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전에는 거의 쓰지도 않았던 '거리두기'라는 말을 많이 쓰고 듣게 된다.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거리두기'라는 말을 생각해보니, 인간관계에서도 '거리두기'는 꼭 필요한 것 같다. 친구 사이, 부모 자식 사이, 부부 사이, 형제 자매 사이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거리 간격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당한 '거리두기'를 해야 오래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한 뒤, 나는 남편의 직장이 울산이어서 울산에서 신혼 생활을 하게 되었다. 허니문 베이비를 임신하다 보니 5개월이 지나 배가 점점 불러오자, 걱정을 싸매고 하시는 친정 엄마는 일주일에 한번씩 부산에서 울산을 오고 가셨다.

그런데다 멀쩡하게 잘 다니고 계셨던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오직 나 때문에 조기 퇴직 하셨다. 나와 남편에게 퇴직을 하시기 전에 퇴직 얘기를 하시길래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내가 너무 걱정된 나머지 친정 엄마께서는 퇴직을 해버리셨다.

허니문베이비 첫째를 임신하고 만삭, 출산 2일 전. ⓒ박혜정

퇴직을 하신 뒤로는 더 걱정에 걱정을 하시면서, 네가 휠체어를 타고 혼자 아기를 어떻게 키울거냐며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의 과하고 넘치는 걱정과 사랑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더라도 내가 어떻게든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도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게 처음이니 너무 막막했고, 거의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의지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나도 친정 엄마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결국 첫째를 출산하기 한 달 전부터 한동안은 남편이 부산에서 울산으로 출퇴근을 하며 친정 부모님 집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와 친정 부모님과의 '거리두기'는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첫째가 태어나고도 계속된 친정 부모님 집에서의 생활은 남편도 나도 너무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많이 생겼다. 남편은 출퇴근도 힘들고, 뜻하지 않은 처가 살이에 장인 장모 눈치도 보이니 편할리가 없었다. 나는 나대로 극성인 엄마의 육아 방식과 충돌하며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고, 무뚝뚝한 그 자체로 아무 말도 안 하시고 그냥 TV만 보시는 아빠도 싫었다.

드디어 첫째가 태어나고, 10일째. ⓒ박혜정

아기를 내가 돌보고 싶었지만, 엄마는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첫째를 안지도 못하게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내가 안기도 전에 행동이 빠른 엄마가 안아버렸다.

믿기 힘들겠지만, 첫째를 낳고 나는 유축만 했지, 첫째를 제대로 한번 안아 보지도 못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점점 우울하게 만들었고, 엄마가 날 위해라는 명목으로 하는 모든 것이 싫기만 했다.

내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힘들어도 할 수 있게끔 도와주면 좋겠는데, 엄마는 모든 것을 자기가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절대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어서 계속 싸우며 서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이어서 둘째까지 태어나면서 친정 엄마도 신체적 한계에 다다랐던 것 같다. 모든 육아를 친정 엄마가 다 한지 일년 몇개월이 넘었을 때, 온갖 극성을 떨며 육아에 혼신을 쏟은 엄마가 결국 병이 나셨다.

돌발성 난청이 갑자기 와서 일주일 입원을 하시게 되었다. 아마도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엄마 자신도 조금 깨달으신 것 같았고, 그 전처럼 모든 걸 다하겠다는 생각을 조금 버리신 것 같았다.

첫째가 15개월 때 태어난 둘째. ⓒ박혜정

그러면서 첫째는 친정 엄마만을 따랐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지만, 둘째는 아예 나보고 키우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육아를 못할거라고 생각하셨지만, 막상 둘째를 내가 키우는 걸 보시고는 마음을 놓으시는 것도 같았다. 그 뒤 첫째도 커가면서 엄마인 내가 키울 수 있게 되었고, 점점 친정 엄마는 손을 떼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4~5살 무렵 부터는 거의 우리집에 엄마가 오지 않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유축만 하고 있으면서 내가 정말 엄마인가 하며 산후우울증에 많이 시달리던 나도,

엄마와의 '거리두기'가 되면서부터는 아이들에게 엄마로서의 존재와 책임감을 느끼고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산후우울증도 거의 극복이 되어 갔고, 남편과의 사이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힘든 연년생 육아지만, 부모님과 거리두기 후, 우리 부부는 부모의 책임을 더 느끼고 행복한 육아를 하게 되었다.

힘들어도 행복한 육아를 하게 된 우리 부부. ⓒ박혜정

물론 부모님이 무조건 잘못해서 나와 남편이 힘들었다고 얘기를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리 엄마의 깊고 큰 사랑은 나도 알고 있다. 성년이 된 자녀라도 힘들어하면 부모가 얼마나 마음이 쓰이고 도와 주고 싶은지, 부모가 되어 보니 충분히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나라 부모 자식과의 관계가 다른 나라의 관계보다 더 끈끈하고 깊게 맺어진 문화인 걸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성년이 된 자녀가 힘들어 하더라도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도움을 받길 원하면 돕고, 아니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올바른 길이라 생각한다.

이게 안되면, '거리두기'가 안된 부모 자식 관계에서 서로 불편하고 서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되어야 원만하고 편한 사이로 오래 관계가 지속된다는 걸, 늘 되새기며 서로가 행복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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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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