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라이트 점등식하는 장면(좌측), 블루라이트 점등용으로 쓰인 봉(우측). ⓒ이원무

매년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이하며, 사실 별로 좋은 기억은 없었다. 장애인이 시혜와 동정의 대상인 것은 여전하고, 당사자인 장애인은 그냥 생색내기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올해는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긴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작년에 좋지 않게 받았던 느낌을 또 받았다. 그 예를 말해볼까 한다.

4월 2일이면, 유엔에서 정한 자폐인의 날을 전 세계에서 지낸다. 올해에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자폐인의 날 기념식을 진행했다. 그런데 기념식 중간에 별 모양의 블루라이트 점등용 봉이 아동들 놀이기구와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자폐인을 ‘어린아이’로 취급하고 이게 인권 침해 시작점이라 생각하니 분노가 일었다.

내빈들 축사에서 염수정 추기경은 장애 극복이란 말을 언급했는데, 장애란 극복하는 것이 아니기에, 천주교 내에도 장애인차별은 존재한단 걸 짐작하게 해줬다. 보건복지부 양성일 제1차관의 기념사에선 발달장애인법 제정,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자폐성 장애인 관련 정책으로 언급했는데 이 두 개 모두 다 이용자 중심이 아닌 제공자 중심의 법과 정책, 돌봄 중심의 정책이라 그냥 속으로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또한, 서울시 복지정책 실장의 입에서 일상에서 늘 타인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 살기 위한 합리적 조정(정당한 편의)를 권리로 생각하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며 모욕감이 들었다. 이러니 가족에게 부양부담을 지우고 자폐인은 권리 객체로 낙인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느낌을 받았다.

외국에선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며 심지어 자폐 당사자 연구도 하고 논문들이 쏟아지는데, 우리나라에선 이런 걸 찾아보기 힘들고, 있어도 극히 드문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다. 전체적으로 이전처럼 저인지 자폐성 장애인에 중점을 둔 돌봄 중심의 정책을 자랑하는 ‘자폐인의 날’ 기념식을 보며 잔인한 이 사회현실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3월 말부터 장애인-비장애인 갈라치기로 일파만파를 불러온 국민의 힘 이준석 당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박경석 대표 간 설전이 4월 13일에 있었다. 그런데 장애인 이동권과 탈시설 관련 현실을 진지하게 듣기보단 자신 입장이 옳단 논리를 펴는 이 대표의 모습 속에 장애인권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표는 자신의 갈라치기 행동에 대해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

장애인 혐오 댓글이 달린 사이트 모습. ⓒ페이스북 캡처

설전 이후 장애인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수는 오히려 더 늘어난 듯하다. 내 인스타그램에 장애인 이동권 관련 칼럼 링크를 올렸더니 이준석 대표를 응원한다는 식의 댓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고, 장애인을 위한 시설 만들어 비장애인과 분리해야 한다는 식의 장애인 배제 의도가 담긴 댓글 내용을 한 페친이 보여줬는데, 읽으며 경악했었다.

이런 혐오와 갈라치기는 장애인단체까지 영향을 미쳐,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이하 장총련)와 한국교통장애인협회(이하 교장협) 등이 전장연 시위를 막겠다는 식으로 장애인단체 간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장애인단체 간 논의가 없이 전장연 독자적으로 시위를 추진해 장애인의 진정한 요구를 왜곡시켰다는 게 장총련과 교장협의 입장이다.

장애인단체 간 논의가 없었단 점에선 장총련, 교장협의 입장에 일부 동의하는 건 있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해 수차례 복지부와 기재부를 찾아갔음에도 묵묵부답이거나 검토하겠다고만 하면서 요구들을 묵살하니, 시민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되는데도, 불편 주면서까지 시위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또한, 장애인 운동과 이에 대한 지향점까지 양 갈래로 갈라진 지 오래된 시점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장애인단체 분열이 현실로 나타난 거다. 어찌 보면 장애인단체들이 장애 정체성을 강화해 장애인 운동을 이끌기보다는 이권에 붙으려는 경향이 이전보다 많아진 것도 장애계 분열의 한 요인이 아닌가 싶다.

장애계 분열을 통해 장애인 비례대표와 그 관계자들 제외한 국회의원들에겐 장애계가 우습게 보일 거고 이는 차기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기에 이번 장애인단체 간 갈등은 반드시 잘 마무리됐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기 국회의원 총선거 때 6년 전의 당선권 내 장애인비례대표 전무란 충격이 다시 오지 말란 법이 없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지난 21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전장연 대국민 사과 및 가건물 즉시 철거 촉구 집회’를 개최한 모습.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얼마 전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콜택시 무료시승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지역마다 보급대수가 편차 나고 서울만 해도 대기시간이 평균 1시간 3분이 걸리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런 행사는 생색내기이자, 장애인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기자가 너무 많다고 기다리란 문자를 캡처한 사진을 페북에서 본 기억이 있다. 그냥 정부와 지자체가 주는 것만 받아먹으란 식 아닌가?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장애인을 여긴다는 생각만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 별로 놀랍지도 않다.

한편, ‘꿀 먹은 벙어리’, ‘우리 정부를 정신분열적이라 진단’, ‘외눈박이 대통령’ 등 국민의 힘 의원들은 장애비하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이에 장애인 당사자들이 1~2년 전부터 원고로 나서 장애인차별 구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했지만 패소했다. 패소한 이유는 없고, 세 문장으로 간결하게 읽으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거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비하당하면서 사는 삶에는 관심 없고, 나만 비하발언을 하는 건 아니잖냐는 태도에 손을 들어준 법원의 태도에 다시 한번 어이없는 기분이다. 게다가 전·현직 국회의원과 박병석 국회의장이 재판에 출석도 하지 않고, 재판부의 지적 후에야 의견서를 이들이 썼다는 것 자체가 장애인을 인간 이하로 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또 하나, 전·현직 국회의원과 박병석 국회의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금액을 다 합치면 700만 원이다(1인당 100만 원이라 했으니). 법원 소송 시 의뢰금액이 3,000만 원 이하면 판결 패소 이유 생략하는 게 법원 관례인데, 이런 관례는 상당히 무례하다. 액수에 상관없이 적어도 판결문에 패소 이유를 명시하는 상식과 예의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지난 15일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의 전·현직 국회의원 6명과 박병석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차별구제청구소송 판결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는 원고들. ⓒ에이블뉴스 DB

그리고, 지방공무원 공개경쟁 임용시험에 응시한 정신장애인이 필기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면접에 응했지만. 면접 시 직무에 대해 막힘없이 답했지만, 장애와 관련된 질문에서 ‘장애등록이 되는 장애인지’란 질문을 받고, 추가 면접까지 거친 결과 ‘미흡’을 받아 최종 불합격됐단 소식도 접했다.

정기적인 약물적 치료 등을 받으며 일상생활 잘하고 직장 생활도 원만히 수행했다는데, 장애를 이유로 불합격시킨 건 차별 중의 악질적 차별이다. 그래서 당사자가 소송했지만, 최초면접 시만 빼놓고는 장애 관련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며, 차별행위 없었고 사전교육 필요하단 요구 모두 기각했단다.

법원의 장애 감수성 없는 판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그냥 허탈감, 헛웃음만 나오고, 법원에 신뢰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이 판결 말고도 아까 전에 말했던 장애인 비하 판결의 경우도 패소한 원고가 상대방 변호사 수임비용까지 다 부담하란 결정까지 내렸단다. 차별을 당한 당사자들은 이로 인해 차별을 1번 더 당하는 거다.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라는 건 장애인들에겐 전 재산까지 다 팔라고 하는 일일 수 있기까지 하기에 한 번 더 차별한다고 한 거다. 정말 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차별소송에 접근할 수 있도록 패소 여부에 상관없이 소송비용을 경감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 없는 게 참 속상하다.

작년에도 장애인의 달 4월은 가혹했지만, 올해는 이준석 당 대표의 갈라치기까지 더 해져 차별과 혐오가 더욱 난무하다. 더군다나 인권의식 전혀 없는 윤석열 당선인이 5월 10일 대통령에 취임하면 이런 차별과 혐오, 갈라치기는 더욱 심해지고 장애인의 달 4월은 이전에도 잔인했지만, 내년엔 더욱 잔인해질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장연의 이동권 시위 등으로 인해, 장애인 이동권은 당연한 권리란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서 조금씩 확산되는 기미가 있는 것 같아 한 줄기 희망이 보인다. 솔직히 법원이나, 정부나, 지자체나, 행정부나 장애인에겐 참 가혹해 장애인들의 외침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지만, 이것도 계속되면 언젠가는 바위도 깨질 거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등이 지난 21일 수원지방법원 후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정신장애인 공무원시험 임용 불합격처분 취소소송 1심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모습. ⓒ에이블뉴스 DB

이런 때일수록 장애인 당사자를 필두로 장애계는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잇속 챙기기, 이권 다툼을 그만두고, 장애 정체성을 기반으로 서로 연대하고 뭉쳐 하나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그래야, ‘장애인의 달’이 장애인에겐 더 이상 시혜와 동정의 달, 잔인한 달로 다가오지 않을 테니. 물론 이거보다 더 중요한 건 일상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존중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 날은 과연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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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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