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중복장애인의 의사소통이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 것은 조영찬(현 나사렛대학교 박사과정)의 다큐 영화 ‘달팽이의 별’이 상영되면서였다. 조영찬이 대전맹학교 학생 시절 시청각 장애로 인하여 촉각에만 의존하여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것을 돕고자 ‘손우회’가 만들어졌고, 점자를 손등에다 타자하여 소통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였다.

시청각장애인의 손가락점자를 영어로는 핑커 브레일(Finger Braille)이라고 하고, 국내에서는 점화라고 부르고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조영찬 외에 조원석도 이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으나 다른 시청각 중복 장애인은 아직 손가락점자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 후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는 시청각 중복 장애인의 의사소통에 대한 정책연구를 한 바 있고, 복지부에서도 중복장애인의 의사소통과 복지지원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였고, 밀알선교회 산하 시청각장애인 지원센터에서는 시청각 장애인 지원법 입법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KT에서는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에 후원하여 시청각장애인 점어를 개발하였고, 한국사회복지연구원은 이 연구를 확장하여 밀알 헬렌켈러센터를 운영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우리동작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는 시청각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연구모임을 만들기도 하였고, 실로암장애인복지회에서는 지난해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를 개설하여 본격적인 연구와 학습지원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점자 기호 체계가 아닌 별도의 체계로 의사소통을 하도록 단순화하였는데, 이는 문어를 깨치지 못한 선천성 시청각 중복 장애인의 소통을 위하여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를 중심으로 소통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후쿠시마 사토시가 중도 실명하여 초등학교 4학년에 맹학교로 전학하였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실청을 하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생기자 그의 어머니 후쿠시마 레이코가 아들에게 손등에 점자를 찍어 대화를 시도한 것에서 손가락 점자가 개발되었다.

사토시가 손가락 점자를 익힐 수 있었던 것은 먼저 글을 배우고 나서 실명을 하였고, 점자를 익힌 다음 실청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 한다. 일본의 전국시청각장애인협회의 자료에 의하더라도 시청각 장애인 회원 590명 중 손가락 점자로 소통하는 사람은 32명이다.

발달장애 중복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몸짓 언어를 개발, 학습시켜 소통하는 방식을 국립특수교육원이나 복지부에서 이화여대에 의뢰하여 개발한 것처럼 단순화된 점어도 필요할 수 있겠으나,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점자를 그대로 이용하여 소통하는 방식의 시도가 우선되어 경험이 쌓이면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로암장애인복지회 시청각장애인학습지원센터(센터장 정지훈)에서는 국내의 체계적 연구를 위하여 먼저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일본어 손가락 점자 안내서를 번역해 ‘일본 손가락점자 가이드북’으로 출판하였다. 그리고 올해 하반기에는 영어 손가락 점자 안내서를 번역하고 앞으로 한글 점자 안내서를 개발하는 등 연구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일본 손가락 점자 안내서는 1장에서는 시청각 장애인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2장에서는 손가락 점자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의사소통 방식은 두 손을 펼쳐 손등이 보이도록 한 다음, 손톱 위 손가락 등 끝마디를 점자 타자기를 두드리듯이 점자로 타자하여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이다. 물론 점자를 아는 사람끼리 소통이 가능하며, 서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일본 점자와 동일하다.

미국에서 개발한 점자 타자기가 퍼킨스 타지기이고, 일본에서 개발한 점자 타자기가 라이트 타자기인데, 차이는 타자하는 손이 좌우가 서로 바뀌어 있다. 즉 1, 2, 3점과 4, 5, 6점의 좌우가 다른 것이다.

손가락 점자 안내서는 점자 아이에우에, 가기구게고 등 각 단계별로 점자를 설명하고, 점자를 익숙화 하기 위한 연습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촉음, 장음, 촉음, 숫자, 영어 기초 등의 순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5장에서 9장까지는 의사소통에서의 에티켓이나, 주의점 등을 다루고 있다. 시청각장애인을 만나면 어깨를 가볍게 쳐서 대화 준비를 하고, 손가락 점자로 소통을 하다가 말없이 자리를 뜨면 장애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끊어버리는 것이므로 주의하여야 한다는 것, 항상 당사자 중심에서 자기결정권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 외출하여 이동 중에 대화하는 방법, 그리고 손가락 점자를 통해 비장애인과 통역자로서의 역할 등을 다루고 있다.

10장에서는 기기를 이용하여 의사소통 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브리스타(독일산)을 이용하면 점자를 입력한 것이 메모지로 출력되므로 출력물(종이)을 통하여 소통하는 방식이고, KGS사의 ‘브레일 메모’를 사용할 경우를 소개한다. 기기의 사용법과 오타 교정 등 상세한 안내를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점자단말기인 한소네가 서로 통신을 통해 두 대가 동시에 연동하여 작동되게 하면, 시청각 장애인이 입력한 언어가 통역자에게 전달되고 통역자가 하는 언어가 시청각 장애인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일본에서 장애인법과 차별해소법을 마련할 때 TF팀에 장애인당사자로서 시청각장애인이 참여하였는데, 회의 내용이 손가락 점자로 통역되었고, 회의 도중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나 발언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엘로우 카드를 들면 회의를 중단하고 발언권을 시청각장애인에게 주었다고 한다.

회의가 지연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충분한 당사자의 의견 반영이 더욱 중요했기에 이러한 방식을 채택했던 것이다. 유엔 에스캅에서 아태장애인 10년 워킹그룹 회의에서도 손가락 점자가 통역되었다.

손가락 점자 또는 점화가 시청각 장애인의 의사소통 방식으로 널리 소통되고 그로 인한 영향으로 후속 연구가 계속되어 다른 중복 장애인의 의사소통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을 지원하기 위한 서적을 출판하고 있는 일본이 부럽기도 하다. 인권은 다수가 아닌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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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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