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데블 포스터. ⓒ넷플릭스

필자는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추석과 설날 같은 명절이 오면 꼭 확인하는 일이 있다. 바로 공중파 TV에서 방영하는 명절 특선영화 스케줄을 보고 어떤 걸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1

10년 전이라 하더라도 외국영화를 볼 방법은 DVD대여 혹은 케이블 TV VOD 서비스를 이용해서 볼 수도 있었지만 공중파 TV의 명절 특선영화를 기다린 이유는 외국영화의 경우 한국어로 더빙을 해서 방영하는 관계로 편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방송환경이 급격히 변화해 이젠 명절이라 하더라도 외국영화보다는 한국영화를 더 많이 방영하고, 설사 외국영화를 하더라도 더빙보다는 자막으로 방영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지난 설날의 경우 공중파 TV에서 방영한 영화 중 단 한 편만이 한국어 더빙으로 된 영화를 방영하였을 뿐 다른 영화들은 한국영화 혹은 자막으로 방영하였다.

필자가 자막보다 더빙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만큼 편안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의 내용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사에 집중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자막에만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어 영화에서 나오는 드넓은 배경이나 화려한 스케일 등을 종합적으로 감상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물론 더빙보다는 자막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더빙의 경우 배우가 연기하는 감정의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고, 원작품을 훼손시킨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이런 논쟁을 고려했을 때 외국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고 접근하는 데 있어 더빙과 자막 중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고를 결정할 수 없으나 하나 분명한 것은 장애인의 시청권을 보장하는데 다양한 방식을 제공하여, 소비자 선호에 따라 그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장애인의 시청권 하면 시각과 청각장애인을 떠올리고 화면해설과 자막안내만을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자면 더빙은 지적장애인들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장면이나 인물의 움직임에 대한 설명을 추가한다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방송이 가능하다. 즉, 더빙하면 화면해설 방송도 쉽게 제작될 수 있다.

한동안 한국어로 더빙된 외국영화를 찾기 힘들었으나 몇 년 전부터 넷플릭스와 같은 OTT 등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외국영화와 드라마를 한국어 더빙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는 해당 국가에서 제작하는 콘텐츠의 경우 일부는 화면해설 방송과 자막안내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시청자들이 여러 옵션을 통해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매주 본지를 통해 제공되는 작품을 확인할 수 있음)

넷플릭스는 음성과 자막을 다양하게 선택 할 수 있다. ⓒ넷플릭스

사실 넷플릭스도 처음부터 화면해설 방송과 자막안내 등을 제공한 것은 아니다. 2013년 공개된 데어데블이란 시각장애가 있는 히어로 드라마가 그 시작이었다.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이지만 시각장애인은 이 드라마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국 장애인단체와 활동가는 ‘접근성 있는 넷플릭스 프로젝트’(Accessible Netflix Project) ANP를 시작하였으며, 이후 미국에서 제작되는 넷플릭스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영어로 화면해설 방송과 자막안내 등을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전 세계에 진출하면서 현지 언어와 문자 화면해설 방송과 자막안내 등을 제공하고 있으나 모든 작품을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OTT인 WAVVE와 TVING은 이러한 접근성을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 분명 같은 영화와 드라마임에도 넷플릭스에서 제공되는 화면해설과 자막안내 방송이 국내 OTT에서는 제공되지 않고 있다. 다양한 장애 유형에 대한 접근성 보장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방송을 제공하고 시청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는 것이 필요하다.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77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 중 일부분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장벽을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하고 그 장벽은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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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욱 칼럼리스트
‘우리나라 장애인이 살기 좋아졌다’고 많은 사람들은 얘기한다. ‘정말 그럴까?’ 이는 과거의 기준일 뿐, 현재는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맞게 장애인정책과 환경도 변해야 하지만, 이 변화에서 장애인은 늘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와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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