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오륜마크. ⓒPixabay

올해는 유로 2020과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해였다. 하지만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선수들의 안전과 건강을 염려해 이 두 대회는 내년에 개최하는 것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코로나가 다시 2차 유행 조짐을 보이기에, 내년에 두 대회가 열릴지 장담할 수 없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지금쯤이면 도쿄올림픽이 대회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갈 타이밍이었다. 전 세계에서 온 선수들이 국가의 명예를 걸고, 4년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해 서로 치고받고 경쟁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생생하게 보고 있을 시점이었다.

도쿄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1894년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과 그리스의 데메트리오스 비켈라스가 공동으로 설립한 조직이다. 비켈라스가 1대 IOC위원장이었고, 쿠베르탱이 2대였다.

2번의 전쟁과 보이콧 사태를 겪고 때로는 불공정한 판정 때문에 화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과 환희의 장면을 선사하며,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을 움직였다. 이 올림픽이 현 9대 토마스 바흐 위원장 시대까지 이어지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3년 제125차 부에노스아이레스 IOC 총회에서 제9대 위원장으로 당선된 독일 출신의 토마스 바흐는 취임 일성에서 자신의 올림픽 모토로 ‘Unity in Diversity(다양성 속의 통합)’를 내세웠다.

‘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면 인종, 장애, 종교, 성적 지향 등 여러 다양성이 있지만, 다양성을 조화시키며 이를 하나로 묶는다는 이상적인 좋은 모토이다. 그런데 이 모토가 과연 장애인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을까?

손에 손 잡고. ⓒPixabay

그의 구호대로라면 올림픽에 장애인이 선수로서 나서야 한다. 하지만 100여 년간 동‧하계올림픽을 통틀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더불어 올림픽에서 시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깝게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운영에서도, 장애인은 차별을 받고 있었다. 우선 장애인 이동권에서 상당히 열악했다. 올림픽․패럴림픽이 열리는 동안, 접근 가능한 저상 셔틀버스 비율이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경우 각각 7.1%, 13.3%여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접근성은 상당히 떨어졌다.

개‧폐막식이 열린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는 개‧폐막식 때에 참가자들만 접근 가능했고, 장애인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패럴림픽에서 수화통역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평창올림픽촌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충분하지 않았다.

평창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에서는 정신적 장애인의 올림픽․패럴림픽 참여 증진계획 또한, 수립하지도 않았다.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참여한 정신적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더군다나 고인지 자폐인은 스페셜올림픽을 포함,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인정하는 모든 올림픽에 참여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모든 올림픽․패럴림픽 참여에서 제한․배제․분리․거부를 당하는 한국의 장애인이 대다수다.

토마스 바흐가 올림픽 모토로 외치는 ‘Unity in Diversity(다양성 속의 통합)’는 대한민국 장애인 선수들에게는 현실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게 스포츠 분야 등에서만 국한된 걸까?

4년 전,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극명하게 보여준 서울 제기동 주민들의 발달장애인훈련센터 설립 반대 현수막. ⓒ이원무

자폐성 장애인에게 일부 있는 폭력성을 가지고 이들을 시설에 수용․격리하자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만연하다. 그리고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장애를 나쁜 것으로 보며 치료해야 한다는 사고방식 또한 여전하다.

정신장애인 경우도, 장애로 인해 ‘묻지마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 등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 보도로 인해 정신장애인은 위험하다는 편견이 생겨나며, 그 편견은 정신장애인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청각장애인은 어떤가? 수어를 배우고 표현하는 대신 인공와우 수술을 통해 청각장애를 치료해 청인처럼 되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청각장애인을 분노케 하면서도 힘들게 한다. 소아마비를 치료해서 걷게 만들어야 결혼할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고정관념도 영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은 서울에 발달장애인훈련센터가 설립되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 센터가 설립되기까지 성일중학교에 발달장애인 훈련센터가 들어오면 안 된다며 시위를 벌였던 제기동 주민들을 보면 이들에겐 장애인이 위험의 대상이라 장애를 겪지 않는 자신의 자녀와 어울려선 안 된다는 인식이 많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들에게 장애인이란 배제 대상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한국 사회에서 ‘Unity in Diversity(다양성 속의 통합)’는 장애인에겐 모든 분야에서 현실이 아닌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든다.

탬플 그랜딘(좌측), 스티비 원더(우측). ⓒ위키백과, Pixabay

모든 사람이 장애가 없게끔 노력한다면 이 세상은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장애인에겐 삶의 질과 정체성이 하락하며 하루하루의 삶이 고역으로 다가올 거다.

위대한 동물학자인 탬플 그랜딘도 장애 중 하나인 자폐를 없애려고 한다면 수천 년간 문화․과학․기술적 혁신을 이끌어온 특성을 제거하게 되니 인류 미래가 위험에 처한다는 말을 했다. 자폐스펙트럼이 신경 다양성에서 많이 논의되며, 더군다나 다양성이라는 게 인류의 발전에 한 요소라는 점을 생각하면 공감이 되는 말이다.

실제로 인류 역사에 위대한 자취를 남기거나, 현재까지도 남기고 있는 장애인들은 얼마든지 있다. 방금 언급한 동물학자이자 축산시설 디자이너인 탬플 그랜딘, 팝송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스티비 원더, 그리고 지체장애를 겪었던 폴란드 출신의 독일 마르크스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까지...

스티비 원더에겐 시각장애 대신 강점인 탁월한 청력에 집중하도록 도와준 선생님이 있었다. 탬플 그랜딘의 경우도 자폐성 장애를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특성으로 본 스승으로 인해 위대한 동물학자로의 길로 갈 수 있었다. 자폐를 치료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그녀의 머리에서 자비로운 축산시설 설계는 나올 수 없었을 거다.

장애를 치료대상이 아닌 다양성으로 보는 사회일 때, 스티비 원더, 스티븐 호킹, 탬플 그랜딘 같이 인류 역사를 발전시킬 위인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사회환경이 만들어진다. 설령 위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자신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사회환경을 장애인이 누릴 수 있을 테니.

장애를 다양성으로 인식하며, ‘Unity in Diversity(다양성 속의 통합)’가 장애인에게 정치 수사가 아닌 현실에서 살아 숨 쉬는 모습이 우리 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에 일상으로 되는 모습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그런 모습일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게 되고, 그것이 결국엔 사회통합의 길로 가게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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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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