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장애인 인식개선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저명한 카투니스트 필 후베(Phil Hubbe)의 카툰. ⓒ PHIL HUBBE, www.hubbe-cartoons.de

독일에서 장애인 인식개선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카툰이 있다. 독일의 저명한 카투니스트 필 후베(Phil Hubbe)의 작품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장애인으로 보이는 왼쪽 여성이 지체장애 남성과 시각장애 여성에게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장애인(Behinderte)과 장애가 있는 사람(Menschen mit Behinderung)… 여러분은 도대체 스스로를 뭐라고 부르세요?" 그러자 남성은 “라이너", 여성은 "저는 사비네예요"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우리는 장애인, 비장애인이기 이전에 민세리이고 라이너고 사비네이다. 라이너와 사비네는 자신이 가진 다양한 특징 중 하나인 장애로 인해 장애인 또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에 불과하다.

독일에는 장애인과 관련하여 다양한 공식용어가 사용된다. 장애인(Behinderte), 장애가 있는 사람(Menschen mit Behinderung), 제약이 있는 사람(Menschen mit Beeinträchtigungen), 핸디캡이 있는 사람(Menschen mit Handicap), 특별요구가 있는 사람(Menschen mit besonderen Bedürfnissen), 특별능력이 있는 사람(Menschen mit besonderen Fähigkeiten) 등등.

그러다 보니 실제로 나 역시도 장애인을 만나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명칭을 써야할 지 막막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체장애가 있는 친구가 내게 결정적인 말을 남겼다. "그럼 당사자한테 어떤 명칭이 좋을 지 직접 물어봐!".

사회교육학자이자 지체장애가 있는 카챠 뤼케(Katja Lüke)는 장애인 명칭에 관한 어느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장애가 있는 사람인가? 장애가 있는 여성인가? 아님 장애 여성인가?" 이 모든 명칭은 내게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일반적으로 나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내게 여성 또는 여자라는 측면도 중요하기에 ‘장애가 있는 여성‘이라는 표현도 많이 사용한다.

왜냐하면 나는 다양한 능력과 유머감각, 학구열, 호기심, 그리고 장애를 갖고 있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장애 여성'이라는 표현은 사회가 우리를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 즉 사회적 장애물을 강조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장애' 대신 '제약'이나 '제한'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들은 차별이 덜한 단어일지는 몰라도, 장애인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더 정확하게 묘사하는 단어는 결코 아니다.

나에게 '장애'라는 단어는 결코 차별이 아니다. 장애는 내가 갖고 있는 수 많은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니까.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한다. 다양한 특징과 장애가 있는 내 자신을 사랑한다".

독일의 어느 시사토크쇼에서 중도중복장애 자녀를 둔 엄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장애라는 표현이 차마 입 밖에 떨어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는 중도중복 장애가 있어요’ 대신 ‘우리 아이는 신체적인 제약이 많아요’라고 말하곤 했죠.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수영 코스를 등록하려고 수영장에 문의한 적이 있어요. 전화를 걸어 ‘거기 테라피 수영장 있지요?’라고 물으니 수영장 직원은 잠시 멈칫하더니 ‘아니요 없어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홈페이지에는 신체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통합 수영 코스가 있다고 써있는데요?’라고 물으니 직원이 곧바로 대답하더군요. ‘아, 장애인 풀장 말씀하지요?’

그때부터 저는 그냥 장애라는 표현을 쓰기로 결심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 살기가 너무 복잡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결국은 어떤 표현을 쓰는가 보다 그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한 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장애인, 장애가 있는 사람, 제약이 있는 사람, 핸디캡이 있는 사람, 라이너, 사비네, 카챠 뤼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명명할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러한 단어 선택의 폭이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과연 명칭을 바꾸면 인식이 달라질까? 어떤 문제를 숙고하여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법이다. '장애'를 진지하게 숙고하고, 장애가 그 사람의 다양한 특징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새로운 인식에 도달할 때, 우리는 인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노력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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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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