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서울시 발달장애인 전수조사 설문내용 가운데 일부. ⓒ이원무

작년 말에 우편물 한 장을 받았는데 그 속에는 서울시 발달장애인 전수조사 공문 및 전수조사지가 들어있었다. 전수조사지엔 서울시 거주 만 18세 이상 65세 미만 재가 성인발달장애인을 전수조사해 생활실태 및 복지서비스 욕구를 파악, 서울시의 발달장애인 복지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한다는 취지에서 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올해 3월이 되자, 그때까지 전수조사지에 답해야 했기에, 그때 혼자 집에서 전수조사지에 답했고, 아리송한 것은 전화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답하는 과정에서 전수조사지에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관해 실제 예를 통해 설명해보겠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와 관련하여 한 달에 가장 많이 지출하는 항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보기가 7개 있었다. 보호 돌봄비(예. 복지시설 이용료), 의료비(예. 병의원 이용료), 치료비(예. 감각통합, 언어치료비 등), 보장구 구입 및 유지비, 교육료, 주거 환경비, 기타 등 7가지를 제시하면서 7가지 중, 1순위, 2순위, 3순위를 고르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보며 7가지 중 내가 고를 수 있는 1순위, 2순위, 3순위는 없었다. 그래서 기타로 괄호 친 곳에다가 식비라고만 써놨다. 사실 식비가 가장 많이 지출되는 항목이기에 그랬다. 보호 돌봄비, 의료비, 치료비 등을 보면, 이 질문항목이 중증지적‧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 치우쳐 기획된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도전적 행동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차별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도전적 행동이 있다고 하면 그거에 대한 상세질문까지 덧붙인 질문과 보기들을 보며 모욕감마저 들었다. 순전히 비장애인 기준에서 도전적이거나 문제이고, 이들이 말하는 정상이란 기준은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도달하기 어려운 게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의사소통의 다름으로 보기보단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행동을 대상화하기에 차별받는다고 느낀 거다. 설령 나 자신을 꼬집는 것이 비장애인 시선에서는 도전적 행동(문제행동)이라 해도, 나에겐 졸음 없애고 집중하기 위해 그 행동을 하는 거다. 약간 손바닥으로 무릎을 공공장소에서 치는 건 스트레스 해소 일환이다. 나에겐 의사소통하는 시도인 거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문제행동이란 없다고 답을 한 거다.

2021 서울시 발달장애인 전수조사 설문내용 가운데 인권침해 관련 조사항목 중 일부. ⓒ이원무

‘코로나와 관련하여 가장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에 대한 답의 보기로는 도전적 행동의 증가, 체중 증가 등 건강문제, 복지기관 이용의 어려움, 긴급돌봄 서비스 부족, 외출 어려움, 돌봄 부담 및 심리적 어려움, 기타 등 7가지를 들었다. 보기들 대부분이 저인지 중증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던가?

물론 코로나 전염 우려로 운동하지 못해 살이 찌는 등 건강문제의 우려가 있는 고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장애인의 경우 건강문제에 체크할 수 있겠지만 보기 대부분은 저인지 장애인 쪽에 치중했다.

그래서 고인지 당사자들이 겪는, 예를 들면 소득을 얻을 기회 상실로 인한 생계의 어려움이라든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발생하는 우울감, 불안감 등의 심리적 어려움 등을 보기로 넣고 장애인 당사자 입장 고려해 질문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코로나로 인해 겪는 어려움과 관련해 ‘코로나와 관련하여 어떤 지원을 원하십니까?’란 질문에 대한 보기 또한 역시 도전적 행동 지원, 부모 심리 상담 지원 등의 보기 등 저인지 중증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그 가족에 치우친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당사자 정서적 지원 및 동료상담, 질 좋은 일자리를 위한 지원사항 등을 추가해 보기로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역시 든다.

인권침해 조사하는 항목에서는 시설 등에 보내겠다고 협박하거나, 어딘가에 갇히거나 몸이 묶인 적이 있었느냐는 등의 질문들이 있었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괴롭힘, 임금체불 등 직장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나 노동착취 경험 등에 대한 질문사항은 없었다. 다만 인권침해 관련 질문에 답하기 쉽도록 그림으로 처리한 것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서울시 돌봄 지원서비스와 관련해 활동지원서비스, 주간활동서비스, 돌봄SOS센터, 긴급돌봄, 최중증장애인 낮활동 지원사업, 홈헬퍼(장애여성 임신 등)등을 인지하고 이용한 적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항목도 있었다. 이것 또한 중증지적‧자폐성 장애인에 주로 중점이 되는 사항이라 인지하지만, 이용 경험 여부는 없다는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발달장애인 전수조사 추가사항으로 낮에 주로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지역 내 복지기관(복지관, 주간보호센터) 이용,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이용, 직업재활시설 근무, 장애인 일자리 등에 취업, 전공과와 대학 등의 학교에 다님 등의 보기가 있었다.

고등교육기관인 대학, 특히 일반대학에 다니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드물며, 심지어 장애인에 특화된 대학을 다니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조차 소수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거의 드물고, 대개는 저임금 일자리 등에 취업하고 있다. 이런 현실들까지 고려해보면, 이 전수조사 추가사항 역시 사실상 중증장애와 제공자 중심 정책 관련 항목들에 치우쳤단 느낌을 받게 된다.

서울시청(좌측), 2021 서울시 발달장애인 전수조사 설문내용 기획한 서울시청 장애인복지정책과 입구(우측). ⓒ이원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자조모임(단체) 관련한 당사자 권리 보장 어려움이나, 결혼할 권리, 일상생활에서 쉬운 정보나 맥락에 따른 정보와 관련한 알 권리 등에 관련된 질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고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에 관해 질문사항이 많이 없었고,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 관련 질문들이 상당히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질문을 기획한 담당자에게 물어봤는데, 중증장애가 있는 자녀의 부모님들이 질문을 짧게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물론 이들의 특성상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고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에게도 전수조사 시 어떤 것이 필요하냐는 의견을 물어봤어야 했다.

이렇게 전수조사를 하고 나면,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돌봄과 이와 관련된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될 것이 예상된다. 물론 돌봄이 필요한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장애인도 꽤 된다.

그런 장애인들에게는 돌봄보다는 결혼할 권리와 관련한 보조나 일상생활을 당당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맥락에 따른 정보 등의 알 권리, 자조단체 장애인 당사자가 필요하다고 하는 지원, 선거권과 예술활동‧문화생활을 당당히 누리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것들, 질 좋은 일자리에 취업해 근로하기 위한 필요사항 등 권리의 주체로 살아가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질문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 진정으로 서울시 발달장애인 전수조사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이번 2021년 서울시 발달장애인 전수조사는 중증장애 중심의 돌봄에 치우친 조사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발달장애인은 돌봐야 한다는 인식만 심어주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조사를 기획한 서울시청 장애인복지정책과엔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돌봄의 대상, 권리의 객체로 보는 인식이 짙다고 본다. 제공자 중심에 아직도 머물러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서울시 발달장애인 전수조사 방향은 고인지 경증장애인도 포함하고 제공자 중심을 지양함은 물론 권리의 객체가 아닌 주체라는 시각에 기반한 전수조사로 다시 재설계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서울시에 거주하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계기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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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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