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업무협력을 체결하고 발달장애인 가상직업훈련 콘텐츠 기술개발에 나섰다. 이번 업무협약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차세대콘텐츠 연구본부 지식이러닝연구그룹에서 대전발달장애인직업훈련센터에 제안해 성사된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들은 정부에 연구과제를 기획해 과제가 선정되면 연구비를 지원받게 되는데, 1년 과제 또는 3년 과제로 진행하게 된다. 과거 장애 관련 연구과제들을 보면, 가장 먼저 연구된 것은 전동휠체어 국산화 연구개발이었는데, 이 연구는 88장애인올림픽에 즈음한 것이었다.

시각장애인 버스안내시스템 개발 역시 이 시기에 연구되었다. 그 이후 시각장애인 점자 및 음성출력 시스템 개발(1993년~1995년), 청각장애인 수화번역 시스템 개발, 이모티콘을 이용한 수화통역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연구과제가 수행됐다. 그러나 이 기술들은 현재 장애인계에서 사용되고 있지 않다.

국책기술연구 사업들은 연구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장애 관련 기술개발은 장애인단체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연구과제 선정에서 수요자의 참여가 도움이 되기도 하고, 연구결과물을 이용할 사용자가 장애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책과제들은 아무리 상용화기술개발과제라 하더라도 원천기술개발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단순 응용 기술은 굳이 국책연구로 진행하지 않아도 되고, 원천기술은 개발해 봄으로써 기술축적에 대한 경험을 가질 기회는 주어지나 실용화에까지 가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균관대학교 이성일 교수는 국가에서 많은 연구비를 지원했음에도 장애인 관련 기술이 대중화, 보편화되거나 산업화돼 장애인의 삶에 기여하는 정도가 적어 기술개발에 형식적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가 아니라 핵심 역할을 맡는 것이 필요하며, 국책연구 방식보다 기술개발을 필요로 하는 보조기구 업체를 지원함으로써 연구지원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과제를 정함에 있어 산업체의 연구비 일부 부담과 연구 참여를 하고 개발된 연구결과물을 업체에서 상용화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형식으로도 상용화는 쉽지 않다.

지난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개발한 모바일 앱을 이용한 시각장애인 음향신호기 안내시스템은 휴면케어에서 연구비의 일부를 매칭 펀드하고 기술을 개발해 결과물을 보유하게 됐으나,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음향신호기를 설치한 지자체의 예산으로 전면적인 시스템 신규 기술 적용이 필요한데, 지자체는 예산이 부족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해 추진하는 것은 과기정통부에서 기술 적용 필요성 심사에서 제외시켜 기술의 상용화는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기술개발에 참여해 기여하고자 한 업체는 경영상 어려움만 가중됐다. 이 기술은 사장되기 직전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기술을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한 예는 골도 전화기이다. 처음에는 기술을 이전해 제품을 생산할 업체가 나서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으나, 제품 상용화에 필요한 예산을 일부 지원해 업체가 정해지자 이 업체는 골도 전화기를 생산해 수출함으로써 사업에 성공한 것이다.

국책연구 결과물을 평가함에 있어 몇 건이나 산업체에 기술을 이전시켜 주었는가가 연구성공의 평가 기준이 된다. 장애인을 위한 로봇은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어 기술이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상품화돼 기업이 수익창출이 돼 지속적 성장에 도움이 되고, 사용자인 장애인에게 인기 있는 상품이 됐는가가 평가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업무협약을 맺어 발달장애인 직업훈련에 가상현실기술을 적용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물품을 생산해 판매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직업훈련에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이 기술은 개발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요자인 장애인의 요구사항이나 직업훈련센터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하고, 연구하는 장소를 대전발달장애인직업훈련센터 내에 두겠다고 하였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지역별로 장애 유형별 특화사업을 하고 있는데, 대전에는 발달장애인직업훈련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발달장애인직업훈련센터 내에 리빙랩을 설치해 연구결과물을 상용화하고 수요자 요구를 반영하도록 검증해 나가겠다는 계획은 일단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이번 연구팀은 지난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책 리더기를 개발한 바 있으며, 이번에는 증감현실(AR)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이용해 직업훈련 콘텐츠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은 주의력결핍, 사회심리, 인지능력 등의 어려움으로 취업에 여러 가지 제한을 가지고 있다. 간병보조, 도서관 사서, 바리스타, 판매원 등의 직종을 발달장애인을 위해 훈련을 할 경우 현장실습이 중요한데, 이를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한다는 것이다.

현장경험과 업무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가상현실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 실제 발달장애인에게 적용해 보면서 문제점을 개선해 효과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식은 성공률이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발달장애인이 실무체험을 하는 것이나 다양한 직종을 시험해봄으로써 신직종을 개발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콘텐츠 적용 사례가 늘어나면 일반화해 자동 직무평가진단도 할 수 있다. 리빙랩을 둔 현장이 발달장애인직업훈련센터라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본 연구는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을 통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사회문제해결 R&D의 일환으로 ‘발달장애인의 가상 직업훈련 효과강화를 위한 장애특화 몰입 콘텐츠 기술개발’ 과제를 통해 진행된다.

이 연구에도 우려점이 있다. 첫째는 VR 기술로 직무현장을 체험하는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특수안경을 쓰게 될 것인데, 안경을 쓰면 시야가 좁아지고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중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오히려 집중력이 좋아지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개인에 따라서는 장시간 이용은 흥미를 잃고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실제 직무현장에서는 단순한 업무부터 하나하나 배워 업무범위를 넓혀나가거나, 고객응대를 수정해 주는 것이 가능하지만, 가상현실에서는 자연스러운 환경이 아니므로 실제 현장에서는 다시 훈련이 필요할 수 있거나 잘 적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가상현실기술에서는 부적응으로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다음으로 이 기술 콘텐츠 개발이 지속적인 수정 보완의 지원이 아니라 한시적 개발이므로 개발 계획 후반부에 일정 기간 수정 보완의 기간이 주어진다고는 하지만, 이 기술을 받아서 사용해야 하는 발달장애인직업훈련센터의 개발기술이 아니므로 개발 실적으로 끝나고 실재적으로, 효과적으로,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콘텐츠가 될지도 의문이다.

업무협약식에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개발 계획을 발표했는데, PPT 자료는 아직 비밀을 요한다면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는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단지 보도자료만 배포했다. 이렇게 내부 보안적 입장을 취한다면 개발 실적은 올리고 실제 사용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가지기에 무리가 아니다.

아무쪼록 직업훈련 콘텐츠가 발달장애인 전문가나 직업훈련 전문가가 아닌 가상현실 기술 전문가가 복합융합기술로 적용할 경우, 감수성과 현장성, 책임성을 다할 성공적 결과물을 내어 놓을지 우려가 되지만, 공단과 공동연구를 하고 전문가를 참여시킨 효과가 발휘돼 모범적 연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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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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