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청각장애인)의 시점에서 바라본 법원 재판의 모습. ⓒ박영진

'재판정 맨 앞의 판사님이 입을 오므렸다가 편다. 변호사님 또한 입을 오므렸다가 편다. 그리고는 재판이 끝난다.'

아무런 통역을 받지 못한 농인(청각장애인)의 시점에서 법원의 재판을 바라보면 바로 이런 느낌이다. 재판이라는 것이 단지 판사님과 변호사님이 입을 오므렸다가 펴는 입 모양만 보여질 뿐, 무슨 말이 오가는지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필자 또한 ‘행복팀피해소송인단’의 대표이자, ‘행복팀투자사기피해공동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피해자와 변호사 사이의 중계통역을 담당한 필자는 피해자들과 함께 민사소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것을 보기 위하여 어렵사리 법원을 찾았지만,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속기)은 결국 제공되지 않아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수어통역이나 문자통역을 받고 싶으면 개인이 알아서(자부담으로) 수어통역사나 속기사를 데리고 와야 한다.”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진 법원의 민사소송원칙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사기로 인하여 전재산을 날린 피해자들로서 비용을 내고 통역사를 섭외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농인(청각장애인)의 입장으로서 누구든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어지는지 궁금한데 의사소통의 지원이 되지 않아 무슨 내용이 오가는지 알 수 없는 재판을 방청석 한구석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 괴롭고 억울할 수밖에 없다.

“형사재판은 사회정의를 위해 존재하지만, 민사재판은 인간의 욕망을 위해 존재한다.”

예전에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형사재판은 공공의 이익 실현과 관계가 있지만, 민사재판은 개인의 이익 실현과 관계되어 있으니 이익을 받는 자인 개인이 그 서비스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말은 항상 맞는 내용은 아니다. 피해의 회복은 결국 민사재판이 담당하는 기능인 것을 생각한다면,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사회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피해의 회복과 위로를 해줄 수 있는 민사재판 또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수어통역사나 문자통역사를 개인이 선임하도록 강제되고 있던 민사소송의 원칙은 정의롭지 못하였다. 내 재판을 내가 알 수 있는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 평등할 권리를 침해했으며, 언제 어디서나 수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정해진 한국수화언어법을 위반하여, 민사재판을 통한 피해의 회복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질 전망이다. 바로 민사소송규칙이 대법관 회의에서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수어통역을 비롯해 문자통역(속기) 등 농인(청각장애인)에게 있어 의사소통에 필요한 부분을 국고로 부담토록 하는 대법원 민사소송규칙의 개정은 농아인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말 환영할 일이다.

이제는 재판에서 판사님이 입을 오므렸다가 펴는 것과 변호사님이 입을 오므렸다가 펴는, 말하는 사람의 입모양만 종일 보다가 진빠진채 돌아오는 일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대법원 예규의 정비와 예산이 충분히 지원되어 개정된 민사소송규칙이 실제 농인들의 재판에서 잘 적용되었으면 한다.

대법관회의를 통해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해주신 대법관님들께 농인(청각장애인) 당사자로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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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칼럼니스트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농아인야구단 단장, 인권활동가로 오랜 시간 여러 활동을 하여 왔으며 한국농아인협회와 함께 '행복팀투자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피해자 지원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인 행복팀사건과 농아인사회, 청각언어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써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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