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 세배를 하러 오겠다는 딸 내외의 연락에 아직 돌쟁이인 어린 아기까지. 두 아이들을 데리고 오가는 귀경길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직접 딸네집을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던 날이었다.

저녁식사와 뒷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김없이 나타나는 불청객, 음식물쓰레기. 창문 너머 찬바람이 나부끼는 바깥의 풍경에 잠시 꾀가 나기도 했지만 조금이나마 어린 아기를 품에 낀 딸의 손길을 돕고자 아파트 단지 안 공동 쓰레기장으로 종종걸음을 치던 중, 어디선가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줌마! 이리 오세요!”

뜻밖의 고성에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밖은 이미 어스름한 저녁이었기에 한산했던 아파트 단지 안. 그래도 설마 나는 아니겠지, 다시 가던 길을 가려는데 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재차 같은 소리가 들린다.

“아줌마! 이리 오세요!”

그제야 그 소리가 나를 향한 외침이었음을 직감한 나는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고 말았다. 짧은 머리에 건장한 체구, 무언가 나만을 겨냥한 눈빛을 품은 남성의 모습에 순간적인 불안이 엄습한 것이다.

‘집으로 다시 들어갈까? 아냐, 비밀번호 누르는 동안 쫓아 올 거야...’

‘빨리 쓰레기만 내려놓고 상가가 있는 쪽의 계단으로 뛰어 올라갈까? 하지만 저 남자가 나보다 더 걸음이 빠를 텐데...’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 쉽사리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한 채 하얘진 머릿속으로 그곳을 예의주시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그곳에 있던 그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줌마~ 이리 오세요!”

어? 그런데 이 남성. 떨리는 목소리에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손동작까지. 반복적인 말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듯 보였다.

‘아...! 혹시?’

불현듯 뇌리를 스쳐가는 깨달음에 서둘러 다가가니 역시, 발달장애인 한 분이 아파트 공동 현관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여기, 눌러주세요!”

애타게 부르던 아줌마가 다가가자마자 급하게 내뱉은 말과 함께 그가 가리키는 곳은 다름 아닌 공동현관의 비밀번호 숫자판.

손에 쥔 종이에는 아파트의 동 호수, 그리고 딸네집과 같은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적혀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명절을 맞아 지인의 집을 방문하는 길인 듯 보였다.

“종이에 있는 숫자 눌러줄까요?”

“네!”

잔뜩 힘을 주며 아줌마를 부르던 매서운 눈빛은 어디가고 그지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을 하던 그는 드르륵, 공동 현관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감사합니다!”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인사와 함께 마침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추위에 떨며 현관 앞을 지키고 있던 그의 시간이.

언제부터였을까, 외모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나의 모습이.

언제부터였을까,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추운 날씨에 한참 동안 밖을 지키고 있었을 아들 또래의 그 뒷모습을 보며 명색이 인권강사로서 차별은 그 누구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 말하는 나의 시선이 아직 이정도니 발달장애, 더 나아가 모든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우리 사회의 인식척도는 과연 어느 만큼일까. 잠시 고민에 빠진 날이었다.

아직도 차이를 차별로 두는 편견의 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재차 한 마디를 새기던 날이었다.

“차이는 차별이 될 수 없습니다.”

“차이는 차별이 될 수 없습니다.”

“차이는 차별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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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제 칼럼리스트
현재 장애인권강사 및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인증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 교육강사로서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한 종사자 교육, 장애인 당사자교육 등. 다양한 교육현장을 찾아 활발한 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평범한 주부의 삶에서 장애인권강사라는 직함을 갖게 된 입문기는 물론, 그저 평범한 삶을 위해 ‘치열함’을 나타내야 하는 우리네 현실 속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장애의 유무를 떠나 누구나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을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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