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서울역이 얼마나 먼 거리인데 가까운 곳을 놔두고 그렇게 먼 거리를 돌아서 장을 봐?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집에다 부탁하면 되는데, 왜 그리 일을 어렵게 하니. 네 멋대로 하라고 독립한 거야?”

평소보다 귀가 시간이 늦을 것 같아 본가에 있는 부모님께 “ 오늘은 서울역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일주 일치 장을 보느라 좀 늦는다”고 전하니, 한참 동안 부모님의 꾸중이 이어졌다.

부모님 댁에서 주문하여 내 집 주소를 찍어 보내면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편하게 물건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30분 이상 떨어진 마트에 가서 먹거리를 사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의견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반드시 매장에 나가서 물건을 고르고 주문을 해야 하는, 다시 말해서 누군가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인터넷 주문이 가능하긴 하지만, 오프라인에 비해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이 들어오는 경우, 1인 가구에게는 기한 안에 해당 제품을 소비해야 하는 상활이 발생한다.

해당 마트에 컴플레인을 제기하여 교환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이 역시 따로 시간을 내야 한다. 유통기한이 길고 마음에 드는 제품을 원하는 액수만큼 구입 하기 위해 조금의 수고를 감내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돈 내산”을 위해 중요한 것은 거리보다 안전성

서울역 부근에 있는 마트의 거리가 제법 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 다리에 이상이 생겨 보행에 어려움을 겪을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다리가 저려 불과 몇십미터 앞에 있는 목적지를 찾아가지 못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러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병원이나 약국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엑스레이냐 MRI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렇게 잘못 넘어지는 날에는 크게 다치는 경우도 다반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발생할 때마다 부모님께 설명할 수는 없는 일, 이런 일을 몇 번 겪으면서, 더리가 저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더라도 그런 상태의 몸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려해야 하는 내용들을 하나씩 정리하게 되었다.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경유지가 있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앉아서 갈 수 있는 노선과 탑승 장소를 택하게 되었다.

마트 선택 역시 마찬가지, 거리보다는 지하철역 안에 입점한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만에 하나 다리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그 문제가 심각한 정도인지, 빨리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누구보다 장애인 당사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다리에 우려스러운 일이 발생하더라도 마트 문 앞까지는 마트 직원에게, 그 이후에는 역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철도역사는 직원 혹은 사회복무요원을 통해 승 하차 도우미 서비스가 있기에, 이런 서비스들을 이용하여 목적지 역에 내려 콜택시를 타고 귀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 도착역과 콜택시 승차 장소와의 거리도 계산해야 함은 물론이다.

여기에다 여름과 겨울에는 날씨로 인한 변수와 그에 따른 변동사항도 다치지 않기 위해 짚어봐야 하는 부분이다. 비가 예보된 경우에는 위에서 고려한 상활에 비를 맞지 않고 콜택시를 기다리거나 탑승할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비가 내리는 경우 바닥이 미끄러운 경우가 많고 이는 안전사고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마 아닌” 왜 그래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필요

나는 지팡이 사용자이다. 지금까지 예를 든 여러 사례들은 지체장애인에 준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들이며, 장애 유형가 개인의 몸 상태에 따라 비장애인은 물론 장애인인 필자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을 것이다.

자리에 앉을 가능성이 높은, 같은 목적지를 가더라도 조금 더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나에게 한동안 주변 지인들은 “한가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장애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었던 누군가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본인이 기억하는 버스만 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안전을 위한 노력이자, 비장애인에게는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던 내용들이 신체적인 장애와 만나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오해로 흘러갔던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독립한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비장애인이 보기에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어떤 결정을 했다면 그의 장애 유형과 나이에 관 계없이 “왜 그렇게 하냐”가 아닌 “무슨 이유가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가족 중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의 생각을 존중했으면 좋겠다. 그는 다 계획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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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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