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포럼이 주최한 스티브 앨런 초청 국제장애인 당사자 간담회 전경. ⓒ이원무

8년 전 장애인권리협약 국가심의를 한 지도 엊그제 같은데, 참 시간이 빠름을 느낀다. 다만 올해는 8년 전에 비해 약 1달 일찍 국가심의를 했다. 필자는 국가심의 참관 겸 대한민국 지적, 자폐성 장애인의 권리 현실을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들에게 알리러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제네바에 갔다.

제네바 유엔회의장에서 민간단체만 참석했던 비공개브리핑에선 지적·자폐성 장애인 및 신경다양인의 현실을 발표했고,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들과의 만남에선 이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이것만 한 건 아니다. 장애인단체 주최로 장애계 현안을 심도 있게 이야기하는 자리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필자는 한국장애포럼(KDF)이 주최한 국제장애인 당사자 간담회에 참석했다. 연사는 발리더티 재단에서 탈시설 관련 활동을 왕성히 한 스티브 앨런(Steve Allen)공동대표였다. 질문에 대한 앨런의 답변 또는 발언 중 몇 가지를 말해볼까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시설 부모회가 탈시설을 반대하는 현실에서, 유럽에선 반대가 있었나 여부를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앨런은 유럽에서는 반대에 시설 옹호 운동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가족을 지원하지 않기에, 가족 문제 있고, 가족들이 장애인에 대한 압도적 돌봄 책임자인 현실이라, 가족들 입장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부모보단 장애인이 먼저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우처럼 장애인과 그 가족의 욕구보다는 예산과 소득수준으로 지원하는, 다시 말하면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가족지원체계에서 돌봄에 지치는 부모들이 많은 건 백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감정과 삶이 아니던가? 이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을 잘 보지 못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사회는 장애인을 짐으로 생각하고, 장애인은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하는 시설에서 사는 게 낫다는 생각과 태도까지 만들게 된다. 그래서 시설에 사는 장애인 당사자들과 집 안에 사는 장애인들의 의견과 목소리를 주류 언론이든, 이를 먼저 들은 후 부모의 마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이하 부모회)가 작년 8월 10일 세종시에 위치한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4시간동안 ‘시설퇴소는 사형선고다. 탈시설 정책 철회하라’, ‘보건복지부는 탈시설 자립지원 로드맵 철회하라’ 등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 ⓒ전국장애인거주시설부모회

또한, 유럽에선 탈시설이 먼저냐, 인프라가 먼저냐는 논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앨런은 유럽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유엔에서 제정하고자 하는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선 시설입소 중지를 강력하게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일랜드의 예를 들며, 모든 지역사회 서비스 구축 후 사람들을 꺼내오자 했지만, 그렇게 한 지 5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미해결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완벽한 탈시설은 없다며, 인프라 구축 후 탈시설하잔 것은 변명인 것 같고, 결국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은 어떤 판정절차 없어도 바로 시설에서 나올 권리가 있음을 힘주어 말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완벽한 탈시설 환경을 갖춘 후 시설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그것도 물론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건 사실이다. 더군다나 작년에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로드맵은 평군 약 40년 정도를 거쳐야만 탈시설을 할 수 있어, 당사자가 보기에는 너무도 느린 계획이다.

탈시설을 하면서 동시에 정부가 탈시설 관련 예산을 늘려야 하는데, 시설로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턱없이 적은 현실을 보면, 정부가 탈시설에 대한 의지가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탈시설 로드맵에서 말한 종착지란 시설을 소규모화한 것의 일종인 그룹홈 정도인데, 이는 진정한 탈시설화가 아니라고, 앨런도 언급했다.

그래서 정부가 탈시설 의지를 갖도록 당사자들이 활동하고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고 보는데, 역시 앨런도 이 점을 언급했다. 따라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해 당사자 특성에 맞는 지역사회 서비스와 인프라를 확충해 가능하면 빨리 장애인들이 시설로 나올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여건을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동시에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기간을 개인마다 달리 두고 장애계와 장애인 당사자들이 시설 예산을 탈시설 관련 예산으로 변환시키도록 정부와 시설 측을 설득해 압박해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아까도 얘기했듯이, 탈시설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이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내면서 정책 입안자들이 시설에 장애인을 안전하게 둬야 한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을 앨런은 간담회 시작하면서 강조했다.

지난 6월 16일 서울시의회 앞 전경. 가운데 도로를 두고 왼쪽에는 탈시설 조례 제정을 반대하는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가 피켓 시위를, 오른쪽에는 탈시설 조례 제정을 촉구하며 천막농성 및 결의대회를 이어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모습.ⓒ에이블뉴스 DB

시설에 있는 당사자들이 하면 더욱 공감되고 실감 나게 정부 당국자들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보지만,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당사자와 당사자 단체 등도 함께 연대해 탈시설에 대한 한목소리를 낼 때, 정부와 시설 세력은 탈시설에 대한 구실과 변명거리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니까.

무엇보다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은 시설이나 정신병원 감금, 사회적 소외 등 형태는 다를지는 몰라도, 본질은 비슷한 인권침해를 겪기에, 함께 힘을 뭉치는 건 탈시설 동력에 큰 힘이 될 것이라 본다. 연대하려면 내부에서 리더십이 있어야 하고,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당사자 단체 간에도 서로 소통하며 마음의 문을 여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이외에도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며, 핀란드에선 시설이 늘어났고, 우크라이나에선, 장애아동들이 다른 나라들로 갈 때 ‘갈 시설이 없으니 다른 시설 지어야겠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시설화가 매우 높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탈시설 관련해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도 그는 강조했다.

간담회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게 된다. 시설에 있는 종사자든 부모든, 정부 당국자든 결국 장애인 당사자들이 탈시설을 통해 자유로운 삶과 자기결정권, 선택권이 증진될 것이라는 걸 증거 등을 통해 계속 설득해나간다면 결국 탈시설 관련 논란은 점점 줄어들며, 탈시설이 점점 현실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결론은 이것이다.

‘탈시설 키는 장애인 당사자가 쥐고 있다.’

국제장애인 당사자 간담회 종료 후 한 컷. ⓒ이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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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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