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확장 효과’라는 이론이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해당 장애뿐 아니라 다른 능력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지내다 돌아가신 분이 있다. 그분은 어찌 된 영문인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분들은 그분이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귀 가까이 대고 말하거나, 큰 소리로 말했다.
눈으로 잘 볼 수 없음으로 귀로도 잘 듣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로 ‘장애 확장 효과’인 셈이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잘 듣지 못하는 아주 작은 소리까지 잘 들었다.
안면장애와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한동대학교 이지선 교수는 자신의 사례를 들어 ‘장애 확장 효과’가 틀렸음을 전하고 있다.
어느 사진전에서 테이프를 가위로 자르는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커팅식 바로 직전에 행사 준비팀에서 참석자들에게 가위를 나눠주는데 이 교수는 건너뛰고 가더란다. 행사 전 그렇게 하는 것으로 결정한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이지선, 장애인을 차별한 적이 없나요. 한국일보 2020.6.10.). 당연히 이 교수는 가위를 사용할 수 있다. 이 얼마나 큰 실례인가. 그에게 사전에 의견을 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나는 이외수 시인의 시 ‘직박구리의 죽음’에서 다시 한 번 ‘장애 확장 효과’는 틀렸음을 확인한다. 시인에게 옆집에 사는 다운증후군 아이가 추운 겨울날 죽은 직박구리 한 마리를 가져온다. 자기 집에는 묻을 곳이 없으니 묻어달라고.
돌아간 아이는 다시 왔다. 맨발에 신발 하나를 들고 서서 직박구리가 추울 테니 그 신발 속에 넣어서 묻어달라고 부탁하고 자리를 뜬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다운증후군 아이인가.
내가 도서관에서 만난 휠체어에 앉아 있던 지체장애를 가진 분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비뚤 비뚤 벗어 놓은 신발을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지런히 놓았다. 이 또한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지체장애인인가.
누가 누구를 평가하고 판단할 것인가. 거리의 치유자로 불리는 정혜신 정신분석가는 저서 ‘당신이 옳다’에서 ‘충조평판’, 즉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말고 공감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적정심리학이라 이름 붙이고 심폐소생술로 본다.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평가와 판단을 멈출 일이다. ‘장애 확장 효과’는 틀렸음을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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