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장애인의 평균 수명은 29세라는 국립재활원의 통계가 있다. 장애인 전체로 보면 비장애인보다 평균 약 10년 정도의 수명이 짧다고도 한다. 그 중 자폐성장애인은 너무나 짧다. 이 통계는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들을 모아 분석한 것이므로 잘못된 자료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평균이란 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평균은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학급에서 한 학생이 독보적으로 성적이 높으면 전체 평균은 올라갈 것이고, 너무 성적이 낮으면 평균은 내려갈 것이다.

한 사람의 영향에 의해 전체의 특성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자폐성 장애인이 수명이 짧다는 것은 자폐성 장애인에게는 그 정도의 수명밖에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릴 적 생명 유지를 위한 배고픔과 맛의 욕구를 본능적으로 받아들이는 고비를 넘기면 유아기는 넘어갈 수 있고,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숨을 노리는 각종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고비를 넘기면 청년도 될 수 있고, 스스로 또는 타인에 의해 의식주와 여러 위험 요소를 또 넘길 수 있는 기반이 준비되면 성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고,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보호가 확실하면 노년도 보낼 수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매년 시설마다 두세 명의 이용자 사망이 발생한다. 어떤 해에는 10명 가까이 이용자가 사망하여 매달 장사를 지내기도 하고, 어떤 해는 자폐성장애인 이용자들이 매월 회갑잔치를 하고 직원들이 한복을 입고 이용자에게 절을 하는 행사를 하며 즐거운 해를 보내기도 한다.

아직 무엇인지 분석은 하지 못했으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그 무엇에 노출이 되느냐가 원인일 것인데, 이용자 사망은 서류상으로는 심정지 또는 영양실조 등으로 표기되고 세상의 관심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용자에게 영양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세상의 각종 위험으로부터 면역체계가 깨어지는 그 무엇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거나,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척수장애인들이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많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국가가 척수장애인을 위한 의료적 처치와 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지원했음에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상당수의 장애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지금에야 안 일이지만 그들은 배변 감각상실로 인하여 제때에 노폐물을 방출하지 못하여 방광염 등으로 사망하였던 것이다.

자폐성장애인은 오래 살지 못하는 운명 또는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수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서 부르게 되는 이유, 저 세상으로의 여행을 하게 만드는 이유가 있고,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자폐성장애인의 수명을 짧게 만들 뿐, 주위에서 찾아보면 장수하는 자폐성 장애인도 많이 있다.

분명한 것은 자폐성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생명유지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이다. 그 원인 중에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회적 냉대와 자폐성장애인들을 더욱 자폐성 세계 속에 가두는 세상의 시각이다.

수원의 요양벙원에서 42세의 자폐성장애인 아들을 약을 먹여 고통을 잊게 한 상태에서 질식을 시켜 죽게 한 다음, 어머니도 같은 방법으로 죽으려 했으나 다른 환자에게 발각되어 어머니만 살아나게 되어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에서 장애인의 자녀가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행복하겠다.”며 존속살인을 한 사건이 발생하자, 국민들은 이를 불쌍히 여겨 선처를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에 장애인들은 저항할 수 없는 장애인을 살해한 것은 오히려 더욱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뭉쳤고, 그것이 결국 장애인단체의 결성으로 이어졌고, 탈시설과 자립생활 운동으로 이어졌다. 푸른잔디회의 결성 동기는 장애인 존속살인 사건이었다.

수원 동반자살 사건은 존속살인 사건으로 변하였다. 자폐성장애인 아들이 42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가 잘 돌보아 왔다. 42년이면 이제 자폐성장애인에 대하여 갈등이나 고뇌는 달관할 정도의 세월이라 여겨질 수 있다.

죽은 자폐성장애인의 사촌 여동생이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 그녀는 국민청원 사연을 통해 왜 이렇게 오랜 세월 견디어 왔는데 비극으로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자폐성장애인인 것은 5살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 전에는 좀 발달이 더디다고만 생각했다. 외출을 하여 길을 걸어도 느껴지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 어딜 가도 수군대며 피하는 사람들. 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지킴이로서 부모는 주어진 사명이라 여기며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늘 아들과 함께했다.

감당할 수 없는 돌발행동에 부모들은 서로 감싸 안으며 하루하루를 견디어 나갔다. 아들이 잠이 들면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감사하며 무서운 내일을 두려워하기보다 내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는 마음에 잠을 청하곤 했다. 단 한 번의 재난이면 좋겠다, 매일 매일이 재난인 자폐성 자녀와 함께 살기는 매일 수도 없이 닥쳐오는 강력한 여진이 있는 지진재난과도 같았다.

날이 갈수록 적응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가 지나면 새로운 일이 생기고,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힘의 소진이 요구되었다. 계속 여진이 강타하면 잘 견디어 내고 있던 건물이 언젠가는 무너지듯, 현재 잘 견딘다고 든든하거나 안전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튼튼한 건물도 언젠가는 기울고 스스로 무너지는 것과 같이 감당할 수 없는 한계는 더욱 강한 충격으로 닥쳐와 얼마나 견디는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파도친다.

매일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받는 신체적, 정신적 충격은 자폐성 아들의 난폭한 행동과 폭주로 인하여 가족이기에 그냥 참아야 하는 폭행 같았지만, 신음소리를 억누르고 견디면 언젠가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오늘 하루는 그래도 지나가겠지 생각하였다.

소리를 지르면 이웃은 피해를 주었다며 늘 부모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압박해 왔다. 아들의 행동 위에 이웃의 원망이 더해져 완전히 단신이 되어 망망 바다 위로 떠밀려 나갔다. 예수의 십자가라 생각하고 운명이라 생각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견딜 수 있는 힘은 빠져나가고 있었다. 팔에 힘이 빠지면 추락하는 매달려 있는 인생이었다.

아들을 데리고 전국 각지로 이사를 다녀보았지만, 아들과 함께 이웃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은 단 한 평도 없었다. 행동을 저지할 수 없어 요양병원을 여기저기 다니지만 의료난민이 되어 떠돌아야만 했지, 정착할 곳도 없었다. 며칠만 지나면 “감당이 안 된다,”며 병원에서는 다른 환자에게 방해가 심하니 나가 달라는 말 뿐이었다.

정신병원도 요양병원도 대한민국에 자폐성장애인을 감당할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자리를 잡고 쉴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초조하게 “오늘은 혹시 그냥 넘어가려나?” 하면 그 기대를 산산이 부셔버리며 난동은 시작되었다.

괴성을 지르고 뛰쳐나가려는 행동은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위협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 한 곳 머무르기라도 할 장소나, 행동을 저지할 전문가도 없었으니 오로지 다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아들에게 진정수면주사제를 투여하는 것도 식물인간처럼 누워만 있도록 약물로 잠재우는 것이 아니면 미봉책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냉동인간처럼 약물로 잠만 자게 할 수는 없었다. 강제퇴원을 당하고 오늘 저 병원문을 나서면 갈 곳은 어디에도 없자, 막막함과 불안, 그리고 갈 곳이 아무 곳도 없어 오로지 갈 곳은 저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차라리 죽자!”라는 순간적인 충격의 반응도 아니고, 아들로 인한 고통과 짐을 이제는 내려놓자고 한 것도 아니었다. “이제 다 되었다.” 이제는 그만해도 된다고, 그 무거운 십자가는 이제 지지 말고 십자가 위에 못 박히면 된다고 하는 하늘로부터의 음성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절망을 벗어나고 이제는 아들이 이웃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지 않아도 되는 곳, 그곳은 이 세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아침에 해를 보면서 오늘도 “해 보십시오.”라고 인사하며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를 발산하여 결국 빛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해가 빛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폐성장애아의 가족에게는 그 뜨거운 해가 지옥불에 불과하였다.

“꽃이 펴도 예쁜지 모르고, 바람이 불어도 추운 줄 모르고, 자신의 온몸에 상처가 나도 아픈지 몰라 스스로 이를 뽑고 온몸에 상처를 내던 오빠는 끝내, 자신이 얼마나 엄마 아빠의 사랑을 온전히 다 받았는지도 모른 채 자신밖에 모르던 사랑하던 엄마 손에 머나먼 길을 떠났습니다.”라고 사촌여동생은 말하면서 살아남은 어머니의 처벌은 면치 못하지만 그 행동을 이해라도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함께 떠나기로 한 여행, 그러나 아들이 탑승하고 어머니가 탑승하려는 순간, 영화 같은 죽음의 ‘부산행’ 기차는 떠나 버렸다. 아들과 늘 함께 했던 어머니이기에 장애인 아들을 혼자 여행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울부짖지만 무정한 냉혈 도시는 40년간의 인내와 헌신에 대한 대가를 살인범이란 낙인으로 갚았다.

오늘도 제2, 제3의 자폐성 가족들이 이러한 무서운 ‘부산행’ 기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는 사실을 사회와 정부는 외면하고만 있다. 평균수명 29세에 세상을 떠나게 하는 것은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닐까? 자폐성장애인의 삶의 바닥에는 블랙홀이 즐비하여 한 발만 빠져도 살아갈 수 없다. 그 구멍을 막아주는 안전판을 누구도 놓아주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