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맹학교 고등부 졸업생이자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입학을 앞두고 있는 시청각 중복장애인 하선미 양이 그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점자교재의 부족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을 썼다.

이 글은 교육 관계자들에게 보내기 위한 글인데, 먼저 장애인교육을 위해 애써 주시고 계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능시험 한 과목 당 점자 문제지가 100에서 300페이지 정도가 되어 점자를 읽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고 특히 통계와 같은 수학 문제는 표를 풀어서 문장으로 설명한 것을 이해하고 다시 머릿속에 표를 그리고 계산을 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을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시험 시간을 더 부여하기는 하지만 13시간을 시험 치는 것은 피로도가 심하여 집중도가 떨어지므로 충분히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얻기에는 매우 불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학교생활은 반드시 진학만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인성의 발달을 하는 시기이기도 한데, 특수학교의 생활은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사회활동 기회가 주어지지 못한 아쉬움도 적었다. 또한 자신과 같이 시청각장애인의 교육 서비스의 개발도 절실함을 호소하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습득은 매우 쉬워졌고, 장애인보조공학과 점자출판의 기술들도 발전하여 획기적으로 좋아졌지만, 사실 시각장애인의 학습환경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70년대에는 점자교과서가 없어 시각장애 선배들이 손으로 점자를 일일이 찍어서 만든 교과서를 후배들이 빌려다가 베껴서 교과서로 삼았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부터 몇 년 전까지는 대구대학교 점자도서관에서 교과서를 제작하여 왔으며, 지금은 3년 단위로 국립특수교육원에서 공개입찰을 하여 출판업체를 선정하여 교과서를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다. 대구대학교에서는 점자교과서 출판사업을 포기하고 사업신청에 참여하지 않았다.

대구대학교 점자출판부에서 교과서를 제작하던 시절에도 교과서가 늦게 제작되어 수업을 시작하는 3월이 아닌 여름이 되어서야 교과서를 받아보는 경우가 있었고, 점자의 오탈자가 많다는 문제점이 계속 지적되어 왔다. 사실 일반 교과서도 상당한 오탈자가 존재한다.

그런데 대구대학교 점자출판부가 교과서 출판을 포기하고 다른 업체에서 제작을 맡은 후부터는 교과서 보급 시기가 더욱 늦어지고 있고, 오탈자도 더욱 많아졌다.

대구대학교 출판부에서는 점역사와 교정사가 점자 교정을 해 왔는데, 새로이 교과서 제작을 맡은 업체에서는 시각장애인 학부모 중 점자를 아는 부모들에게 아르바이트로 교정을 하고 있어 오탈자는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그림을 점자에서는 ‘그림 생략’이라고 되어 있어 어떤 그림인지 궁금하여 선생님에게 물으면, 교사는 그림이 있다고 하지를 말든가 아니면 제대로 설명을 하지 왜 교과서가 이러냐고 불평을 하고, 시각장애 학생들은 ‘생략이라고 하여 그림이 있다는 사실만 알라고 하니 너희들은 그림이 있는데 못 보지?’ 하고 놀리는 기분만 느낀다고 한다.

교과서는 과거 국정교과서에서 검정교과서로 바뀌면서 다양한 교과서가 나와 학교에서 사용하는 선정 교과서를 점자책으로 구하려면 구할 수 없기도 하고, 또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 학기가 끝나가는 시기에 구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대구대학교 점자출판부는 제판기, 인쇄기, 제본기 등 대규모 시설을 갖추고 30년 동안 교정을 담당하는 전문 직원이 있었으나, 이 정도의 시설과 규모는 국내에는 없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새로이 선정된 교과서 제작 업체로서는 더 질 높은 교재를 신속하게 보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3년 계약으로 제작을 맡은 업체로서는 장기간 계속 사업을 할 수 있는지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과감한 시설투자를 하기도 어렵고, 고급 인력을 고용하기도 어렵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되어 있는 교육과정의 교과서 수백 종을 일시에 신속하게 만들 수 있기도 쉽지 않다.

교과서를 발간하는 출판사가 수백 곳이 되는데, 한 곳에서 수백 개의 출판사 서적을 점자도서로 개발하여 제때에 보급하도록 하려면 결국은 국가 차원의 점자출판소로 운영하여야만 한다.

국립점자출판소를 설립하여 운영하려면 특수교육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필요성도 있고, 운영과 제작, 인력에 필요한 예산도 마련하여야 한다. 전문직 공무원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절대로 교과서 질이 좋아질 수 없다.

출판사에서 개발한 교과서는 컴퓨터로 작업을 한 것이므로 파일이 존재한다. 파일을 제공받으면 제작에도 입력 과정을 생략할 수 있고 점자제작 기간도 단축할 수가 있다.

그러나 민간 출판사의 재산에 해당하는 파일을 제공받고자 한다면 저작권법에 의한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므로 민간업체에 점자교과서 제작을 위탁할 경우에는 이러한 파일을 제공받는 데에도 한계가 있지만, 국립점자출판소를 운영할 경우에는 국가를 신뢰하고 파일을 제공하기에도 보다 수월할 것이고, 파일 제공에 대하여 일정 비용만 지불한다면 이미 교정된 파일을 활용하여 점자교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은 교과서를 받는 데에도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니 다른 부교재를 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점자로 만들어야 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수능에서 가장 출제 빈도가 높은 EBS 교재들도 이미 방송이 끝나고 나서 점자서적을 구하거나 제작하여야 하니 시각장애인 가족들은 점자를 익혀 점자교재 제작에 총동원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한선미 양은 대학에 들어가면 대학교재를 다시 점자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대학교재 1권이 점자서적으로는 10권이 넘을 것이고, 한 학기 교재를 점자로 만들면 방의 한 벽면을 다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제작비용은 고사하고 제작을 제때에 하기란 더욱 어려워 대학 공부를 하기에 너무나 불리한 입장이 될 것이다.

교재가 없거나 질이 낮아 이것으로 장애를 경험해야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눈이 보이지 않아 장애가 아니라 교재가 없어 장애인이다. 개인의 육체, 즉 생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장애가 아니라 사회적 제약이 장애이니 말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시각장애 부모들은 교육부를 항의 방문하여 간담회를 하기로 하고 앞으로 시각장애인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기로 결정했다.

1월 15일 오후에 가지는 간담회에서 바로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땜질식으로 해결하지 말고 국립점자출판소를 운영하여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교재 등을 제대로 보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원천적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국가는 하청을 주었으니 우리 탓은 아니라고 하는 태도는 이제 시정해야 한다.

국가가 책임이 있으니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국립점자출판소를 설립하여 학습권을 보장하는 방법 외에는 어떠한 해결책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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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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