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첼리스트 배범준의 그림과 글, 연주 활동 사진. ⓒ김태영

배범준은 만 3살 때 말을 잃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

묻는 말에도 대답을 듣기란 쉽지 않았었다.

상담과 여러 치료를 하면서 놀이 시설에 매 주 또는 매일 다녔었다.

유일하게 타는 놀이기구는 회전목마 하나였다.

퍼레이드와 연극, 공연을 좋아했다.

외출 하지 않고 집에 있을 때는 그림을 그렸다.

주로 버스와 기차를 그린다.

종이 가득 큰 지차를 그리며 싱글벙글이다.

그 기차 안에는 즐거움이 가득인 것 같았다.

조그마한 손으로 크레파스를 움켜쥐고는 참 열심히도 색칠을 한다.

노란색이며 빨간색 분홍색에 파란색 예쁘다.

그 다음은 무슨 색을 집을까?

검정색이다.

5살 범준이는 그 색으로 더 열심히 색칠을 했다.

도화지 끄트머리까지 온통 검정색으로.....

노랑나비도, 예쁜 꽃도, 파아란 하늘도 숨었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아니 무서웠다.

왜 검정색으로 다 칠했을까?

‘혹시.....’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범준의 열 손가락도 모두 검정색이 되었다.

멈추게 해야 하나?

모두 색칠한 후 두 손으로 그림을 들고는 미소 짓는다.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왜 검정색으로 칠했어?”

“터널이에요”

기차가 터널을 지나가는 것이란다.

숨죽이며 지켜보다가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크게 쉬었는지 모른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가는 거였구나.

근데 꽃이랑 나비가 하나도 안 보여서 아쉽다“

기껏 예쁘게 그린 그림들이 검정색으로 가려져서 아까웠다.

“나와요”

터널 밖으로 기차가 나오면 나비도 꽃도 하늘도 다시 보인다는 것이다.

매일 어둔 장막을 만나는 것 같았다.

그 장막 뒤에 희망이 없을 까봐 두려워서 걷어 내지도 못하고

그나마도 잃을까봐 다칠 까봐 한 발 짝도 움직일 수 없어 포기 할 때,

아이가 열어 만난 것은 눈이 부시도록 밝은 미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내 또 다른 장막이 두껍고 무겁게 내려진다.

내 힘으로는 걷어 낼 수 없다.

“터널이에요”

“(희망)이 나와요”

장애인의 엄마여서 종종 같은 상황인 부모들 앞에 설 때가 있다.

강연자로 만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먼저 지나 온 그간의 일들을 말 하는 것이 사실 부끄러웠다.

세월이 절로 들게 한 나이였기에 조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살아 온 날들이었다.

오히려 더 지혜롭고 현명한 젊은 부모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경청 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그 분들에게

아들 범준이가 어릴 때 했던 말을 기억하며 말한다.

“ 깜깜한 터널 속에 있어도 우리 서로 응원해요

곧 희망이 나올 거니까요“

-사랑하는 첼로와 평화를 연주하는 미소천사 배 범준 母 김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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