에게 복지카드가 꼭 필요하고 입소조건이라는 말을 들어서 만들게 되었지만 말이다.

복지카드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마음은 오히려 더 편안해 졌는데, 막상 병원에서 승혁이에게 장애진단을 내리고 진단의뢰서에 장애인임을 확인하는 도장이 찍히는 순간 내 마음 어디선가도 쿵하는 절망의 소리가 들렸다. 그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여섯 살된 아이에게 장애인 등록을 했다는 것이 왠지 못할 짓을 한 것처럼 난 한없이 나쁜 부모가 된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내 자신도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또 그것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거치고 마음의 평정을 찾을 때까지 힘겨운 시간이었음에도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부모들에게 나와 똑같은 고통의 시간을 겪으라고 권유하는 것은 어쩌면 잔인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침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층에 언어발달 지연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4살짜리 남자아이가 살고 있다.

거의 매일 아이를 데리고 사설 치료기관을 다니고 아이 어머니와 외할머니까지 온종일 아이에게 매달려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새삼 승혁이와 나의 몇 년전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도 주변에 친구 하나 없는 승혁이에겐 내가 가장 오래된 친구이긴 하지만.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그 아이의 외할머니와 마주쳤는데 인사를 나누며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특수교육’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언어치료를 말하려고 했는데 매일같이 특수교육 관련 검색만 하다보니 그만 그 말이 입에 배어 나오게 된 것이다. 특수라는 말에 대번에 그분의 안색이 변해지시더니 “특수교육이 아니라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거지”라고 못마땅한 듯 정정해 주신다. 늘 딸의 고생을 애틋하게 염려하실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며 나도 그냥 “예, 그렇죠”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실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물론 우리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걷는 것이 힘겹기도 하고 잘 볼 수 없기도 하고 간단하고 쉬운 것을 알아내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들도 아주 고통스럽고 오랜 훈련을 거쳐야 해 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느리고 작은 달팽이 같은 우리 아이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간 꼭 해내고야 만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말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기적일 것 같았던 승혁이가 이제는 제법 짧은 문장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남보다 빠르고 많이 알진 못하지만, 느리게 조금씩 알게 되어도 그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누리는 우리 달팽이들과 달팽이 부모들을 이제는 편견과 고립된 시선에서 벗어나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특수'하기 때문에 특수교육을 받고 특수학교에 가야만 하는 것보다는 장애아 비장애아가 함께 하는 공간 속에서 우리 달팽이들을 좀더 배려하는 개별교육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달팽이 부모들에게 큰 짐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갈 길이 먼 우리 달팽이들을 키우는 부모가 아이의 보다나은 혜택과 보장을 위해 장애인 등록을 받는 순간부터 좌절감을 느끼지 않게 하도록 아이들에게 ‘장애인’이라는 무거운 호칭대신 ‘희망이’같은 예쁜 이름을 정해주면 어떨까.

그동안 저의 칼럼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칼럼 <달팽이>를 실어주신 에이블뉴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승혁이와 부지런히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달팽이 가족들이 늘 안심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복지제도가 실현되었으면 합니다. 달팽이 엄마 임선미 올림.

올해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고 현재 언어발달 및 발달지체를 겪고 있는, 여섯 살된 아들(백승혁)을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아들의 장애를 알기전에는 무조건 장애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었는데 막상 아들의 장애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슬픔보다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것인가가 더 막막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도 체계화되어있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애아동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입니다. 아들과 제가 겪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칼럼 <달팽이>를 통해 실으면서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가지고 살고계신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에게 실질적인 임상경험담이 되었으면 합니다. 장애아동의 부모가 되기엔 특수교육에 대한 지식도 턱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지 못한 부모이지만 일년여간의 심리 및 언어치료와 통합유치원 생활을 통해 이제 겨우 두 음절의 단어와 짧은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는 승혁이를 보면서 아주 작은 희망을 엿봅니다. 지금 시작되는 이 작은 희망이 언젠간 지금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나중에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발전되길 바라면서 승혁이와 저는 조금씩 하지만 쉬지않고 나아가는 달팽이처럼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그리고 승혁이와 같은 장애를 가진 장애아동들과 그 가족분들에게 힘내시라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