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업무용 전화기. ⓒ한지혜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직장은 장애인단체인 만큼 많은 전화들이 걸려온다.

하루의 첫 스케줄로 우리와 담소를 나누고서야 일상을 시작하는 분, 시각장애인용 핸드폰 기기가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고 다급하게 연락주시는 분, 자신이 유튜버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좋아요” 버튼 좀 눌러 달라는 청유에 이르기까지.

사람 사는 사회가 그러하듯 다양한 목소리와 사연들에 우리 사회복지사들은 상담사도 되었다가 A/S 기사도 되기도 하고, 유튜브 구독자도 되면서 1인 다역을 하며 업무를 병행한다.

한 달 전 직원이 상담 요청이라며 한 통의 전화를 연결해 줬다.

“선생님! 시각장애인도 살아갈 수가 있을까요?”

짧은 물음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많은 심경이 내포되어 있어 보였다.

생각을 정리하여 답하려는 순간 그는 또 한 번 진중하게 되물으셨다.

“선생님! 시각장애인도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요?”

필자는 느꼈다. 그는 간절히 살고 싶었고 희망적 의미를 부여받고 싶어 하셨다는 것을,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선생님 많이 힘드시죠? 네 그런데 신체의 일부가 기능을 잃었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그대로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통념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필자 역시 진심을 다해 답신해 드렸다. 주고받는 말속에 어느 정도의 신뢰감을 구축한 후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분은 경기도에 거주하시며 평생을 교직 생활을 하시다 정년퇴임하셨고 갑작스런 질환으로 실명을 하게 되셨다고 하셨다.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고 자신의 장애가 전혀 인정되지 않아 주변에서 알까 두렵다고 하셨다. 그런 이유로 비대면임에도 불구하고 거주지역 복지기관에 상담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필자가 있는 이 먼 부산까지 전화를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기관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항상 뵙게 되는 분들이 중도에 시각장애를 입은 분들이다. 본인의 생애 속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닥쳤는데 그것도 눈만 뜨면 바로 확인되는 사물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어느 누가 온전한 마음으로 평정심을 갖겠는가?

청천벽력 같은 일이고 앞을 볼 수 없는 세상만큼이나 미래도 칠흑처럼 느껴질 것이다. 망연자실과 분노가 반복되는 역동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난 후 찾아오는 것은 안정감이 아닌 체념이다.

그나마 시간이 약이 되어 불편함은 익숙함이 되어 일상 속에 조금씩 묻어지게 할 수 있는데 자아상실감은 쉽사리 회복되기가 힘들다. 이전의 자신과 비교하면 할수록 현 상황이 더욱 못마땅할 것이며 본인이 무능하다고 자책을 하게 된다. 그 또한 공감되고 이해된다. 하지만 냉철하게 따져보면 그러한 원망과 비탄들이 본인을 더욱 학대할 뿐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제2모작을 시작하는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존중할 때 모든 상황들은 다시금 좋은 자양분들로 바뀌어 삶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중도 장애인들에게 지금의 모습에서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스스로를 매일매일 칭찬해 주고 작은 성장에도 의미를 부여하기를 권해 드린다.

남의 도움 없이 전화 버튼을 눌러 누군가에게 첫 전화를 건 일, 장애인 콜택시를 처음 이용하여 어디론가 이동한 날,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한 날 등. 소소한 일 일수도 있지만 엄청난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상황들에 대견하다고 토닥토닥 자신을 칭찬해주기를 말이다.

한 달 전 경기도에서 전화를 주신 노신사 어르신 역시 차츰차츰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 중이시다. 앞을 볼 수 없어 움직이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리에 근력이 쇠약해지셨는데 다시 걷기 위해 실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다. 더불어 심신이 좀 더 회복되면 부산에 오시어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해 주시고 싶다고 기대해 달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분과의 맛 있는 식사가 벌써부터 기다려 진다.

“선생님 편안해지시면 꼭 오셔서 맛있는 밥 한 끼 사주세요.”

장애를 겪고 있는 우리 모두는 고뇌한 만큼 더 행복해져야 함이 마땅하다. 오늘도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 모두를 위해 파이팅을 외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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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 칼럼니스트 집에서는 좌충우돌 쌍둥이들의 엄마! 직장에서는 소규모 사회복지시설의 책임자. 외부활동에서는 장애인인식개선 강사. 동네에서는 수다쟁이 언니. 이 모든 것과 함께하는 나의 장애. 장애인들은 슬프기만 해야 하나요? 우리를 바라만 봐도 안타까우신가요? 장애인의 삶을 쉽게 예단하지 마세요. 우여곡절 속에서도 위풍당당 긍정적 에너지를 품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인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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