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분야에서 경영을 집행할 때 그 운영 방식 중에 이른바 ‘독립채산제’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조직의 일부이되 그 돈 관리는 그 일부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원래 사회주의 국가에서 많이 이용하는 경영 이론이기는 하지만, 미국 연방 우정청처럼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일부 활용하는 정책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우정사업본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일부이지만 그 경영은 독립채산제 원칙에 따라 우정사업본부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자녀, 특히 발달장애인 자녀의 수입 정책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요? 바로 이 독립채산제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부모는 당사자 자녀의 재정을 일부 보조해줄 수 있지만, 그 수입 자체는 당사자가 알아서 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간혹 부모가 자녀의 소득을 넘겨받아 자녀에게 용돈을 지급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집행하는 방식이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하겠지만 결론을 미리 말하면 ‘옳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독립채산제 원칙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신다면, 저는 당당히 ‘독립채산제를 이행할뿐더러 거기에 현물세까지 내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쉽게 말하면 제가 돈을 알아서 벌어서 쓰고 있을뿐더러 집에 몇몇 가지를 사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제가 2013년 한국장애인개발원에 입사하면서 독립채산제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집에 돈을 달라는 요청을 해 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장 큰 독립채산제의 성과는 대학생 시절 ‘학기를 시작하는 업무’였던 학자금 대출을 끌어와서 학비를 댔던 것을 상환하는 작업이었는데, 이 작업을 대학 졸업 후 상환은 제가 단독으로 집행해서 2019년에 전액 상환을 이뤄냈습니다.

대학 졸업 전에는 집에서 일부 지원이 있었습니다만, 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국장애인개발원 입사 결정이 났던 것을 생각해보면 거의 운 좋게 독립채산제로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지금은 실질적인 주력 신용카드인 일명 ‘콘스탄티노폴리스 카드’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지출은 늘어났지만, 다행히 그에 걸맞은 소득 상승까지 이뤄내면서 2016년 대만 여행이나 2020년 이사 과정에서의 컴퓨터와 침대 등 개인 집기 구매까지 이뤄낸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거대한 지출뿐만 아니라 단순한 간식을 사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비용까지 알아서 집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충전 카드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생활 전반에서 제가 알아서 돈을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필자의 전산(네이버) 개인 가계부 화면 일부. ⓒ장지용

그리고 관리까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이것마저 다행히 저는 전자 가계부로 다 관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돈이 얼마큼 있는지나 어디에 얼마큼 썼는지까지 전산으로 자동 관리되고 있습니다.

한동안 가계부를 쓰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만 가계부를 썼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PC로도, 스마트폰으로도 가계부를 작성하고 거기에 수지관리까지 진행 중입니다. 자세하게 살펴보게 되면 어디에 얼마큼 썼으며 무슨 분야에 지출이 제일 많았는지, 어디서 많이 썼는지 등 자세한 내용을 조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재정 정책은 매우 까다로운 편이라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은 적도 있었을 정도로 적자 재정으로 마무리된 사건은 거의 없었습니다. 단지 재정 적립액이 모자라서 걱정이 앞선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돈이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역술인마저 “자네는 돈이 떨어지지 않는 사주야!”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소득도 월급 이외에도 에이블뉴스 원고료 등 다양한 수입원까지 있어서 그것으로 충당해서 생활하기도 하고 남는 돈은 별도 적립을 해놓는 등으로 해결했는데, 최근 고갈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인 재취업 성공으로 고갈을 간신히 모면했습니다.

앞으로 돌아와서, 발달장애인의 소득을 부모가 받아서 자녀에게 용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만 집행하는 방식은 대단히 잘못된 방식이라고 지적했는데, 이 이유가 나름 있습니다.

먼저, 당사자의 소득은 당사자의 노동에 의한 것이므로 당사자 이외에는 건드릴 권리는 없습니다. 당사자가 주체가 돼서 번 돈을 부모가 관리 등의 명목으로 가져가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경제적 착취’, 즉 장애인 학대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부모가 가져가는 것은 당사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이 아닌, 재산 가로채기 등을 통해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재정적 치부를 숨기려는 행위로 비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발달장애인 자녀를 자신의 수입원으로 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착취나 다름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발달장애인 자녀 당사자의 노동 의욕을 꺾는 우려가 있습니다. 소득이 발생한다는 것은 결국 노동 의욕을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많은 비장애 직장인들이 쉽게 퇴사하지 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가 월급 때문이라고 하소연하는 것은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발달장애인 자녀 당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하니까 소득이 생기고, 더 열심히 노동하려 하거나 소득 수준을 향상하려는 의욕이 생깁니다.

그러한 욕구를 관리 등의 명목으로 앗아가는 것은 결국 노동을 건성으로 하는 등 결과적으로 부모나 당사자 자녀 모두에게나 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자기가 관리하는 것이라면 노동 의욕을 꺾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 번째, 당사자의 자립생활 역량을 빼앗는 효과가 생깁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한데, 당사자의 자립생활 역량을 이러한 방식으로 차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기 위한 재정 관리를 이러한 방식으로 차단한다면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자립생활은 멀어져만 갑니다. 가장 중요한 자립생활 역량 중 하나인 금전 관리 권한을 뺏는 행위는 결국 사회적 낭비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발달장애인 자녀에게 가장 알맞은 재정 관리 대책은 바로 독립채산제 방식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당사자 권리뿐만 아니라, 책임감까지 부여할 수 있는 성과까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독립채산제를 가능하게 하려면 일단 금전관리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데, 일반적인 생각은 성인기 진입 시점에 금전 관리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격히 말하면 중학교 후반부부터 늦어도 고등학교 2학년 시점까지는 반드시 금전관리 역량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발달장애인훈련센터에서 훈련수당은 부모에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지급하여 당사자가 월급 등을 관리하는 연습을 시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에게 독립채산제 원칙을 준수하게끔 하는 것은 단순히 관리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이기에 반드시 준수해야 합니다. 으레 들리는 말이 있죠.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라고. 발달장애인의 돈 관리도 비슷하게 ‘돈을 가진 자, 그 금고를 견디라’라는 것입니다. 그 금고를 견디게 하는 비법은 간단하게도 독립채산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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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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