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서의 헌재 탄핵인용 축하모습들 ⓒ이원무

올 한 해는 촛불정국으로 시작되었다. 나라가 최순실로 인해 망가져가는 모습,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부가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점 등이 하나하나 밝혀졌다. 이에 국민들은 촛불시위를 통해 정당하게 분노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침내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우리나라는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일에 착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삶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노동자 등 서민들의 삶을 억압했던 지라 새 대통령은 민생을 챙기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주길 모든 국민들이 바랬다.

특히 장애인들은 시설에서의 인권침해, 최저임금 적용제외 등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 새 대통령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길 몹시도 바랬었다.

5월 9일 제19대 대통령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다음날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광화문1번가 정책인수위를 열었고 국민들은 그곳에 정책을 제안했다.

장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애인 최저임금 보장, 활동지원서비스 수가 현실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기준 및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등을 광화문 1번가에 호소하며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바랬다.

이제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가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약속하고 장애계와 소통을 하려 한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정신적 장애인에게 있어 혹한과 같은 느낌이 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22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 사무실에서 중증장애인 노동권 3개의 안을 요구하며 기자회견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3년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최저임금적용제외 제도 폐지를 권고했다. 하지만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고 보호작업장에 있는 발달장애인 가운데 월급이 한 달에 10만원 이하를 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 장애계 단체에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을 활용해 최저임금을 보전하자는 요구도 했지만 정부에 의해 묵살 당했다.

이 때문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최저임금적용제외 삭제를 요구하며 11월 21일부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점거했다. 투쟁을 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보이는 이 사회가 참 냉혹하기만 하다.

‘강서구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강하게 호소하며 무릎을 꿇는 장애부모들 ⓒ에이블뉴스 DB

지난 8월에는 서울시교육청이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폐교부지에 특수학교 설립 행정예고를 한 후 이 지역 주민들이 학교설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붙였다. 지역 국회의원인 김성태 의원이 공약한 국립한방병원 설립이 특수학교 설립 반대의 주요 이유였던 것이다.

교육부에서 공진초 폐교부지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는 예산을 통과시켰음에도 김성태 의원의 방해가 계속되었다. 이에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은 바른정당 당사에서 농성을 벌임은 물론 서울시교육청에서 9월에 개최한 강서지역 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에서 무릎까지 꿇는 등 장애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하려는 간절한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런 노력으로 국민들은 특수학교 설립에 대해 찬성의견을 던졌다. 정부는 특수학교 설립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애초에 교육부가 발달장애학생을 포함한 장애학생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면서 통합교육을 하는 정책을 세심하게 펼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강서구 특수학교 사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정당한 편의제공을 하는 학교가 많지 않은 등 교육부가 장애학생을 특수학교로 내쫓는 정책을 취한 형국처럼 되어 이런 사단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훈육, 통제를 목적으로 한 폭력은 가중처벌사유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2017 장애인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보고회 전경(좌측), 디딤돌·걸림돌 판결 책자(우측) ⓒ이원무

발달장애인 인권침해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도 아직까지 변한 것이 거의 없다. 장애인거주시설 생활재활교사가 시설 거주 지적장애인에게 폭행을 가했지만 그 장애인이 성기를 만지는 등의 행동을 제지할 필요는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감경해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본다.

훈육과 통제를 목적으로 한 폭력은 오히려 처벌 가중사유가 되어야 함에도 감경 사유로 사법부가 판결한 것은 아직까지도 사법부의 장애인식이 천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법부도 발달장애인에게는 냉혹하고 차가운 대우를 한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발달장애인 가족지원 예산은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자조단체 지원 예산 배정도 역시 한 푼도 없는 것으로 안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냉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부양 부담이 상당해 휴식과 장애아동 돌봄 등 많은 지원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 푼도 배정하지 않으니 부양 부담은 오롯이 부모가 져야 하고 결국 부모들은 삶을 포기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것 같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개소식 종료 후 단체사진 ⓒ이원무

발달장애인 자조단체 지원은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건데 한 푼도 지원하지 않는다면 발달장애인한테 집에 처박히거나 시설에 있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우리 당사자들은 비참하고 지루하게 삶을 보내고 싶지 않다.

발달장애인 관련 예산도 기존예산,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설치 예산만 포함할 뿐 2016년 91억, 올해 89억, 내년에는 83억 등 예산이 계속 삭감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서비스 제공 등의 예산을 줄인다는 말이니 정부가 발달장애인 자체를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정신장애인에게도 올해 차별은 여전했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정신질환자를 원칙적으로 사회복지사 자격 결격자로 규정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원하는 정신장애인은 정신과전문의로부터 시험 응시해도 된다는 진단을 받아야만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거다.

즉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복지사 자격을 얻는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이니 명백한 차별이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계 단체는 정부를 상대로 규탄성명을 내고 시위를 해야 했다.

또한 보건복지부 정신장애 관련 예산은 정신보건시설과 정신요양시설, 국립정신건강센터 등에 편성됐지만 권익지원이나 자립생활 관련 예산이 전무했다. 아직도 강제입원과 치료를 하는 정신병원 중심의 정책을 국가가 실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정신적 장애인은 사회통합이 아닌 격리와 차별을 겪으며 차디차고 혹독한 겨울과 같은 현실에 직면해 있다. ‘정신적 장애인 삶의 봄은 언제 올 것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올해 10월 10일 광화문역 인근 교보문고 앞에서 정신장애인과 당사자 가족들이 사회복지사 자격취득 결격대상에 정신장애인을 포함시킨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모습 ⓒ에이블뉴스 DB

더군다나 장애계는 한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분열되어 있고 국회에서 장애인의 정치적 입지는 전에 비해 많이 좁아진 상태다.

장애계 단체들이 자신만의 목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하며 성숙한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그 가운데 정신적 장애라는 이유로 악의적으로 차별하는 우리 사회의 작태에 대해 강력하게 정부와 국회를 향해 한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또한 피플퍼스트와 앞으로 생길 발달장애인 당사자단체 혹은 자조모임과의 연대를 통해 당사자들이 단결해 당사자의 목소리가 하나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당사자단체 활동에 대한 예산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 당사자단체들끼리도 연대하며 정신적 장애인의 차별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정신적 장애인들이 권리를 찾고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부도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장애인식개선 정책을 통해 정신적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을 좋게 할 수 있도록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계의 의견을 들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본다. 그럴 때 정신적 장애인의 삶에 인간다운 삶이라는 봄이 하루빨리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내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한국의 장애인 인권 현실에 대한 질의목록을 장애계 단체들을 포함한 NGO단체들이 제출한다. 그러면 위원회는 최종 질의목록을 내년 3월경에 결정한다고 한다. 최종질의목록에 발달장애인과 관련해 가족지원, 선거권, 최저임금 적용제외, 시설에서의 인권침해, 사법지원 등이 반드시 들어갔으면 한다.

올해 12월 21일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연맹, 한국척수장애인협회 등 17개 단체가 모인 UN장애인권리협약NGO연대(이하 NGO연대)가 ‘국가보고서 질의목록 채택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필자도 기회가 된다면 최종질의목록에 발달장애인 이슈들이 많이 들어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나아가서는 발달장애인의 인권현실이 어떤지를 최선을 다해 권리위원회 위원들에게 상세하게 알리고 싶다,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지난 2년 동안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 보니 여러 기억이 남는다. 장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나와 같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면서 서로 공감하기 위한 시간도 가졌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쉽게 칼럼을 쓰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장애정책 외에도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보람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글 쓰는 것에 정이 들어버렸다. 내년에도 칼럼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칼럼을 통해 다른 발달장애인의 생각을 듣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칼럼 쓰는 것을 잠시 쉬려고 한다. 대신 내년에도 장애계에 이슈가 생길 때면 기고를 통해 나의 생각을 전달하고 싶다.

내년에는 나의 친구인 장지용이 우리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삶과 발달장애인 관련 정책들에 대해 자신만의 시선을 가지고 칼럼을 연재할 것이다. 이 칼럼니스트에게도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필자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장애계 이슈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부족했지만 2년 동안 독자들에게 참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년의 나의 바람을 한 마디만 하고 2년 동안의 칼럼을 마무리하겠다.

‘정신적 장애인의 삶에 따뜻한 봄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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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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