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조사 표지. ⓒ보건복지부

정부는 지자체와 합동으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 제11조에 근거해, 5년마다 1회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를 시행하게 되어 있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일(1998년 4월 11일) 이후로 지금까지 5번 전수조사를 했으며, 4년 전에 조사한 실태 전수조사 결과가 가장 최근의 것이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율은 80.2%다. 상당히 편의시설이 잘 설치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사대상은 법률 시행일 이후 건축(신축·증축·개축·대수선·용도변경) 행위가 있었던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있는 시설이 대상이란다.

그런데 이 설치의무대상은 바닥면적 300제곱미터(90평) 이상의 공공이용시설에만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한다고 당시에 규정되어 있었다. 바닥면적의 경우, 예를 들어 종교시설은 500㎡이상, 도매시장, 상점 등의 판매시설은 1000㎡이상, 일반음식점, 휴게음식점, 제과점의 경우는 500㎡이상인 경우에만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제한조건 때문에, 2018년 당시 편의시설 설치의무대상 건물 수는 199,754개이며, 대한민국의 건축물 수가 7,191,912개임을 생각하면 장애인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는 전체 건물수의 약 2.78%만 조사를 하는 거다. 나머지 97.22%의 건물은 조사대상 밖이니 이 건물들엔 당연히 편의시설 설치에 신경을 쓰지 않을 터이다.

97.22%의 건물들 안엔 300㎡ 미만의 음식점, 제과점, 편의점 등이 들어간다. 이곳엔 편의시설 대신 턱이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의 출입을 가로막았다. 결국, 이들은 먹고 싶은 음식들을 스스로 구입하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집으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다른 이들에게 사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등의 상황을 맞이했었다.

그래서 장애계에선 유명한 커피전문점 앞에서 턱을 없애고 장애인도 커피 마시면서 1층이 있는 삶을 누리고 싶다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열었다. 이와 더불어, 소규모 공중이용시설 접근이 불가능하니, 면적, 건축일 등의 기준을 철폐하며 ‘장애인등편의법’ 전면개정을 요구했었고, 심지어 차별구제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줄기차게 진행해왔다.

생활편의시설 장애인 접근 및 이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11일 광화문 광장에서 장애인의 생활편의시설 접근과 이용을 위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연 모습. ⓒ에이블뉴스DB

이들의 목소리를 의식해선지, 작년 6월에 복지부는 편의점, 음식점, 카페 등의 편의시설 의무설치 바닥면적 기준을 300㎡이상(약 90평)에서 50㎡(약 15평)으로 강화하는 안을 발표했다. 다만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올해 1월부터 신축·증축·개축되는 곳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얼핏 보면 건물에 대한 휠체어 사용인 등의 접근권이 강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적용시기가 2022년 1월부터다. 그렇다면 작년까지 신축, 증축, 개축된 50~300㎡의 시설은 편의시설 의무설치 대상에서 제외되는 거며, 역시 50㎡ 이하의 시설도 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거다.

예를 들어, 편의점만 해도, 2019년 기준으로 전체 편의점 수는 43,975개이며, 이 가운데 바닥면적 300㎡ 이상의 편의시설 의무대상은 830개라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점 수는 기존대로 하면 대략 1.8%에 불과하다. 복지부의 새 개정안대로 하면, 편의점의 약 20%만 편의시설 설치의무가 부과된다.

그러다 보니 개선의 폭이 크지 않으며, 장애계에서 보건복지부 안을 한 마디로 꼼수라고 하는 거다. 조삼모사 개악 안에 가까우니, 장애계에서 복지부 안의 철회를 요구했던 거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을 언급하며, 그 안의 철회를 거부했다.

하지만, 보조금법 시행령 별표2엔 보조금 지급 제외사업에 장애인편의시설 설치가 들어가 있다. 따라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를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보조금 지급 대상사업에 포함시키는 식으로 개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거 없이 소상공인 경제부담을 거들먹거리는 건 국가가 지원의무를 회피하는 핑계 구실을 만드는 거나 다를 바 없다.

해외사례만 보더라도, 미국의 경우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점포에 세액 및 소득공제 제도 등 세금감면 제도 운용을 하고 있고, 독일은 소규모 시설에 접근성 보장 의무를 두고 있으며, 영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처럼 건축일, 바닥면적, 수용인원 가지고 편의시설 설치 제한하는 게 없단 말이다.

그런데도 소상공인 부담을 들먹거리고, 장애인편의시설 대상의 단계적 확대를 주장하며, 결국 복지부는 작년 안처럼 바닥면적 50㎡ 이상의 건물을 편의시설 설치의무대상으로 삼으며 이걸 올해 5월부터 적용하는 안을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시행령 개정 필요성으로 유엔과 인권위 정책권고 내용이 담긴 복지부 작성 규제영향분석서 내용. ⓒ보건복지부

이전 것과 거의 다를 바가 없으니, 이런 상태에서 내년 실시할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조사에서 전체 건물 수의 약 80~90%가 조사대상 아닐 걸로 예상된다. 실태조사의 목적은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는 건데, 그 건물들이 편의시설 관련 실태조사 대상에서 빠지니, 이 건물들의 문제를 찾아 거기에 장애인편의시설을 적절하게 설치하리란 만무하다.

따라서, 진정한 장애인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가 아닌 것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며, 내년, 아니 20년 후, 30년 후까지도 장애인들은 식당이나 편의점, 커피전문점 등에서 자기가 먹고 입고 싶은 것들을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여전히 반복될 게 우려스럽다.

또한, 복지부 안 통과는 한 정치인이 장애인-비장애인 갈라치기를 하며 장애계가 분열된 상황에 이뤄진 것이기에 장애인의 가슴에 한 번 더 상처를 주는 거다. 출발해서 보행 거치고, 교통수단 이용해 목적지 도달하는 게 하나의 루트지, 나눠지는 게 아닌 거처럼, 이동과 건물 접근은 하나의 과정이자 동선인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한편, 이 실태조사엔 정신적 장애인과 관련된 편의시설 실태조사는 빠져 있다. 예를 들어, 이룸센터 내부안내도에 있는 교육실1과 실제 교육실1 옆에 있는 교육실1 간판의 색상을 보면 서로 다르다. 그러기에 지적장애인에게는 교육실1이란 방을 스스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둘을 같은 색으로 해주면 방을 스스로 찾아가기 쉬워진다.

또한, 건물 안내도에 글씨가 너무 많고 알기 쉬운 그림이 많지 않아도, 지적장애인은 찾아가는데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다. 이처럼 지적장애인에게는 글씨가 적으면서도 알기 쉽고 색깔을 동일하게 하는 식으로 건물안내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결국 알기 쉬운 건물안내도가 지적장애인에겐 하나의 편의시설로 작용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조항, 구체적 설치지침이나 기준 등이 장애인등편의법에는 없다.

청각 과민이 있어 소리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는 감각실(Sensory Room, 또는 감각통합실)이 필요하고, 이는 이들의 심신을 안정적으로 만든다. 이것 또한 편의시설로 작용할 수 있을 테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조항, 구체적 설치지침이나 기준 등이 역시 장애인등편의법에 없다.

이룸센터 내부 안내도(좌측), 이룸센터 교육실1 소간판(우측). ⓒ국가인권위원회

따라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편의시설 의무대상에 대한 수용인원, 건축일자(시기), 바닥면적 기준 등을 철폐하고, 정신적 장애인 관련된 편의시설 관련 내용을 장애인등편의법에 명시하는 등 이 법의 전면개정이 필요하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승강기, 복도 등 일부 편의시설 조사로 도출됐으며, 점자안내판 등의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은 결과 도출에서 제외된 2018년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조사처럼 할 게 아니라 각 장애 유형별로 필요한 편의시설 모두를 조사해야 한다. 뿐만아니라, 성별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조사도 해야 한다.

장애인편의시설 실태조사에 시각장애인, 휠체어 사용인, 클러치 사용인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지적장애인 등이 참여할 수 있게 하며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는 상시적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아울러 장애인편의시설 관련해 세금공제나 보조금 지급대상에 포함하는 식으로 국가의 실질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럴 때 모든 건물에 편의시설이 설치되었나, 그것도 적절하게 설치되었나를 점검하며, 적절히 설치되지 못한 부분은 예산을 투입해 섬세하게 시정하는 등, 진정한 장애인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등편의법에 위임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의 실효성이 생기며,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 장차법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건축법도 장애인등편의법에 위임했기에 이 법의 실효성 마찬가지로 생기게 될 것이다, 결국엔 건물의 크기, 용적률, 건축일자에 관계없이 모든 공공시설 및 작업장에 접근성 기준을 적용하라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며 장애인의 건물 접근권을 보장하는 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했기에, 돈과 자본의 논리를 쫒는 정부가 될 터라, 장애인의 건물 접근권이 제한될 게 또한 우려된다. 정부가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를 면적 기준 등으로 제한을 계속 두겠다고 하는 한, 3~4개월 뒤에 있을 장애인권리위원회 국가심의 때 정부는 망신을 당하게 될 거다.

돈과 자본의 논리를 쫒아가느라 장애인의 건물 접근권을 제한해 장애인들이 집이나 시설 안에 처박히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장애인들은 추후 이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건물 접근성을 보장하라고 외칠 것이다. 왜냐면 건물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사는 것은 장애인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행복추구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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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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