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지 3주가 되었다. 이사한 첫째주는 짐 정리에 집안도 내 머리도 어수선한 상태였고 둘째주에는 낯선 동선에 조심조심 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돌아다니다 보니 관절은 삐거덕거리고 여기저기 부딪히는 통에 몸이 고단한 한주였다. 이사한지 3주가 된 지금은 몸도 마음도 새집에 적응이 되어가는 듯 어느정도 심신이 여유로워진 것 같다.

이런 내 상태와는 관계없이 너무나도 집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시댁 식구들의 성화에 부응하고자 이사한지 2주째 주말 집들이를 하였다. 시부모님과 형제들 내외 그리고 조카들까지 모이니 우리 가족까지 모두 12명이 되었다.

모두들 간단하게 하라는 말에 남편은 간단하게 떡국을 하자고 했고 주방구조가 낯설어 불편했던 필자도 그나마 그게 간단할 것 같아 메뉴는 떡국으로 정하였다. 근데 시댁 식구들 모셔놓고 우리 가족 먹듯 말 그대로 떡 넣은 국이어서는 안될 것 같아 육수를 만들고 쇠고기와 달걀 고명 그리고 바삭바삭 구운 김은 따로 장만하였다. 그런데 또 곰곰 생각해보니 덜렁 떡국만 내놓기가 민망한 마음에 수육을 곁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수육을 주문하려니 먹성 좋은 시댁 식구들 배부를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좀 먹었다 싶을 만큼 먹일려면 그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 같아서 직접 수육거리를 사서 삶고 무채 무침과 양파 다대기 그리고 김장 김치를 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수육은 게눈 감추듯 바닥이 났고 떡국 한솥이 모자라 급하게 다시 한솥을 끓여야 했다. 익숙지 않은 주방에서 수육과 음식을 장만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맛있다며 더 달라는 말이 반갑기만 하였다.

필자는 전맹이지만 음식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한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다른이에게 해주는 것도 음식을 나눠주는 것도 좋아한다. 내 입으로 말하면 객관성이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음식 솜씨가 좋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비쥬얼까지 좋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맛은 제대로 내는 편이다. 처음 필자의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전맹인 필자가 직접 요리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 맛을 보고 또 한번 놀라워한다.

여하튼 집들이 식사를 마치고 한두시간 다과와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었고 모두들 갈 차비를 하기 시작했다. 푸짐하게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시아버지가 등을 토닥이며 "아이고, 안보여도 못하는 게 없네." 하신다. 근데 그 말이 왜 그리 달갑지 않게 들렸는지 흐뭇해하시는 아버님에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모두 돌아가고 집안을 정리하는 내내 아버님의 말에 뭔가 맺힌듯한 내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했다.

실명한지 10년이다. 실명 후 처음 2~3년을 제외하고 줄곧 제사때마다 음식을 장만해 갔고 한달에 한두번은 국이나 밑반찬을 해서 시댁에 보내 왔었다.

아버님은 그동안 그 음식들이 필자가 손수 장만한 음식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신기해하듯 아버님은 직접 확인한 적이 없어서 당연 남의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셨던 것일까? "안보이더라도 못하는 게 없네." 하는 아버님의 말과 "정상인처럼 잘하는 되요." 하는 비장애인들의 말이 겹쳐 들리는 것은 나의 자격지심일까?

말하는 이의 의도는 분명 칭찬이라는 것은 알지만 쉬이 고맙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내 성격의 문제일까? 정상인이라는 말로 비정상적인 사람이 된 필자가 정상인처럼 잘한다면 필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한 노룻이다. 장애가 있는데 그래서 못하는 게 당연한건데 그걸 하니 마냥 놀랍고 신기한 것이다.

필자가 비장애인이였다면 아버님은 그저 "고생했다."라는 말로 대신하셨을 것이다. 얼핏 들으면 "못하는 게 없다."라는 말이 더 큰 칭찬처럼 들리지만 그 저변에 '장애인은 혼자서는 못한다'는 명제가 깔려 있다면 글쎄 혼자 버젓이 잘하는 장애인으로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바깥활동에 있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모습만으로 일상 전체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비장애인인 남편에게 잘하라고 하고 딸아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딸만 다섯인 친정집 사위중 우리 남편이 제일 편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믿을만한 제3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일상생활 중 장애로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일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집안에서는 장애인 나름의 방식으로 혼자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전맹인 필자가 손수 음식을 하는 게 전혀 불가능한 한계는 아니다. 물론 비주얼이 고급지지 못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어려움은 있다. 장애인들의 일상은 대부분 이러하다. 장애로 못한다기 보다 비장애인들 보다 갑절의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주위의 장애인분들 중에는 음식을 곧잘 하는 분들도 있고 자신 없어 하는 분들도 있다. 비장애인들 중에서도 요리에 취미가 없거나 바빠서 혹은 귀찮아서 가정간편식이나 배달 음식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듯이 요리를 하고 못하는 것은 장애가 있고 없고의 문제보다 성향이나 소질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못할 거라 단정짓고 하는 칭찬이 과연 칭찬일까? "안보여도 못하는 게 없네"라는 말보다 "불편한데 고생했구나."하고 말씀해주셨다면 환하게 웃으며 "괜찮아요." 하고 대답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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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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