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면 눈물부터 나게 하는 ‘엄마!’

오는 8일은 ‘어버이 날’이다. 꽃집 쇼윈도 안에서 빨간 카네이션이 발목을 붙잡는다.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릴 카네이션 한 송이라도 살 수 있는 이들은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세 살 때, 소아마비로 인해 걷지 못하는 장애인 자식으로 살면서 무슨 철은 그리도 빨리 들었는지 집안에 나쁜 일이 생기면 장애인인 나 때문은 아닐까, 내가 우울해하면 엄마가 마음 아프시겠지. 내가 예쁜 짓을 하면 울 엄마 눈물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예쁜 짓도 할 수 없었다.

“엄마!” 하고 부르며 허리 한 번 끌어안아 보지 못하면서 마음속으로만 부르며 참고 또 참는 일만 했었던 것이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이렇게 후회하게 될 줄을 어찌 알았을까?

어머니는 열병을 앓고 난 뒤, 소아마비라는 것을 아시고 어떻게든 고쳐보겠다고 죽을 고생을 다하셨지만 결국은 고치지 못하고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딸에게 따뜻한 눈길과 위로의 말씀한번 건네주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외출하셨다가 돌아오시면 동생은 ‘엄마!’ 하며 달려가서 허리를 끌어안고 안기는 모습이 너무너무 부러웠으면서도 필자는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몸이 아파서 밥을 먹지 못해도 죽 한번 끊여다 주시지 않으셨고 자다가 목이 말라도 ‘엄마, 나 물 좀 줘’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 ‘저분이 정말 내 어머니 맞는가? 혹시 계모는 아닐까?’란 생각을 할 만큼 냉정하셨다. 그래서 속마음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서러워하기만 했었다. 그렇게 자란 탓으로 지금도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털어놓고 위로받는 일이 익숙하지 못하다.

필자는 나이 40이 되어 그렇게도 무정하다고 원망하던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마흔 살 6월, 집을 떠나 낯선 곳에 둥지를 틀고 홀로서기를 시작하였다.

중증장애인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나의 방, 나의 집, 나의 동네에서 청소를 하고, 밥을 지어먹고, 일을 하고, 이웃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꿈속에서 살아가는 듯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어머니의 강인한 사랑의 힘으로부터였고 또 그 힘은 대전장애인인권포럼이 탄생 할 수 있게 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어머니께서 장애를 가진 자식이기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며 응석을 받아주시고 모든 것을 어머니가 대신해 주시면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기르셨더라면 세상이 무서워서 홀로 설 용기를 낼 수 없었을 뿐더러 오래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께서는 1927년생으로 일정(日政)시대 시집 안 간 처녀는 정신대로 끌고 간다는 소문에 열다섯 어린 나이로 양친 부모님도 없이 형님의 슬하에서 살아가던 스물세 살의 총각에게 시집와서 모진 고생을 다 하셨다.

자식들 먹여 살리시느라 삽 들고 호미 들고 돈 밭으로 일하러 다니시느라 여름이면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하시고, 날마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시며 분주하게 사셨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어머니께서는 병환을 얻으셔서 온몸에 살이 빠져 겨울나무처럼 앙상해지셨다.

병마에 시달려 앙상해지시는 데도 자식으로서 해 드릴 일이 없어 두 눈만 말똥말똥 뜨고 고작 한다는 말이,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팔다리 좀 주물러 드릴까요? 엄마 많이 아파?” 일 뿐 그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 건강하실 때 이런 생각 했으면 이제 와서 이렇게 가슴 아프지 않을 것을. 조용히 ‘엄마!’를 부르며 잡은 어머니의 메마르신 손에서 느껴지는 애잔함.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록 장애인이지만 한 단체를 이끌어 가는 대표가 되어 보건복지부 장관상, 대전여성상, 한빛대상과 2014년도에는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는 영광을 보실 수 있게 해 드린 것이라고 할까.

2012년 대전여성상 수상 후 어머니와 찰칵. ⓒ안승서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세상을 살면서 어머니의 말씀 없는 행동이, 베풀어 주신 사랑이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5년전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는 사랑한다고도, 어머니가 해주시던 쑥 개떡이 먹고 싶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어버이날에는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도 달아드릴 수 있는데….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기의 자식들이 귀하지 않겠는가.

예전에는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기르라고 했는데 요즘 엄마들은 자녀들이 너무 귀해서 오히려 나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해주면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극복해나가려고 하기보다 좌절하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일까지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그렇게 불행하게 만들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세월은 엄마에게로부터 자꾸만 멀어지라 하는데 기억은 엄마에게로 자꾸만 끌어당긴다.

날 나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께 자식으로서 아무것도 해 드릴 것이 없게 된 오늘에 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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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서 칼럼리스트
장애인당사자의 권익옹호와 정책발전을 위한 정책개발 수립과 실행, 선택에 있어서 장애인참여를 보장하며 지역사회 장애인정책 현안에 대한 제언 및 학술활동 전개를 위하여 다양한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대전지역 장애인복지 증진과 인권보장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둔 대전장애인인권포럼 대표로서 장애인들의 삶의 가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전해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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