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앞에 서 있는 그녀 ⓒ최선영

그녀 이야기

그와 처음 데이트하던 날, 만나기로 한 카페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처음 가는 카페에서 제일 먼저 만난 것은 계단이라는 장애물이었습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만난 계단은 그와 내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서운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계단인 줄 알면서 여기로 오라고 한 거야? 설마?”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00카페 앞인데 여기 맞아요?”

“네 거기 맞아요. 벌써 도착한 거예요?"

“네 좀 일찍 왔어요. 어디쯤이에요?”

“잠시만요. 곧 도착해요.”

계단을 올라가야 하나?... 잠시 망설이는 사이 그가 도착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이 있는 곳인데... 여기로...”

“제가 먼저 가서 기다렸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등을 내주는 그 ⓒ최선영

그는 살짝 무릎을 꿇더니 등을 보였습니다.머뭇거리는 나를 돌아보며 튼튼하니 걱정 말라고 다시 등을 내어줍니다. 그의 등에 업히자 그는 왜 이렇게 가볍냐며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습니다. 여기저기서 보내는 사람들의 시선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사는 세상으로 나를 이끄는 그가 고마웠습니다.

“다음부터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 만나든지 아님 1층으로 장소를 잡아요.”

“제 등이 불편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카페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1층에만 있지도 않아요. 이곳은 꼭 함께 오고 싶었던 곳이에요. 제 등이 불편하지 않다면 장애물도 함께 넘으며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장애인을 향한 시선도 호기심이 아닌 배려가 되고 장애인을 향한 인식이 개선되고 장애물이 하나둘 없어지겠지요.”

그의 말에 다른 말을 더할 수가 없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민우 씨 같지는 않아요...’라고 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는 알까? 우리가 원하는 만큼 세상은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개선되는 시간도 빠르지 않다는 것을.

계단만 보느라 그 카페가 얼마나 예쁘게 꾸며져 있는지는 보지 못했는데 커피를 받아들고 손을 녹이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가 왜 이곳을 고집하며 함께 오고 싶어 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린 씨가 좋아할 만한 소품들이 가득한 곳이죠?” 커피를 마시다 말고 그는 옷과 가방 소품이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쇼핑을 하는 예쁜 곳에서 그는 따뜻한 목도리를 내 목에 둘러주었습니다.

나도 그에게 액자를 선물해주었습니다. 함께 고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서로에게 건네며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때요?”

“좋아요.”

“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 시선이 어떻냐고요.”

“......”

“달라진 거 못 느껴요?”

“처음에는 우릴 쳐다봤는데 지금은 신경도 안 쓰잖아요. 이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거예요."

그가 나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주고자 했던 눈으로 볼 수 없는 커다란 선물이 고마웠습니다.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그 ⓒ최선영

그의 이야기

그녀와 자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데이트다운 데이트는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밝고 예쁜 미소 뒤에 숨어있는 그녀만의 장애물을 뛰어넘게 하고 싶어서 그날은 일부러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카페를 선택했습니다.

그곳은 그녀와 꼭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보다 먼저 도착해서 그녀가 불편하지 않도록 그녀의 튼튼한 다리가 되어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차가 많이 막혀 그녀보다 조금 더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 덕분에 그녀의 볼멘 목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는 2층이라는 장애물 앞에 그녀는 돌아서려 했습니다. 세상을 향해 돌아서버리려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등을 보이며 함께 하자고 했을 때 그녀는 내 등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시선을 보냈습니다.

나는 그녀가 세상 어디에서든 당당하기를 바랐고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들고 세상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하나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떻게 업어야 그녀가 편해하는지를 다 알게 된 건 그 이후 한두 번 더 업고 나서부터입니다.

그녀를 업고 있는 그 ⓒ최선영

“무겁지 않아요?”

“밤 좀 많이 먹어야겠어요. 뭐가 이렇게 가벼워요?”

그녀를 등에 업는 순간... 가냘픈 그녀를 평생 지켜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더 단단해졌습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그녀는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우리를 향하던 사람들의 시선도 제자리를 찾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줄 선물을 골랐습니다. 답답한 게 싫다며 추운 날씨에도 늘 목을 휑하니 드러내는 그녀에게 손뜨개 목도리를 선물했습니다.

그녀는 내 시선을 따라오더니 내가 멈춘 시와 그림이 있는 액자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우리를 향하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듯, 그 시선에 마음을 두던 그녀의 흔들림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사람들 틈에 살면서도 늘 그들의 호기심과 관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이방인처럼 스스로를 내몰던 그녀가 세상 속으로 들어와 하나 되어 살기를 바라며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 저의 마음을 그녀는 보고 따라와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아도 될 관심을 주는 사람들 탓에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서로가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느리지만 움직이고 있고 달라지고 있어요. 우리가 조금 더 앞서가면 더 빠르게 움직이고 더 많은 변화가 있겠지요.”

무엇보다 내 등을 어색해하던 그녀가 이제는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그와 그녀 ⓒ최선영

그녀는 나에게 나는 그녀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서로에게 아름다운 선물이 되어주는 우리이기에 2018년 크리스마스가 더 환하고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함께 하는 이 순간이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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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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