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괴산호국원 장애인 주차구역에는 신고 전화나 도움을 요청할 전화번호가 빈칸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턱으로 되어 있다. 마치 장애인 대기실 같다. ⓒ서인환

국립괴산호국원은 지난 10월 문을 열었다. 80만 제곱미터가 넘는 연면적에 2만여기를 봉안할 수 있는 자연장 현대식 건물이다.

국립괴산호국원은 전국의 국립묘역이 부족하여 더 많이 안장을 할 수 있는 국립묘역공원으로 중부권에 개원한 것으로 많은 기대를 갖게 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로 잔디밭 자연장은 내년 상반기부터 이장 가능하도록 지금도 한창 공사 중이다.

전국의 많은 국립묘지에 국가유공자들이 안장되어 있으나, 장애인들이 국가유공자 가족을 참배하기에는 편의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새로이 개원한 국립괴산호국원으로의 이전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깨어졌다. 이곳도 장애인은 이용할 수가 없다.

먼저 장애인주차장은 편의증진법상 기준에 맞지는 않으나 설치는 되어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이 주차장을 이용하여 차를 주차하고 나면 경사를 올라 본 건물로 진입해야 한다. 하지만 건물은 높은 계단으로 되어 있다.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 엘리베이터까지 갈 수가 없다. 새로이 조성되는 잔디공원묘역에는 휠체어 바퀴가 구를 수 없어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렵다.

국립묘지 공원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장애인이 아니어도 휠체어를 타고 올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누군가 국가를 위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면 부모나 자녀, 형제들은 큰 충격에 몸을 가눌 수 없어 휠체어를 타고 국립묘지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또한 전우라든가 같은 사고에서 살아남은 동료들 중 장애인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족 중에도 장애인은 있다.

장애인주차장에서 경사로를 올라가다가 휠체어를 버리고 가서 휠체어만이 혼자 주인을 잃고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눈에 띈다. 저 휠체어의 주인은 장애인일 수도 있고, 정신적 충격에 의해 휠체어를 타고 왔을 수도 있다.

누군가 휠체어를 타고는 갈 수 없어 휠체어를 버리고 부축을 받거나 힘겹게 계단을 걸어갔을 것이다. 저 건물 안까지 들어가기만 하면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곳까지는 계단으로 막혀 있다.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계단이다. ⓒ서인환

하지만 휠체어를 버리고 납골당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래도 다행이다. 부축을 받으면 갈 수 있으니 말이다. 휠체어를 버리고 잠시라도 힘들게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은 버리고 간 휠체어를 보며 나는 저 휠체어 주인보다 더 억울하다고 느낄 것이다.

장애인편의증진법에서 공원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인증 의무심사 대상으로 법이 개정되었으나 시행은 2년 후부터이니 아직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건물이나 시설을 다 설치하고 나서 장애인이 이용 가능하도록 고친다는 것은 이중의 비용이 든다.

또한 묘역은 산이나 도시 생활에서의 공원과는 달라 납골당이나 묘지라고 하여 공원의 의무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과거 서울 청계천 공원을 장애인의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법정 소송을 하였는데, 이름은 공원이나 용도는 하천이라고 한 바 있다. 국립묘지 역시 이런 용도구분에 따라 편의시설 대상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편의증진법은 도시공원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하면 장애인도 동일하게 이용 가능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차별로 간주된다. 체육시설에서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인력을 배치하지 않았다거나 안전요원이 부족하다거나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것 역시 법적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로 판결한 바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어떤 경우에는 법적으로 세부적으로 규정이 없어 차별로 보기 어렵다고 하고, 어떤 진정 사건에 대하여는 그것과 무관하게 장애인의 이용 가능성을 기준으로 차별을 판단하기도 한다.

한 장애인이 국가유공자 가족이어서 국립괴산호국원에 안치를 했는데, 장례식장 행렬에 따라갔다가 더 이상 갈 수가 없어 누군가 거리에 버려둔 휠체어를 바라보며 그래도 저 주인은 다행이겠구나 하며 자신의 입장을 안타까워했다.

국립괴산호국원은 경사를 통해 납골 위치에 다다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건물 입구 진입로까지 계단으로 형성되어 있어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만 설치하더라도 장애인은 이용 가능할 것이다. 또한 건물 입구의 계단을 올라갈 수 있도록 외부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준다면 장애인도 출입구를 통하여 입장한 다음, 이미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가족을 참배할 수 있다.

장애인도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는 외침에 의해 현재 휠체어 탑승 고속버스를 시범 운행 중이다. 그렇다면 장애인도 가족 참배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가능하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참배할 수 없어 국가유공자로서 호국원에 안치할 고인을 다른 곳에 모셔야 할까?

장애라는 이유로 가족을 참배하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가족으로 인한 가슴앓이에다가 찾아뵙지 못하는 아픔이 더해지는 것은 옳지 않다.

“형님, 저는 장애가 있어 살아생전에 형님에게 잘 해 드리지 못했는데, 돌아가신 지금도 형님을 뵈러 갈 수가 없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죽으면 형님 곁으로 갈 수 있으니 그때 뵙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그래도 가족이 국가를 위해 희생된 자부심이 있을 것인데, 국가는 장례나 명절에 가족을 참배할 수 있도록 배려조차 하지 않으니 정말 돌아가신 가족은 너무나 멀리 떠나 버린 것이다.

이 계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성과 저승으로 갈라놓는 천국의 계단이다. 유럽의 장례문화를 보면, 도시 공원 내에 평지에 돌로 된 관을 안치한 다음 누구나 공원 숲에 가서 참배를 할 수 있다.

우리의 장례 문화가 이제는 바뀌어가고 있다. 특히 화장 문화가 확대되고 있는 지금, 자동차를 이용하여 납골당에 도착하면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유골함이 안치된 곳까지 가도록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그것을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도 국립인데, 국립에서조차 이러한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서 민간에게 의무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규제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호국 영령이 되어 국가에 봉사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기에 인사도 드리러 가지 못한다는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평생 살아가도록 하는 현재의 문제는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유공자 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인에게는 상처로 평생 미안해하면서 살아가야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차별 속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장애인이 죽은 가족을 참배하는 것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것은 이제 시정됐으면 한다.

장애인도 국립묘지에 떳떳하게 참배하러 가고 싶다는 열망에 대해 국가는 귀를 기울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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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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