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있는 아이의 모습. ⓒpixabay.com

아들이 만 네 살 무렵에 눈에 띄는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마치 얼굴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 듯 손으로 눈과 코 주변을 가볍게 터치하는 행동을 보이더니, 날이 갈수록 이 행동이 30초에서 짧게는 10초 간격으로 나타났다.

행동의 강도 역시 갈수록 높아졌다. 아이와 함께 TV를 시청하던 어느 날, "쩍"소리가 날 정도로 자신의 얼굴을 심하게 때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아이를 데리고 당장 소아과를 찾아갔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평소 불친절하기로 소문난 의사가 딱딱한 말투로 물었다.

"아이가 특정 행동을 반복해서요."

아직까지는 아이가 '문제행동' 없이 의사 앞에 가만히 앉아 있자, 나는 아이의 행동을 직접 재현해가며 증상을 설명했다. 차가운 의사 앞에서 나는 진땀이 나올 정도로 긴장했다. 독일에 13년 넘게 살고 있지만, 병원에 가는 일은 늘 긴장된다. 단어 하나라도 잘못 이해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들을 한동안 관찰하던 의사가 드디어 아이의 '문제행동'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게 되물었다.

"누구에게 방해되는데요?"

"뭐… 뭐라고요?"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저 행동이 아이 본인에게 방해되는 건가요, 아님 어머니에게 방해되는 건가요?"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의사는 말을 이어 나갔다.

"저건 틱(tic)이에요. 이 연령대 아동들에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죠. 아이 행동에 너무 주의를 주면 틱이 심해질 뿐이니까, 관심 주지 말고 그냥 지켜만 보세요. 언젠가는 지나가요."

이후에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에게 방해되는데요?"라는 말 한 마디가 순간 나를 유리병처럼 감쌌고, 그 유리병 안에서 나는 의사의 말이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과 시부모님에게 병원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독일인들 역시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의사는 굉장히 불친절했다. "누구에게 방해되는데요?" 이 한마디가 며칠 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어떻게 의사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의 행동이 내게 방해 되어서가 아니라, 행동의 원인과 앞으로의 대처 방식을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리고 며칠 후, 아이와 함께 시댁 마당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인 바로 옆 건물에서 한 남성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크게 질렀다. "아악!"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남성은 재빠르게 손뼉을 3번 짝짝짝 쳤다.

또 침묵이 흐른 후 남성은 크게 "뭐라고?"라고 외쳤다. 그리고 다시 침묵. 남성은 이 세가지 행동 패턴을 반복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이 소리에 귀 기울이던 아들이 갑자기 남자의 행동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남자: "아악!" 아들: "아악!"

긴 침묵

남자: 짝짝짝 아들: 짝짝짝

긴 침묵

남자: "뭐라고?" 아들: "뭐라고?"

긴 침묵

그렇게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하며 약 5분간 의사소통을 했다. 그것은 분명 의사소통이었다. 아들은 남성을 놀리려는 의도 없이, 그저 남성의 소리에 반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독일의 저명한 특수교육학자 말(Winfried Mall)은 타인에게 적응하고 영향을 주는 모든 행위를 의사소통으로 정의하며, 상대방이 내는 소리를 모방하거나 상대방의 움직임 리듬에 따라 손뼉을 치는 등의 다양한 시도로 누구든지 의사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의 이론에 따르면, 아들은 분명 남성과 의사소통을 한 게 맞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날카로운 의사의 말이 울려 퍼졌다.

"누구에게 방해되는데요?"

솔직히 남성의 행동은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던 나를 방해하는,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문제행동'에 가까웠다. 그러나 아들에게 있어 남성의 행동은 방해 요소이기는 커녕, 오히려 의사소통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문제행동'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라는 것을. 선입견이 없는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문제행동'은 당장 고치거나 치료해야 하는 행동이 아니라, 또 다른 의사소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규정하는 '문제행동'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깨달았다. 내가 아이의 틱을 '문제행동'으로 치부하고 결국 아이의 틱이 나에게 방해되었기 때문에 내가 병원을 찾아 갔다는 것을. "누구에게 방해되는데요?"라는 의사의 질문에 나는 "저한테요"라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사의 말대로 아들의 틱은 몇 달 후 자연스레 사라졌다. 친절함은 없지만 전문성은 있는 것 같아 소아과 의사를 당분간 바꾸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소아과 의사의 불친절함은 나에게 방해가 되는 거지, 진료 대상인 아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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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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