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채비’의 한 장면. ⓒ서인환

영화 채비가 11월 9일 개봉하여 11월 25일 현재 관객 15만을 돌파했다. 그 동안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나 지역 장애인단체 등에서 단체관람을 하기도 하였지만, 11월 25일처럼 서울시에서 장애인부모들을 초대하여 단체 관람을 한 경우는 처음이다. 12월 2일은 서울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시민들을 초청한다.

저녁 7시 반 대한극장 상영관 2관 160석은 모두 무료입장이 되었다. 함께 가는 서울 부모회(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준비 위원들이 중앙 2열은 서울시장과, 임원진 등 내빈을 위하여 자리를 확보하고, 입장하는 장애인 가족들의 자리를 안내했다.

이미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부모들도 있었다. 국회에서도 시사회가 있었다. 영화를 볼 때마다 손수건을 적시며 흐느껴 울었는데, 다만 영화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는 장면이 달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에서 울음이 나오고, 다음에는 부모가 죽은 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 장애인이 울음을 참는 장면에서 눈물이 나오며, 또 그 다음에는 자립을 위해 실수를 거듭하며 일상생활을 배워나가는 장면에서 눈물이 난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먼저 우는 엄마들은 여러 번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이고, 중간에 훌쩍이기 시작하는 엄마들은 이 영화를 처음 보러 온 사람이며, 나중까지 울고 있는 엄마들은 두세 번 보러 온 사람들이란 말이다.

채비 조영준 감독은 3년 전 TV 다큐에서 어느 70대 장애인 부모가 50대의 발달장애인 자식을 돌보며 ‘같은 날 죽고 싶다’, ‘하루라도 더 살아 자식을 건사하고 싶다’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영화에서는 50대 엄마(애순, 고두심 역)와 30대 장애인 자식(인규, 김성균 역)으로 그려진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애순이 7세 수준의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버스정류장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애순은 24시간 아들을 돌보는데, 아들은 늘 사고뭉치이고 엄마는 잔소리꾼으로 변해 있다.

늘 먹는 것에 집착이 많으며, 노래와 춤추기를 좋아하는 인규는 엄마가 힘들어하면 박상철의 ‘무조건’을 노래 부르며 춤을 추어 위로한다. 그러던 중 결혼한 누나 문경(유선 역)이 찾아와 사업자금을 빼 달라는 남편 때문에 애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애순은 인규 몫으로 남겨 둔 돈이라며 거절한다. 문경은 형제간 역차별을 느끼며 섭섭해 한다.

손 떨림이 있어 약국을 자주 찾았던 애순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다가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쓰러지는데, 검진 결과 뇌종양 3기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인규를 맡아줄 시설을 찾아 다녀보았지만 적절한 곳이 없어 스스로 자립에 필요한 훈련을 시키기로 마음먹고 일상생활(식사, 세탁, 면도)과 직업생활(제빵), 여가문화생활(등산)을 가르치게 된다.

의도된 교육이나 훈련과정으로 영화를 보여준다면 지루할 것이나 영화는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계란 후라이를 위해 깨트리는 장면은 아기를 다루듯 하라고 설명한다. 그러자 인규는 계란 반찬만으로 식사를 준비하여 애순에게 가져온다.

죽음은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여기는 인규에게 죽음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양복을 맞춰 입히고, 상가집을 찾아 죽음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며, 엄마는 곧 죽을 것이고 그 후는 인규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규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가자, 인규를 찾아 진정 시킨 다음 엄마가 떠나면 절대 울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게 한다.

결국 애순은 그 동안 서원했던 누나 문경에게 돈을 주고 일부는 인규를 위해 사용하여 달라고 하고, 가끔 인규를 들여다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세상을 떠난다. 인규는 장례식장에서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싱글벙글하고, 화장을 위한 마지막 작별 장면에서 손을 흔든다.

인규는 혼자서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제빵 가게에서 일하며 장애인 등산모임에 참가하여 당당하게 살아가게 된다.

내용을 분석해 보자. 인규는 30대이지만 7세의 발달장애인이다. 글은 읽을 수 있다. 7세처럼 놀이를 좋아하고, 장난기도 많고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다. 평소 망원경을 목에 걸고 다니며 유치원 선생님 경란을 몰래 지켜보기도 한다.

대본상에는 큰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기에서는 어색하고 잘 맞지 않는 바보역할처럼 묘사된다. 마치 과거 코믹한 드라마 ‘여로’의 바보처럼 짧은 단어로 된 문장을 반말 형태로 반복한다. 그리고 팔을 허공에 저으며 걷는다.

장애인 이미지를 관객에게 알리는 것에는 성공할 수 있으나 실재 지적장애인과는 좀 거리가 있다. 출연진들은 많은 문헌 조사도 하고, 발달장애인과 생활도 하면서 무단한 노력을 했다. 감독은 노인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자료를 찾기가 힘들 었는데, 알고 보니 자료가 아예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규는 ‘나 호자 했다’, ‘밥 줘’, ‘잔소리 잔소리’, ‘힘들어?’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하고, 감탄사는 ‘허어, 허’를 사용하고, 자기가 살고 있는 주소도 잘 알지 못한다. 힘들면 노래를 하는 낙천적 성격을 갖고 있고, 춤을 추면서 오대양을 정확히 지도에서 찾아 가리킨다.

애순이 죽기 전 가족들에게 빨간색 뜨개질한 옷을 선물하면서 같은 가족임을 인식시키자 누나 문경이 인규는 자신만 아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문경의 딸이 삼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많다고 하고, 인규는 가족들의 생일과 문경의 결혼기념일을 외우고는 같이 살지 못하게 되어 울었다고 말한다.

인규는 집에 혼자 남겨지자, 통조림의 꽁치가 제일 맛있다며 전자레인지에 넣어 불꽃이 튀자 번개 친다며 위험을 모르고 사고를 치게 되어 지적 장애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발달장애 7세의 연기는 코믹한 바보 연기 같은 가공적 요소가 많아 현실의 지적장애와 거리가 있다.

영화에서 인규에 대해 이웃들은 아픈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애순은 조금 모자란다고 표현한다. 장애에 대한 인식은 애순과 친한 이웃들은 긍정적이고, 유치원 학부모와 행인들은 오해를 하여 범인(스토커와 바보라는 말에 화가나 덤비는 폭력범)으로 몰려 경찰서를 찾기도 한다.

애순은 아들 인규의 자립생활을 위해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유치원 선생 경란에게는 아프게 거절해 달라고 하고, 아들에게는 포로포즈를 하도록 유도한다. 인규는 꽃을 사서 유치원 선생에게 고백하지만 경란은 남자 친구가 있다며 친구가 되자고 하고, 인규는 이를 거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매우 기뻐한다. 그리고 애순이 과거에 좋아했던 생크림빵을 만들어 유치원 교사가 아닌 엄마에게 선물한다.

사회복지사 박계장과 자립을 의논하기도 하고, 목사에게 천당은 맛있는 것 많이 먹는 곳이 아니라 돌아올 수 없는 곳임을 말하게 하는데, 목사는 천국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곳이 아니라 하늘위에 있다고 하자 인규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살펴본다. 망원경의 세게는 인규의 관심사이자 세계이다.

애순은 죽음의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병아리 3마리를 사 오게 되는데, 생생한 병아리가 아니라 곧 죽을 병아리를 선택한다. 그 병아리 중에서 후라이라 이름 지은 병아리가 자라 닭이 되어 인규에게 계란 후라이 재료를 제공한다. 인규는 좋다는 표현을 할 때에 후라이만큼, 엄마 만큼이라고 말하는데, 후라이는 인규의 가치관이고 죽음 이후 이어지는 삶의 상징이다.

애순은 늘 형광옷을 입고 다닌다. 멀리서 인규가 자신을 알아보도록 하기 위함이다. 인규가 장례식장에서 뛰쳐나가자 인규를 찾아 나선 애순은 겉옷을 벗고 바로 형광옷이 나타나도록 하고 인규를 찾는 모습을 보인다.

매점은 애순과 인규가 가진 작은 공간이다. 이는 갇힌 공간이기도 하고, 행복한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이에 대조되는 장면은 바닷가이다. 모든 가족이 놀러 간 적이 있는 바닷가 사진을 가지고 다시 바닷가를 찾아 인규에게 추억의 사진과 지금의 바다를 연결하면서 가족이라는 문경과 연결시키고, 세상과 연결시킨다.

죽음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구입한 병아리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자라 닭이 되어 인규에게 계란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 역시 죽음 후의 인규의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오블라디 오블라다(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의 연속성을 표현한다.

예배당은 장애와 죽음을 수용해 나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대상이 되는데, 부정, 원망, 화남, 슬픔, 수용의 장애 수용 과정을 교회를 통해 나타낸다. 처음에는 교회를 돈이나 받으려고 선교를 한다고 말하고, 십자가를 보고 암에 걸림에 대한 적의감을 나타내기도 하고, 인규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수용하도록 하는 장소로도 사용되고, 조금 더 살게 해달라는 애원의 장소이기도 하다.

바삐 일터를 향하면서 거리에서 산만한 태도를 보이는 인규에게 계단을 내려가며 혼자가 아닌 엄마와 가위 바위 보를 하자고 한 것은 발달장애인을 아이처럼 묘사한 것이고, 횡단보도에서 애순이 먼저 건너며 빨리 오라고 하는 장면은 위험 장소에서 제대로 보호를 하지 못하는 허술한 장면이 된다.

애순이 죽은 후 인규가 자립생활을 잘 하도록 하기 위하여 가전제품이나 냉장고, 가스밸브 등에 주의사항을 일일이 글로 써 붙이는데, 인규가 글을 알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자립생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암 선고 이전에는 왜 자립생활이 불가능한 보호만 했을까도 의문이다. 이렇게 쉽게 자립이 가능한데 말이다.

인규는 항상 ‘허허’ 하고 웃지만, 바보라는 말에 상처를 받는다. 한 행인인 연인들이 바보같다는 자기들의 말을 자신을 두고 한 말로 오해하여 덤벼들기도 하고, 애순이 너무 힘든 시절 인규를 바보 같다고 한 말도 상처로 기억하고 있다. 인규가 엄마도 나 싫어한다며 기억하고 있음을 말하자, 애순은 놀란다.

관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박원순 시장. ⓒ서인환

이날 행사에 박원순 시장도 참여하였다. 장애인부모연대 김남연 대표는 시장에게 고두심의 손수건을 선물했는데, 거기에는 ‘지금 닥친 힘든 일도 시간과 함께 흘러 갈거야’라는 글귀가 고두심의 이름과 함께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행사일은 하루 종일 어두운 하늘 아래 비가 내렸고, 한낮임에도 종일 하늘은 너무 어두웠다. 그리고 영화 상영 동안에도 굵은 빗줄기가 내렸다. 영화가 마칠 즈음 비가 그치자, 김종옥 동작구 부모회장은 궂은 날씨도 궂을 만큼 궂은 다음은 상쾌한 일기가 온다며, 돌아가는 길은 가족과 손을 잡고 행복하게 돌아가라고 인사했다.

영화를 마치고 박원순 시장이 참석한 이 절호의 찬스를 그냥 보낼 리가 없었다. 즉석에서 시장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어느새 참석자들에게는 ‘발달장애인이 행복한 서울시’라는 수건띠가 들여져 있었다. 사회자는 ‘이 영화는 환타지 영화입니다. 발달장애인 성인이 이렇게 쉽게 자립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바램이니 환타지 영화가 맞지요’라고 말했다.

박 시장에게 영화 관람 소감을 묻자 시장은 한 동안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종옥 회장의 사회로 박원순 3행시 짓기가 이어졌다. 이는 즉석에서 벌어진 것이라기보다 미리 지어온 것 같았다. 각본대로 발표자가 지명되었다.

‘박물관에는 없다. 원순만이 가지고 있다. 순도 100퍼센트 장애인 공감’, ‘밖에는 천둥번개 비바람이 불어요. 원하는 건 이거랍니다. 순식간에 펼쳐주는 우산이 되어주세요’, ‘박원순 시장에게, 원하는 건 이거랍니다. 순수한 우리 아이의 희망이 되어주세요’ 등의 삼행시가 나왔다.

서울시청 공무원들과 시민 모두 영화 '채비'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자, 시장은 SNS를 통해 자신도 홍보하겠다고 답했다. 누군가가 ‘삼선 짜장도 좋지만, 삼선 시장은 더욱 좋다’는 발언을 하자, 사전 선거 소지를 의식한 듯 시장은 몹시 부담스러워했으며, 서둘러 싸늘해진 분위기를 정책 요구안 발표로 이어갔다.

발언자는 우리 표를 의식한다면 장애인 정책을 더 신경 쓰라는 압박의 의도였다. 사회자는 눈물을 흘리는 시장에게 ‘이렇게 여린 시장님이시면 더욱 투쟁을 강하게 할 걸 그랬나 봐요’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정책 요구안을 보면, 성년기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시간을 보장해 달라는 주문과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있었지만, 참석자 한 분이 ‘우리 아이의 노년을 생각하면 무서워요. 발달장애인들이 생애주기 맞춤한 일정표를 짜고 지역사회에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세요’라고 말하자 모두 박수를 치며 동의를 표했다.

영화 중에 나온 노래인 ‘무조건’의 노래에 맞춰 함께 가는 부모회 임원진들은 춤을 추며 시장에게 다가와 파란 장미를 선물했다. 파란 장미는 세상에 자연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꽃으로 자폐인을 상징하고 있어 발달장애인을 상징하는 의미로 선물한 것이다.

박 시장은 서울시가 먼저 복지 선진화로 앞장서면 다른 지자체들도 뒤이어 시행해 주니 우리가 먼저 복지 선진화를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하였고, 이로써 이날 행사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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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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