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장애로 인해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 Unsplash

며칠 전 아들과 베를린의 어느 대형 쇼핑몰에 위치한 서점에 들렸다. 새해가 되고 개장한 첫 날이라 그런지 쇼핑몰과 서점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책과 학용품을 고른 후 아이와 함께 계산대로 향하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여성이 눈에 띄었다. 발달장애가 있어 보였다.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 저 사람은 왜 마스크 안 써?"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평소보다 목소리가 더 커지는 탓에 아이의 질문은 자동적으로 여성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러자 여성은 미소 지으며 아들과 계산대의 직원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건강상의 이유로 마스크를 못 써요. 의사 선생님이 저더러 마스크 안 써도 된다고 했거든요. 양해 부탁해요".

독일에는 천식이나 심장질환, 만성 폐질환, 특정 정신질환 같은 건강 상의 문제나 장애가 있는 사람, 그리고 만 6세 이하 아동은 마스크 착용 의무에서 제외된다. 물론 이들이(아동은 제외) 시설이나 기관을 방문할 때 마스크 의무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의 의사 진단서를 증명하는 게 원칙이긴 하다.

하지만 서점 직원은 여성에게 의사진단서를 요구하지 않았고, 서점을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불만을 표하거나 항의하지 않았다.

간혹 의도적으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무작정 가게에 입장해서 가게 직원과 큰 마찰을 빚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다른 승객들과 시끄러운 언쟁을 벌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에 비하면 서점에서의 상황은 놀랍게도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계산을 마치고 서점을 나오며 나는 인파 속에서 묵묵히 걸어가는 여성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19 대유행이 이어지는 약 2년 동안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장애인을 본 적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고 카페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던 장애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거부 당하는 듯 하다. ⓒ Unsplash

서점에 다녀온 날 저녁,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장애인들의 다양한 경험담을 읽을 수 있었다.

마스크 없이 지하철에 탔다가 맞은편 승객이 마치 '마스크 거부 운동'에 동참이라도 하는 듯 마스크를 벗어 던진 일. 어떤 사람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와 당장 마스크를 쓰라고 협박한 일. 사람들이 "당신은 백신도 안 맞았죠?"라며 차갑게 반응한 일 등등. 당사자들의 억울한 사연은 끝도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 마트에서 장보는 일을 포기했다. 문화생활이나 여가활동도 포기했다. 심지어 병원에서도 치료를 거부당한 경험이 있어 병원 가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앞서 언급했듯 호흡기 질환 등 신체 건강상의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심리적 요인으로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아동 성폭력 규명위원회'(Unabhängige Kommission zur Aufarbeitung sexuellen Kindesmissbrauchs)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어린 시절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 중 약 37%가 마스크 착용이 그 당시 기억을 유발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독일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마스크를 착용해라고 강요하는 가운데, 신체적·정신적 건강상의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듯하다.

마스크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의사 진단서를 증명하면 된다는 규정은 있다. 그러나 어딜 가든 마스크를 써야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표시와 팻말이 걸려 있고, 시설이나 기관은 마스크 미착용자의 입장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가로막는 현실의 벽은 너무 높은 상황이다.

정신 장애가 있는 베로니카 그래베(Veronika Gräwe)가 어느 칼럼에서 적은 내용이 기억난다.

"어린 아이들을 마스크 착용 의무에서 제외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마스크를 쓸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사람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슈퍼에서 추방당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에이블리즘(ableism)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 이러한 현실이 과연 타당한 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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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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