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말마다 아들과 전철을 타고 부산 일대를 다닌다. 자폐성장애청년인 아들은 평일에는 복지관에 가고 활동지원사나 조부모님과 여가시간을 보내다가 주말에는 엄마와 데이트를 한다.

전철 안 노선안내도에 변경되거나 새로 개통된 역명 스티커가 잘 부착되었는지, 혹시 누락된 것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들에겐 중요한 과업인지라, 지하철의 각 칸마다 다니며 확인한 후에야 다시 내게로 돌아와 함께 이동한다.

자폐성장애인들 중엔 정해진 규칙을 빈틈없이 지키려는 강박을 가진 이들이 있다. 도로의 가로등 중 한두 개만 불이 켜지지 않는다든지, 간판의 글자스티커가 떨어졌다든지 시설물을 점검하는 이들도 있고, 사람들의 어깨에 꼬인 가방끈을 풀어주거나, 풀어진 단추를 잠궈주거나, 마트의 진열대에 흐트러진 상품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이런 강박적 특성은 직업적으로 활용되어 컴퓨터 프로그램 오류 체크 업무를 맡기도 하고,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 경로를 모두 외워 배달업무를 맡기도 한다.

아들의 주말 과업은 몇년 째 매주 오류를 잡아내고 홈페이지 게시판에 내용을 올려서 점검보수로 이어져왔다. 초기에는 부산교통공사 담당직원이 즉시 스티커 보수를 할 수 없는 사정을 전화로 알려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때 아들 대신 전화를 받은 나는 이렇게 전했다.

“아들은 구두 언어로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자폐성장애인입니다. 홈페이지에 올린 그대로 문자 소통은 가능하니, 지금 제게 주신 답변을 게시글로 적어주세요. 그러면 아들이 읽고 이해할 겁니다.”

그리고 자폐성장애 뿐 아니라 청각장애인이나 외국인들도 노선안내도만 보고 이동을 하니 모든 사람의 편리를 위해 점검보수를 철저히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한 주도 빠짐없이 활동을 지속한 아들은 3년 후 부산교통공사에서 우수고객으로 선정되어 교통카드 상품권을 받았다.

그러나, 이렇게 독특한 특성을 활용해 나름의 사회적 기여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칸 저 칸 다니며 노선도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찍고 다니는 아들의 모습이 뭇사람들의 눈엔 편안하지 않은듯 하다. 어느 날 아들과 거리를 두고 무심히 자리에 앉아 있던 내 곁에서 한 중년부부가 말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네. 아까부터 저러고 돌아다니더만.”

“저기요. 제가 저 청년 엄마입니다.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 자폐성장애라 조금 독특합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랐네요.”

“더 설명 드리면요. 노선도에 역명변경 스티커가 제대로 안 바뀌면 사람들이 길을 헷갈릴 수 있잖아요. 아들은 그거 체크해서 지하철직원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회성이 부족하긴 하지만 성실한 아들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다양하다. 4,50대 중년들은 계속 쳐다보거나 수근대고, 2,30대 청년들은 익숙한 듯 싱긋 웃거나 무심하고, 노인들은 혀를 끌끌 찬다. 그나마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선 경험이 느껴진다.

학교 다닐 때 장애학생 한두 명씩과 같은 학급에서 생활해봤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혼잣말을 하고,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상동행동을 하고, 대화도 게임도 못하지만, 의외로 만들기도 잘 하고, 피아노도 치고, 친구들의 말도 잘 듣는 순수함을 경험하며 익숙해졌을 것이다.

함께 생활 속에서 부딪히며 화해하여 어울린 경험만이 상대방의 다름과 부족함과 강점을 정확히 이해하게 된다. 성장과정에서 장애를 경험해보지 못한 이가 어른이 되어서 정치나 교육, 기업이나 복지 현장에서 한두 번 강의 듣고 간접체험하는 정도로 정확한 인식이나 지원을 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부정적인 편견으로 굳어진 시선은 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어떤 정책이나 돈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몇십 년 동안 도심에서 떨어진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온 거주시설이나 특수학교는 기성세대의 뿌리깊은 편견을 그대로 보여준다. 차로 한두 시간을 가야하는 장애학생들의 학교를 우리 동네에 짓자고 하면 쓰레기소각장이나 화장터보다 혐오스럽다며 큰소리로 거부하는 이들이 아직도 숱하다. 아무리 선진적으로 탈시설정책을 만들어도 정작 우리 아파트, 마트, 지하철에서 이웃의 눈총들이 연달아 발사될 때 장애인가족은 방패도 없는 가슴에 총구멍이 뻥뻥 뚫린다.

장애인 지원의 근원적 해결은 단순하다. 모든 어린이가 장애와 비장애 통합유치원과 통합초등학교를 경험하면 된다. 학교 내 병설유치원이 자연스럽듯이, 특수학급이나 작은 특수학교를 일반학교 속에 병합하는 것, 수업과정은 맞춤형으로 진행하더라도, 물리적 공간만이라도 매일 함께 등교하고 함께 뛰놀고, 함께 체험하는 것, 그것이면 된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가 지하철 한 번 타는 것, 마트에 한 번 가는 것, 가까운 학교에 등교하는 것조차 죽을 용기를 내야 하는 세태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계속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세대들에 희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 세상을 떠나더라도 홀로 남은 아들이 눈총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 단지 그 바람 하나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지하철을 타고 데이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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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주 칼럼니스트 청년이 된 자폐성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을 둔 엄마이고, 음악치료사이자 부모활동가로서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의 문제와 정책제안,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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