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 가부장적 전통의 낡은 의식이 뿌리다. 집안을 지키기 위해 여성은 늘 희생해야 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그리 망할 집안이면 빨리 망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점차 상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도화선은 한 여성 검사의 고백이었다. 수치심으로 인해 결코 털어놓지 못하리라는 관행적 사고를 일격한 통쾌한 어퍼컷이었다. 참정권 쟁취와 여성의무고용에 더해 출산휴가 정책의 실현이 포장지에 그린 어여쁜 그림에 불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걸 벗겨내는 작업이다. 허위가 사라진 현실은 마주보기 힘들만큼 추악하고 더럽다.

‘이러다가 홍석천만 남겠다’는 댓글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폭로들 때문이다. 허나 사회는 마땅히 이를 마주보고, 견뎌내며, 극복해야만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이들이 입을 열지 못했던 건 우리가 눈과 귀를 닫고 있어서였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쉬이 끓어올랐다 빠르게 식어버리는 대중성이다. 본질의 해갈은 현상을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추동력은 공감이다. 세월호를 인양한 건 ‘나도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의 전이였다.

하지만 거의 전 국민이 진도 앞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도 어느새 ‘이제 그만하자’며 터벅터벅 육지로 걸어 나온 차가움에 ‘진실’에 대한 뜨거운 갈망은 식어버렸다. 내 일이었다면 하는 가정은 어디까지나 가정이었기에.

미투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연예인들의 성폭행 사건이 폭로-사과-자숙-복귀라는 늘 같은 과정으로 전개된 기억이 이런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아마 조만간 미투에 관한 뉴스는 대중들의 피로감을 불러올 것이며, 짧은 뉴스로 처리되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 지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해자들은 자신을 지목한 여성들을 무고나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리라. 사건은 점점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법원은 가벼운 처벌로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지 않을까? 과거 판결에 비춰보면 말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설득을 통한 공감보다는 시위나 폭력적 투쟁으로 인권을 쟁취하려는 유혹에 쉬이 빠지는 이유기도 하다. 어차피 대중들의 관심은 어느 시기를 지나면 사라지고, 그러면 책임 있는 사회 고위층들은 이를 외면할 게 뻔하니 처음부터 강하게 나가는 거다. 장애인들이 현장에 나가 시위를 통해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기가 아랫목에 깃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듯, 변화를 약자들이 체감하는데 또한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끄트머리인 한국에서 여성과 장애인이라는 이중 차별에 빠져 있는 여성 장애인들은 여성과 여성 사이, 장애인과 장애인 중간에 섬처럼 존재한다.

장애인고용개발원의 ‘2017 장애인통계’에 의하면, 여성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2.4%이고, 이 중 고용률은 20.8%다. 남성장애인에 비해 약 2배 적은 수치다. 게다가 그들 중 일부는 출산으로 인한 차별도 마주하게 된다.

척수장애인인 오 씨는 함께 일하던 선배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일에서 배제되는 등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모습을 통해 일과 출산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어렵다고 판단한 끝에 오 씨는 일을 그만뒀고, 이듬해 딸을 출산했다.

그런가 하면 지적장애를 가진 여성 A 씨는 생계를 위해 조건만남을 통해 성매매를 했다. 그 과정에서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이 같은 사실을 성 매수 남성에게 알렸다. 그러나 그는 이를 무시했고. A 씨는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참고로 최근엔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투는 인권운동이다. 이로 말미암아 여성들의 인권은 신장될 거다. 그렇지만 변화의 온기가 장애 여성들에게까지 전해지긴 쉽지 않으리라 본다. 이들에게 사회의 관심이 더 필요한 이유다. 이번 일이 장애여성들의 인권에도 미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새로 지어지는 집에선 장애·비장애를 떠나 모든 여성들이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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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용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대학생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에 5년간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3년 12월부터 1년 간 KBS <사랑의 가족> 리포터로, 2017년 5월부터 약6개월 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며 장애 문제를 취재해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장애 청년으로 살며 느끼는 일상의 소회와 장애 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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