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정의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사회적 제약을 받는 자이다. 여기서 ‘장애’란 단어를 ‘조건’으로 바꾸고 나면 신체적, 정신적 조건으로 인하여 사회적 제약을 받는 것이 장애인이다. 그래서 미국재활법에서는 고도 비만과 같이 신체적 조건으로 인하여 사회적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장애인으로 인정하고 있고, 알코올 중독이나 성소수자도 장애인과 같은 범주로 다루고 있다.

최근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종교인들은 미풍양속을 해치고,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도록 하고 있는데, 이에 반하는 것이며, 동성애는 인간의 타락을 의미하므로 동성애를 인정하고 차별을 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격렬 반대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여성과 노예, 흑인에 대한 관념이 현실과는 맞지 않다. 성경의 문구대로 해석한다면, 흑인과 여성은 평등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위반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 맥락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글자 단어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으로 이해해야 한다.

창세기 19장 1-19절, 사사기 19장 1-30절, 레위기 18장 1-30절, 고린도전서 6장 9-17절 등에서 우상숭배를 금하고, 타락한 세상을 살지 말도록 하고 있다. 이는 모두 소돔의 타락을 인용한 것이다. 소돔은 너무나 타락하여 성욕에 의해 문란했으며,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하였고, 심지어 동물과 성교를 하는 것까지 성행하였다.

동물을 숭배하여 성교를 통해 교감을 나누는 것이니 정말 잘못된 사회였다. 여기서 동성애가 나오는데, 롯 집안 외에는 누구도 구할 사람이 없는 도시였다. 그러니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이 동성애를 문란하게 즐기는 것이 만연한 지경으로 타락한 것이다. 성소수자가 아님에도 보편적인 사람까지 쾌락의 수단으로 동성애를 즐기는 사회라면 분명 타락한 사회이다. 모든 도시민이 모두 성수수자일 리는 없다.

그리스도인이 성경대로 실천해야 한다면 레위기에 있는 말대로 우상숭배자는 죽여야 한다. 무당이라고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죽이지는 않는다. 근친상간도 죽이거나 인연을 끊어야 한다. 그리고 간음한 사람도 죽어야 한다. 성경대로 왜 하지 않는 것인가?

당시는 종교와 정치가 한 몸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율법으로 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맘몬(재물)이 우상이라고 하였지만, 재산을 가진 자를 우상숭배로 보고 처벌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명예, 재산, 권력 등 많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니 이들도 일일이 찾아서 금기해야 할 것인가?

성경을 글자대로만 해석하면 너무나 모순투성이이고, 현실에도 맞지 않다. 이방인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고도 하고, 이웃처럼 사랑하고 접대하라고도 한다. 죄를 지은 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도 하고, 죄가 없는 자가 있으면 돌로 치라며 누구도 벌할 자격은 없다고도 한다.

성의 문란과 성소수자의 정체성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하나님이 맺어준 것이 결혼이라면서 이혼도 하고,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며 사귀기도 한다. 정신적 간음까지 금하고 있으니 양심은 타인으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현행법 어디에도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무절제는 분명 종교인으로서 금기해야 하는 것이다.

동성애가 무절제인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적 지향을 달리하는 것이 동성애라면 성경에서 현대적 의미의 이러한 동성애를 금한다는 해석은 무리다. 성소수자들은 이성애로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위장하고 전통 속에 눌려 살아도 행복하지 않다. 고린도전서에서 남녀 본성을 ‘머리의 길이’라고 하였는데, 현대에 짧은 머리를 하는 것도 성경을 어긴 것일까?

이방인이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비신앙인을 말하는지, 지리적이나 민족을 두고 하는 말인지에 따라 완전히 해석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교회의 성장이 하나님의 나라 건설일 수 있으나, 교회 성장도 초심을 잃으면 재물이라는 우상숭배일 수도 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은 우리가 성경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깨우치게 한다. 성소수자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누구나 동성애를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인터넷 등의 성문화가 문제이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계약부부나 매춘문화가 문제일 것이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근거인 레위기에는 성폭행과 인척의 동침, 짐승과 수교, 월경 중의 성관계, 하체를 범하는 행위 등등 요지경이 나온다. 동성애가 글자대로 금해야 하는 것이면, 다른 금기사항도 준수해야 하므로 월경 중 성관계자는 모두 추방해야 한다. 그리고 접신한 무당들은 사형을 시켜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동성애는 성적 문란 행위로서의 동성애이지, 성적 지향이 다른 성소수자라는 현대적 정의가 아니다. 현대 종교에서 동성애의 판단 이전에 이미 고정관념과 혐오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장애인은 하나님의 존귀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내용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 나오지만, 구약 일부에서는 죄를 지으면 벌로 장애인이 된다는 조항도 있다. 장애는 불편함이니 모든 장애인이 벌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저주의 대상을 평생의 불편함에 비유한 것이다. 저주로 고자가 되라고 했다고, 고자가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도 좋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준 생명의 존엄성을 누리도록 종교가 힘을 주는 것이 사명일 것이다. 종교는 인간 해방과 자유를 주고자 하지, 노예를 팔아먹는 것이나 억압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나치는 동성애자들도 학살하였다. 이러한 문화가 정치에 의해 고정관념을 만들었으니, 정치의 쇠뇌문화 영향을 일부 종교인들이 두둔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에 성경을 빌어 얼마나 많은 마녀사냥을 했던가!

성적 지향은 정체성이며, 개인적 특성이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만 창조하셨다면 신체적 성의 문제는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불량품 아니면 악마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의 풍속을 따르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르지 않으니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하셨다. 동성애가 풍속이라면 탈피해야 한다.

거룩함이 깨끗함이고, 동성애는 깨끗하지 않다는 인상이 동성애자를 추함과 악함으로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각종 유행병이나 새로운 질병으로 인간에게 벌을 준다고 해석한다. 에이즈가 동성애에게서 나왔다거나 두창도 동성애 때문이라고까지 뒤집어씌운다. 그렇다면 동성애자가 아님에도 그런 질병을 얻은 것은 하나님이 한 사람의 잘못을 단체로 벌을 내리신 것일까?

거룩함은 이웃 사랑이며, 착취나 억압을 하지 않음이며, 적극적으로 생명에 대한 존엄한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그들은 성 문란을 확산하는 것이 아니라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을 공개하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인정한 서구는 그럼 타락한 것인가? 그들을 사회가 받아들였다고 하여 희생자가 생기고 범죄가 늘어났는가? 오히려 성도착증 환자나 성소수자의 인권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범죄는 늘어났다.

성경에는 동성애가 8번 나온다. 남성간의 강간 2번, 남성 간 섹스가 4번, 여성 간 성교가 1번, 동성의 소년 성추행이 1번이다. 동성애의 사건은 나오지만 성소수자에 대하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범인들이 성도착증인지 성소수자인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 물론 동성애자라도 강간이나 성추행은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 군대에서 동성애는 주로 성도착증에서 발생한다. 이 경우에도 성관계를 금하는 것과 그들이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성경은 매춘도 금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매춘을 벌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상적 인간 생활로 친다면 독신도 창조의 원리에는 어긋날 것이다. 나이 얼마까지 독신은 안 된다는 기준은 없지만 독신주의자는 창조의 정신에 위배될 것이다.

성경은 세속적 소송을 하지 말며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라는 심판을 하고 있다. 성경에는 하체를 범하는 것을 금하면서 그 형태에 동성간 성교를 언급한 것인데, 하체를 금한 행위의 하나로 동성애까지 성행한다는 것을 성소수자의 삶의 문화 전체를 언급한 것으로 대치할 수는 없다.

요나단이 다윗을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여 언약을 맺고(삼상 18: 3-4), 나오미가 시어머니 롯을 붙쫓고(룻 1:14), 요한이 예수의 품에 누었다(요한 13:23)는 구절을 동성애로 해석하는 것 역시 이단의 지나친 상상이고 억지이다.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의 다름으로 인하여 특이하게 살 수밖에 없도록 우리 사회가 내몰고 있으며, 그들을 내몰린 사회에서조차 지속적으로 억압된 삶을 강요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 속에 받아들이고 편히 쉬게 하는 것이 종교의 의무일 것이다.

장애인을 모두 죽인다고 세상에 장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성소수자를 핍박한다고 하여 그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성소수자들이 설 자리가 없으면 그들은 사회에 한을 가질 것이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들은 통합사회에서 당당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성소수자들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그들을 어둠 속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차별을 받을 뿐 사회에 아무런 해를 끼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왜 적을 만들고 그들을 사냥하려고 조직화될까? 조직화의 명분으로 적이 필요하다면 평화와 인권은 싹을 키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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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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