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러운 눈으로 현진이를 쳐다보는 할머니 ⓒ최선영

“얘야, 현진이가 왜 아직 말이 이렇게 서투니?”

오랜만에 시골에서 오신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진수와 미희는 아무 말 없이 서로 눈치만 봅니다.

“현진이 어디 아픈 거 아니니? 말도 잘못하고 행동도 이상하구나. 숨기지 말고 얘기해보렴.”

“저...... 어머니 놀라지 마세요. 현진이 발달장애일 가능성이 있어요. 아직 정확한 검사는 하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병원에서 말씀하셔서 행동을 관찰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아들이 전하는 하나밖에 없는 손자의 소식에 할머니는 놀라 말을 잇지 못합니다.

“죄송해요 어머니.”

“얘야,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런 말을 하니. 검사 결과 괜찮을 수도 있잖아. 혹여라도 아범이 말한 장애가 있다 해도 요즘 세상이 좋아졌는데 치료하고 잘 키우면 되지. 미리부터 낙심 말자꾸나.”

미희가 안쓰러운 듯 시어머니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말을 건넵니다.

“어머니...... 너무 감사해요.”

미희는 시어머니의 따뜻한 말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한 달 후, 병원을 다녀온 진수와 미희는 현진을 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아빠 엄마의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 체 현진이는 선반 위에 올려진 장난감을 달라고 엄마 손을 끌며 칭얼거립니다.

“미희야, 우리 힘내자. 우리가 힘내야 우리 현진이도 씩씩하게 자라지.”

“응. 그래야지.”

현진이 소식을 전해 듣고 시골에서 다시 올라오신 할머니는 말없이 현진이를 꼬옥 안아줍니다.

위로하며 서로를 다독여주는 현진이 가족 ⓒ최선영

“지금 너희들 마음이 많이 힘들고 아프겠지만, 마음 단단히 먹고 현진이 잘 키우자.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우마.”

“어머니 정말 감사해요.”

“네 아들이기도 하지만 현진이는 내 손자이기도 하단다. 고마워할 것 없다는 말이다.”

진수와 미희는 그렇게 말해주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다고 나서주는 어머니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꾸준한 재활치료와 가족들의 사랑으로 현진이는 간단하지만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손을 꼼지락거리며 불안해 보이는 증세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아 걱정입니다.

어떤 것에 관심을 보이다가도 금세 싫증을 내는 현진이를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하던 진수가 경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곳에서 열리던 발달장애인 가족 마라톤 모임 ‘달려라, 달팽이’가 경주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수막을 들고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마라톤에 참가한 그들을 보았습니다.

진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지켜보다 뒤를 따랐습니다.

마라톤이 끝나고 진수는 딸과 함께 있는 정섭에게 다가갑니다.

“저...... 좀 여쭤봐도 될까요?”

“아, 네.”

“제 아들이 발달장애여서 지나가다 이렇게 걸음을 돌려 뒤를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진수의 말에 정섭은 옆에 있던 딸 효주를 소개하며 활짝 웃어 보입니다.

정섭과 발달장애인 가족 마라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진수 ⓒ최선영

진수는 정섭을 통해 경주지역 발달장애인 가족 마라톤 모임 ‘달려라, 달팽이’에 대해 들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을 고민하다 마라톤을 택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운동도 많은데 왜 마라톤을 하신 건가요?”

“다른 운동은... 예를 들어 축구나 탁구 같은 경우, 공을 다루는 어느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마라톤은 그냥 몸으로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발달장애 아동에게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쉽게 온 가족이 할 수도 있고요.

달리는 과정에서 힘든 것을 참고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인내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달리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이것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함께 하는 즐거움과 끝까지 달렸을 때 큰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해합니다.”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정말 좋은 모임입니다.”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경주에 출장을 왔습니다. 집이 서울입니다.

“그러시군요 알아보시면 참여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겁니다.”

“네 출장에서 돌아가면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당장 시작해야겠어요.”

“네 함께 해보니 정말 좋습니다. 사실 하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해서 좀 더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제대로 이끌어 주는 전문가의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정말 그렇겠네요.”

진수는 정섭에게 감사의 마음을 남기고 걸음을 돌렸습니다.

출장 온 곳에서 뜻밖의 좋은 모습과 정보를 얻어 가는 진수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진수는 미희와 계획을 세웁니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현진에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시작해보려고 현진의 마음부터 만져줍니다.

공원으로 소풍을 나가서 진수와 미희는 먼저 달리는 즐거움을 알게 하기 위해 짧은 거리를 정해놓고 잘 도착했을 때 현진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마라톤은 이제 아빠 엄마보다 현진이 더 좋아하는 운동이 되었습니다.

달리는 기쁨, 완주했을 때의 성취감을 맛본 현진은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끝까지 달려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배웠기 때문에 힘들어도 달립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마음껏 표현합니다.

늘 현진이를 위해 기도하는 할머니는 현진이의 밝아진 표정을 보며 많이 기뻐하셨습니다.

“진수야, 우리 현진이가 더 밝아졌구나. 우리 현진이 마라톤 선수로 키우면 어떠냐.”

“하하, 어머니 선수는 힘들어요. 그냥 온 가족이 함께 달리며 즐거운 시간을 만드는 것으로 저희는 좋아요.”

“나, 선수할래요. 선수할래요.”

현진이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 마라톤 선수가 되겠다고 큰소리로 말합니다.

“어이쿠, 우리 현진이 정말 마라톤이 좋은가 보구나.”

“달리는 거 좋아요. 좋아요.”

“거봐라, 우리 현진이는 좋아하잖아.”

장애가 있다고 좌절했다면 현진이의 마음은 어쩌면 이런 기쁨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자식이, 내 손주가 장애인이라는 사실 앞에서도 좌절 대신 온 가족이 힘을 모으고 사랑으로 함께 한다면 현진이 가족처럼 환한 웃음을 매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진이가 좋아할 만한 마라톤을 시작한 것이 무엇보다 감사했습니다.

진수는 작년에 경주에서 만났던 ‘달려라, 달팽이’가 올해도 동아일보 경주국제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울대회도 있다고 하니 내년쯤에는 현진이 가족도 참가해볼 생각을 하며 마음으로 ‘달려라, 달팽이’를 응원합니다.

마라톤을 하며 환하게 웃는 현진이 ⓒ최선영

무더운 날씨에도 해가 떨어지면 온 가족이 한강으로 나갑니다.

더운 날씨 탓에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도 힘들지만 잠깐이라도 그렇게 나갔다 와야 현진이는 기쁜 마음으로 잠을 청하기 때문입니다.

땀을 흘리며 함께 하는 동안 현진이 가족은 더위를 잊은 체 행복한 미소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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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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