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낳고 육아에 힘들어 지칠 무렵, 계획에 없던 둘째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가 5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신체적으로 불편한 몸으로 처음 하는 육아는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

친정 엄마와 남편이 육아의 많은 부분을 해주었지만, 나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시기였다. 괜히 내가 도대체 엄마가 맞나 하는 자책을 하며 육아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던 차에 둘째까지 생기니 몸도 무거워지고 더욱 힘들기만 했다.

나는 힘들 때 제일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여행이다. 틈만 나면 여행에 대한 정보만 검색하고 있었다.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오래전부터 배낭 여행자의 성지로 알려져 있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 가 보고 싶었다. 내가 젊은 시절부터 환상과 로망이 있었던 곳이다. 나는 곧바로 항공권과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방콕에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찾아보며 너무 설렜다.​

태국 방콕에 대한 환상으로 너무 설렜다. ⓒ박혜정

배낭 여행의 성지를 간다고 생각하니 나도 배낭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임신 8개월의 산모가 배낭 여행자를 꿈꾸며 방콕 여행을 가다니, 지금 생각하니 너무 우습다. 그렇게 배낭 여행자를 꿈꾸며 저렴한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려니 4월 13일부터 이상하리 만큼 더 저렴했다. 태국의 새해, 송크란 축제 기간이라고 했다. 그 나라의 축제도 볼 수 있는데, 그 기간이 더 저렴하기까지 하니 너무 좋다고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다 고작 태국 방콕을 가면서, 5만 원 아끼자고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를 끊었고, 화장실과 침대만 달랑 있는 싸구려 숙소를 예약했다. 임신 8개월 산모임을 망각하고, 내가 배낭 여행자라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게, 엄청난 잘못이었음을 그때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과 함께 태교 여행을 가장한 나의 배낭 여행은 출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베트남 항공을 타고 하노이 공항에서 경유 연결편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원래 3시간이었는데, 지연이 되어서 5시간이나 대기를 하면서 부터 벌써 힘들기 시작했다. 하노이 공항 안에 의자들은 고정되어 있는 팔걸이, 좌석이어서 내가 기대 누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만삭인 산모는 휠체어에 꼼짝 없이 앉은 채로 5시간 이상을 버텨야 했다. 그래도 여행의 설렘으로 어째 버티고 드디어 방콕에 도착을 했다.

공항에 도착을 해서는 내가 알아본 대로 전철을 두 번 갈아 타고, 숙소까지 가면 된다고 생각을 했다. 공항에서의 전철은 무사히 잘 찾아서 탔는데, 갈아 타야 하는 역에 오니 길을 건너는 곳이 안 보였다. 결국 남편과 나는 위험한 무단 횡단을 하고 환승역을 왔는데, 수많은 계단을 걸어서 2~3층 높이까지 올라가야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엘리베이터는 없다고 했고,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저녁 늦게 도착을 한데다, 날씨가 너무 덥고 일이 자꾸 꼬이니, 남편과 나는 너무 지쳐서 결국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택시를 잡고 요금을 물어보니 500바트를 불렀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너무 비싼 것 같았고, 방콕은 흥정을 해야 한다 길래, 오랜 실랑이 끝에 300바트를 주고 숙소에 겨우 도착을 했다. 하루 이틀 지나 우리가 그 때 탔던 요금은 50바트도 안된다는 걸 알았고, 방콕에서의 바가지에 무지 기분이 상했다.​

태국에서 딱 1명, 이 기사 아저씨만 정직하게 미터기로 끊었다. ⓒ박혜정

다음 날은 방콕 왕궁과 왓 아룬 사원, 에메랄드 사원을 보러 갔다. 전날 휠체어는 전철을 탈 수가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냥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택시 흥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 무조건 관광객에게는 10배 정도의 바가지는 기본인 나라인데, 흥정을 어느 정도 하려면 승차 거부를 했다. 우리는 흥정을 해봤자 결국 현지인 금액의 5~6 배는 주고 택시를 타야 했다. 알면서도 그렇게 타야 하니 기분이 너무 나쁜 건 당연했다.

게다가 너무 더운 날씨도 짜증을 한껏 더해 주었다. 나무 그늘에서 쉬다가 2미터 앞에 있는 음료수 파는 리어카만 갔다 와도 땀이 한 바가지 흘러 내렸다. 더운 날씨를 무지 싫어하는 남편도 짜증이 많이 나고 맥이 없어질 지경이었다.​

더위에 약한 남편과 나는 방콕에서 너무 지쳤다. ⓒ박혜정

태국의 새해, 송크란 기간이어서 왕궁과 사원에는 퍼레이드 행렬도 있었고, 새해 소망을 빌기 위해 수많은 태국 사람들이 북적였다. 우리는 너무 덥기도 했고 짜증이 나니 왕궁이나 사원도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구경을 하고는 내가 고대했던 카오산 로드를 가기로 했다. 택시를 잡았지만 차량 통제 때문에 카오산 로드를 가지 못한다고, 승차 거부하는 택시를 여러 대 만났다. 겨우 그 근처만이라도 가겠다는 택시를 잡았지만, 또 엄청난 바가지를 쓰고 10분 거리를 350바트나 주고 갔다. 아효~진짜 계속 짜증만 났다.​

더위와 바가지 요금에 계속 짜증만 났었다. ⓒ박혜정

그런데 카오산 로드 입구가 아니라 좀 떨어진 곳에 내려줘서 휠체어를 밀고 가는데, 난데없이 우리는 갑자기 물벼락을 맞았다! 순간적으로 시원하기는 했지만, 도대체 이게 뭔 날벼락인가 너무 당황스러웠고 옷이 다 젖으니 짜증이 확~ 났다!

나와 남편은 놀란 눈으로 멈춰 서 있는데, 몇 명의 태국 사람들은 양동이, 바가지, 물 호스, 물총 등 온갖 물 뿌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뭐라 뭐라 하며 물을 한 바가지 더 부었다.

완전 어이가 상실된 상황이었고, 거기다 더 물을 뿌리려는 사람에게 나는 '노! 노!! 노!!!'라고 외쳤다. 그렇게 쫄딱 젖은 채로 카오산 로드를 가는 길에는 수많은 태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을 뿌리고 있었고, 나와 남편은 '노! 노!! 노!!!'를 외치며 겨우 겨우 피해서 갔다.​

송크란 축제를 몰랐던 우리는 난데없이 물벼락을 맞았다. ⓒ박혜정

나중에 알고 보니, 송크란 축제에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복이나 행운을 빌어주며, 물을 한껏 뿌려주는 게 풍습이었다. 그것까지는 몰랐던 우리는 온갖 바가지와 상술에 짜증이 나있던 차라, 그 복과 행운의 물조차도 짜증으로 남았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꿈꿔왔던 배낭 여행자의 성지, 카오산 로드에 드디어 왔지만, 쫄딱 젖은 생쥐꼴로 짜증만이 가득하니 그곳이 좋아 보일리가 없었다. 환상과 로망의 카오산 로드는 태국의 저렴한 식당들과 게스트 하우스들이 모여 있는, 그저 지저분한 동네로 보일 뿐이었다.

지치고 화나고 짜증나고 찝찝하고, 기분이 나쁠대로 나쁜 우리는 카오산 로드의 한 카페에서 음료수 한 잔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택시 요금의 바가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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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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