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게 웃고 있는 그와 그녀 ⓒ최선영

스치는 우연인 줄 알았던 그녀와 달리 운명이라 생각했던 그는 그녀의 장애를 장애물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그녀의 일부분으로 안아주었습니다.

그와 그녀가 서로의 삶에 들어오면서 인연을 만들고 운명이 되는 그와 그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활짝 웃고 있는 그녀 ⓒ최선영

[만남-그녀 이야기]

그를 다시 만난 건 10년 만이었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던 날입니다. 미소년에서 어른 남자가 되어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그를 보는 순간, 달라진 그의 모습을 칭찬했습니다.

"너무 멋있어지셨네요."

무심히 던진 한마디에 얼굴까지 붉어지며 어쩔 줄 모르는 그의 순수함이 나를 미소 짓게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날 이후 매일 만남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냥 만났습니다.

출근하는 길목에 있던 사무실을 그는 지나치지 않고 들렀습니다. 모닝커피를 함께 마시자는 이유로 매일 내 사무실에 출근도장을 찍었습니다.

매일 아침 조금 더 일찍 출근하고 커피를 내렸습니다.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그의 걸음을 기다리며 그를 위해 준비하는 아침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무실 직원과 함께 먹던 점심을 어느 순간부터 그와 하게 되었습니다. 메마른 바닥에 조용히 내려 살며시 스며드는 봄비처럼 그는 그렇게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주말이 되면 무박 2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일찍 일어나 김밥을 만들고 샌드위치도 만들었습니다. 무인도에 고립되어도 일주일은 살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을 준비했습니다.

어떤 것은 짜고 또 다른 것은 밍밍한 탓에 만들고 또다시 만들다 보니 양이 많아졌습니다. 참을 수 없는 맛에 식당을 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들고 간 도시락은 처치 곤란한 짐으로 전락해버리는 안타까움을 남겼습니다.

그것을 만회하려고 주말이 다가오면 또 재료를 사들고 옵니다. 그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만하라고 말도 못 하고. 맛없다고 투정도 못하고, 내가 식당 가자고 조르고 조를 때까지 짜고, 밍밍함이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를 김밥을 입으로 쏙쏙 가져가며 그래도 맛있다고 웃어주었습니다.

그 모습에 버럭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었을까요. 그래도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마냥 웃기만 했습니다.

무박 2일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수요일까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쌍코피를 가끔 흘리는 그를 보며 무박 2일 여행을 대신할 다른 좋은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냄비가 처음에는 뜨거워지는 줄도 모른 체 서서히 데워지듯 그러다 어느 순간 펄펄 끓어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만남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서로 그렇게 뜨거워져있는 줄.

그가 많이 아프던 날, 그가 누워있는 병원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눈물 콧물을 한 바가지 쏟아내며 알았습니다. 그의 존재가 얼마나 내 삶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나는 결심했습니다. 내가 안고 있는 장애를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것까지도 사랑해주는 그에게 머뭇거리며 혼자 망설이던 숨겨 둔 마음을 버리고, 내 남은 인생의 시간을 그의 옆에 머물고 싶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그리고 그날 나는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

그녀를 다시 만난 그날을 떠올리며 커피를 마시는 그 ⓒ최선영

[만남-그의 이야기]

그녀를 다시 만난 건 3년 만이었습니다. 새침한 꼬마가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불편한 다리는 내가 업고 가야 할 내 몫인 것처럼 그녀가 내 눈에 들어오 듯, 그녀가 안고 있는 장애도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받아안았습니다.

그리고 어린 심장은 그로부터 15년을 혼자 두근거려야 했습니다.

10년 만이라며 인사하는 그녀의 무심함이 잠깐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그런 면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빌려오지 않고도 그냥 넘길 수 있었습니다.

멋있어졌다는 그녀의 칭찬에 남아있는 서운함의 찌꺼기도 단번에 날려버렸습니다. 그녀는 10년 만에 다시 본다고 기억했지만 15년 전 그녀가 5살 때 이미 우리는 만났습니다. 3년 전에도.

오래전 만남은 너무 어려서 기억에서 지워졌고 3년 전은 존재감이 없어서 기억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녀의 사무실 한참 전에 내려야 했지만 내 사무실을 아침마다 지나치며 그녀가 머무는 곳까지 갔습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저의 치밀함이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내려주는 커피 맛은 아침마다 새로웠습니다.

어제는 에스프레소 같은 진한 맛을 내더니 오늘은 커피가 만나싶을 만큼 옅은 맛이 났습니다. 어제와 오늘의 커피 맛이 달라도 그녀를 보는 내 마음은 한결같이 그 자리였습니다.

그녀와 점심을 먹기 위해 직장 상사의 점심 제안도 거절하는 배짱 좋은 신입사원으로 미운 털이 박히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김밥과 샌드위치는 복불복 게임을 하듯 아슬아슬한 짜릿함을 주었습니다.

너무 짜서 인상을 찌푸리게 될까 봐 차라리 밍밍한 맛을 고르기 위해 매 순간순간 심장이 쫄깃했습니다.

그래도 그녀의 손맛이 더해진 것이 좋아서 그녀에게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식당 대신 도시락을 고집했습니다. 결국 그녀의 고집에 식당을 갈 때도 많았지만.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쌍코피가 나도 좋았습니다. 다른 계획을 세우는 그녀를 보며, 그녀 앞에 보이지 않은 숱한 쌍코피에 대한 날은 숨겨야 했습니다. 그러다 쓰러졌습니다.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더 깊어졌기에 늘 그녀의 마음이 궁금하고 또 어느 순간 날아가 버릴까 봐 불안했습니다. 그녀가 쓰러진 나를 보러 병원으로 달려와 펑펑 울던 날, 그녀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내 옆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장애라는 보이지 않는 작은 장애물을 그녀가 훌쩍 뛰어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습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그녀를. 내가 평생 사랑해야 할 그녀를.

사랑스럽게 서로를 바라보는 그와 그녀 ⓒ최선영

이 가을~ 그와 그녀의 만남을 보는 마음이 설렙니다. 장애가 장애물이 아닌 그들의 사랑으로 미소 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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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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