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금지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는 빈 그네 위에 있는 핑크색 장미. ⓒPixabay

최근 보건복지부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2019년 장애인 학대 신고사례를 분석해 정책적 시사점을 정리한 ‘2019년도 전국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를 발간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피해장애인 중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비율이 72%로 가장 높았고 신체적 학대와 경제적 학대 비율이 아동, 노인에 비해 높은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장애인 학대 발생 장소에서는 피해장애인 거주지와 장애인 복지시설이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장애인 거주시설 종사자가 학대 가해자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장애인 학대 발생 장소에서 원 가정과 장애인시설에서 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면, 자립기능을 고려한 쉼터 확충 등의 체계적인 장애인 권리옹호체계를 통한 효과적인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이 지역사회에 필요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비율이 72%로 피해장애인 비율 가운데 가장 높은 점은 내 예상대로였다. 특히 노동력 착취에 있어 지적장애인의 비율이 높았던 건 가해자가 장애인의 인지적 특성을 악용해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늘 학대와 치료의 대상이 되어 왔다. 권력에 있어 늘 약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렇게 된 데는 지역사회에서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어린아이’로 보는 인식이 한 몫을 차지한다.

학대 피해장애인 장애유형별 비중(좌측), 장애인학대 유형별 비중(우측). ⓒ보건복지부,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어린아이’라면 판단과 결정을 스스로, 제대로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결정할 때 부모님이나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기 마련이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성인인 경우도 지역사회에서는 대개 이들을 ‘어린아이’로 생각한다.

이 생각 속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어려우니, 노동권이든, 신체 자유 등의 자유권이든 모든 법적 권리를 박탈해도 상관없다는 그런 논리가 담겨 있다. 즉 자신의 의사를 판단‧결정하는 능력인 의사결정능력인 정신 능력이 없으면 법적 권한은 부정당해도 된다는 거다. 이런 생각으로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법적 권한을 부정한 나라들이 많다.

하지만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에 의하면 정치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능력표출이 달라지는 것이 정신 능력이며, 이 능력의 부족을 법적 권한 제한‧박탈을 위한 합법화 구실로 이용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법에서도 법적 권한은 정신 능력과는 분명 구별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어린아이’로 보면서, 장애에 대해 부정적인 정치적‧사회적 맥락이 이들의 법적 권한을 부정하는 구실로 악용되고 있는 거다. 일반논평의 내용으로 비추어보면 이는 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하지 않음은 물론 위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장애인의 조력의사결정제도에 대한 논의가 아직까지 활발치 못한 것도 한 몫을 차지한다. 장애계 단체에서 논의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은 감지되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성년후견제 등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조력하는 것이 아닌 대체하는 제도가 우리나라 법체계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사람을 상징하는 사진. ⓒPixabay

요즘에는 지적장애인들이 모두를 위한 선거권 보장을 위해 쉬운 그림투표용지와 선고공보물, 공적 조력인 배치 등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적장애인들도 그림투표용지 등의 지원이 있으면 스스로 판단해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투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지적장애인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 선관위는 이들의 생각을 부정하고 있다. 지적장애인이 그림, 사진을 보고 사람을 선택하는 게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 이유가 설득력이 있으려면 선거 현수막이나 포스터 등에 후보 사진을 없애든가. 장애를 겪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도 인물 사진 보고 투표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글자, 숫자 등을 모르는 등의 문해력이 없다고 조사된 사람이 311만 명인데, 이는 전체 장애인 260만 명을 넘는 수다. 311만에는 어르신 등도 포함된다. 7년 뒤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 되는 초고령 사회가 우리나라에 도래한다는 전망도 있다. 결국, 선거권은 장애인만이 아닌 어르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투표용지와 선거공보 도입에 정부와 정치권 입장은 부정적이다. 그 이면에는 정치권에서 선거권을 장애인만의 문제로 국한해 해석하니, 특수투표용지 만드는데 비용이 얼마냐는 예산문제로 이해하며 선거권 증진 논의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

만약 지적장애인의 모두를 위한 투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정치권 등을 포함한 기득권에서는 자신의 기득권이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정치권 등의 심리가 결국 지적장애인의 선거권 요구를 묵살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사이, 지적장애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선거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고, 피선거권도 마찬가지 현실이라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로 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대체하는 성년후견제 등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들의 각종 권익을 침해하고 있다.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마련 토론회 모습. ⓒ이원무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조력의사결정제도 등의 사회적 지원이 있으면 비장애인 및 다른 장애를 겪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능력자다.

그러기에, 장애계에서는 조력의사결정제도 활성화에 대해 논의를 활발히 해야 한다. 정신적 장애인들의 자조모임 및 단체들도 의사결정에 관련해 같이 연대하며 조력의사결정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들 자조모임과 단체들이 생겨나고 활성화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중요함을 말하고 싶다.

정치권은 지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이의 선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신의 기득권과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라는 편견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현실이라, 이런 편견을 종식시킬 수 있는 효과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이 정부에 필요하다 할 것이다.

이 모두가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 모든 장애인이 스스로 판단‧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전제하에 진행되는 것이리라. 우리 사회에 이런 전제를 뿌리내리려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상황에 대한 판단능력이 생길 것이고, 학대 등의 상황에서는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침해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애인 학대는 물론 지금과 같이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피해 장애 유형 가운데 1위라는 비극적 상황은 눈을 씻고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지적장애인 선거권이 보장됨을 통해, 우리 모두의 선거권 보장까지 되며 선거비용까지 장기적으로 절약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두를 위한 피선거권도 보장할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정부, 정치권, 지자체, 정신적 장애인 등의 장애당사자, 장애계 등 모두가 장애인은 스스로 판단‧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의 지역사회 확산을 위한 함께 걸음을 지금부터 모색하고 실천할 때이다. 그래서 장애인 학대 없고 모두가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자신의 권리를 소중히 지켜가는 인권적 사회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토론회 종료 후 기념사진. ⓒ이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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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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