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장애인 개방직에 누가 임명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노동부는 개방직으로 장애인을 공모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소리소문 없이 이 일은 없던 일로 되었다.

장애인의 고용정책이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으로 펼쳐지고 행정상 소통이 더 원활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진 셈이다.

장애인 개방직 공무원은 보건복지부 권익증진과 과장직과 문체부 국립장애인도서관장직, 그리고 장애인체육과장직이다. 개방직을 선정하는 방식은 해당 부처에서 심의를 하여 장관이 결정하는 방식과 해당 부처에서 후보를 정한 다음, 행안부 인사혁신처 역량평가단에 의뢰하여 심의를 하는 방식이 있다.

최근 장애인 개방직 자리는 몇 번이고 재공고를 내면서도 적임자가 없다며 자리를 공석으로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장애인 관련 행정의 공백을 가져온다. 그리고 많은 장애인들이 도전을 하지만 모두가 실패자가 되어 실망하게 된다.

장애인 관련 행정부서의 개방직은 장애인 당사자의 고위직 공무원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특별전형과 같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고객인 장애인과 소통을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는 장애인들에게 자긍심을 가지게 하고, 행정의 참여를 통한 장애인의 지위향상과 고객만족감에도 의미가 크다.

장애인 개방직은 국가나 장애인이나 모두가 윈윈하는 열린 정치를 가능하게 하고, 국민의 정치참여와 사회참여를 촉진하고, 장애인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긍정적 측면은 매우 크나큰 자산이다.

인사혁신처의 역량평가를 통해 장애인 개방직을 선정하는 경우, 고위 공무원 자격의 잣대로 장애인 행정업무를 판단하게 하여 장애인은 역량이 없다는 결론을 내기 쉽다. 행정부에서 장애인 임용을 기피하고자 하는 경우 형식만 장애인에게 기회를 준 것으로 하고, 실상은 해당자가 없어 기존 공무원들의 자리로 만들어버리는 핑계를 제공한다.

역량평가는 현재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능력을 발휘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평가한다.

주어진 업무에 얼마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성과지향 역량, 환경변화의 방향과 흐름을 이해하고 조직 내에서 얼마나 잘 대응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변화관리 역량, 정보를 파악하고 문제를 적시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문제인식 역량,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전략을 세울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전략적 사고 역량,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고 충족시키는 고객만족 역량, 이해당사자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조정과 통합 역량 등을 평가하게 된다.

단순히 정성평가로 채점표에 이러한 문항을 두고 면접을 보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정교한 평가라도 단 시간의 평가는 문제가 있다. 낙하산으로 모처에 뛰어내리는 평가를 한다고, 매번 살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이를 평가하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은 6시간 정도이다. 먼저 공무원 사회의 조직의 역할을 정하여 대화를 통하여 설득하는 역할극을 하게 한다. 다음으로 12페이지 분량의 행정 업무를 무작위로 선정하여 자료를 주고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리포터로 작성하게 한다.

가상업무를 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우연히 유리한 문제일 수 있어 이러한 가상문제는 세 번이나 주어진다. 문제는 개방직에서 할 업무가 아니라 농수산부, 원자력, 우편국 등 다양한 업무를 설정한다.

장애인 개방직 응모자는 여기서 당황하게 된다. 장애인과 관련된 업무의 해당 업무만을 숙지하고 자신이 제출한 업무수행 계획서에 대해 면접을 준비한 사람으로서는 생판 생각해 보지도 않은 업무에 많은 분량의 전문적인 지식을 제시하고는 그 자리에서 분석하도록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다양한 문제에 다양한 경험이 적은 장애인으로서는 대책이 서지 않는다.

다음은 부분적인 정보를 주는 동료나 부하 직원을 가정하여 그에게서 완전한 정보를 알아내고 정리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다음은 사례연구로서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방안을 정리하여 보고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평가를 한다.

그리고는 집단토론 평가를 하는데, 심사위원 전문가들과 집단 토의를 하여 시간 내에 의사결정을 해 내도록 한다. 그리고 서류함기법이라 하여 투서 등의 문제를 제시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한다.

마지막으로 경영게임이라 하여 각자 분담된 역할을 주고, 수익을 창출하거나 의사결정을 하는 규칙과정을 평가한다. 아무리 기발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도 평가자가 트집을 잡고 늘어지면 능력 부족자가 된다.

임기응변럭으로 전문성을 측정할 수 없다. 지체장애인에게 달리기 기록경기를 시키는 격이다. 장애인은 주어진 시간 내에 이 조건을 충족하기란 정말 힘들다. 시청각 장애인이나 뇌병변 장애인이라면 제한된 시간에 소화하기란 불가능하다.

고위공무원이란 국장과 실장급 이상을 말하는데, 공무원은 과장에서 국장으로 진급을 하려면 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평소 오랜 기간 단련된 공무원 경력이 있어 상당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개방직은 과장급이라도 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즉 공무원 경험이 없는 민간에게는 더욱 불리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 민간은 국장급 이상의 능력자라야 과장직을 허가한다는 말이다.

아무런 공무원 조직 경험이 없는데도 공무원 조직 능력을 평가하니 상대평가도 아니고 절대평가인 역량평가를 통과할 수 없다. 공무원으로 많은 경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이 과정을 통과하기 어렵다.

장애인을 개방직으로 임용하겠다고 방침을 정했다면 장애인 관련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고, 비전을 가지고 있고 단체와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인물이고, 정책적 대안을 가지고 있고, 관련 업무 경험이 풍부하거나 소양을 갖춘 자면 족하다.

장애인 사회에서 오랜 기간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장애인들에게 사회에 기여해 보고자 나선 응모자가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고, 장애인 업무도 모르는 평가자들 앞에서 전혀 업무와 무관한 다른 영역의 행정 문제를 풀어야 하니 결국 장애인 개방직 해당자가 없다며 수십 명 모두를 탈락시키는 결과를 낳게 한다.

낙하산이나 정치적으로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면 장애인과 해당 업무를 감안하여 평가하고, 그렇지 않거나 공무원 자리로 바꾸어 개방직을 없애버리고 싶으면 매우 엄격한 잣대로 포기하게 만들면 되므로 이러한 평가 제도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장치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장애인에게 잔인하고 정치인들의 악용하는 제도도 될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장애인체육을 진흥시키고,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 각종 행사를 잘 할 수 있는 개방직에 어떤 행정 업무든 주어진 업무를 소화하고 보유 능력이 아니라 앞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겠다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것이다.

행정직 공무원은 다른 부처로 발령을 할 수도 있고, 그것도 연수를 통해 역량을 키워준다. 잠재능력을 역량이라 하여 평가한다고 하면서 장기간 행정 공무원으로 일한 사람에게 유리한 행정능력, 그리고 조직 장악과 문제해결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민간인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개울에서 용을 찾는 일이다. 혹 정치인 당선에 기여한 만능 재주꾼 교수라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제 장애인들은 장애인 정책발전에 기여해 보고자 용기조차 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과 장애인들과의 네트워크, 그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해 보고자 입신을 시도하였다가 참담한 경험으로 좌절을 맛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장애인 관련 행정부서는 모두 장애인 조직에 맡긴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업무를 발전시키도록 한다. 다만 조정 능력이나 설득력 등은 심성과 관련 업무의 깊이에서 나온다. 그런데 평가 당일 날 벼락처럼 주어진 산더미 같은 서류와 질문 속에서 평가자들에게 둘러싸여 집단 공격을 받게 하는 것은 개방직을 장애인에게 주겠다는 의미와 거리가 멀다.

국민은 누구나 공무원이 될 수 있다. 장애인은 장애인 부서에서 일할 기회가 필요하다. 그런데 장애 영역에서 충심으로 일하고자 하는 응모자들에게 역량을 증명하지 못하면 자리를 줄 수 없다고 하면, 결국 장애인의 고위공무원 자리는 씨가 마를 것이다.

연거푸 개방직 문체부 과장 자리는 해당자 없음으로 끝이 났다. 재활스포츠 경력도, 체육인으로서의 경력도 필요 없고, 단지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분석력과 대응능력, 모든 행정 이론과 비장애인의 공무원과 동등한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오랜 시간 한 계단 한 게단 올라온 이 어려운 공무원 자리를 민간인에게 쉽게 줄 수 없으며 우리와 동등한 능력이 없는 동료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인사혁신처는 필요한 인재를 발굴하는 역량을 평가받아야 한다. 장애인의 개방직은 장애인 공모자 중에서 가장 적합한 자를 선정하고, 필요한 능력은 연수를 통해 교육하면 된다. 그리고 소통능력과 조정능력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생소한 업무 환경에서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유관 경력과 감수성, 장애인에 대한 이해력에서 나온다.

만약 인사혁신처 평가자들에게 장애인등급제나 장애인체육 발전방안에 대하여 30분을 주고 정리하여 발표하고, 장애인계의 갈등과 고객불만을 찾아 해결책을 발표하라고 하면 아무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평가자들은 평가자로서 모두 불합격해야 한다.

장애인 관련 업무의 개방직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개방직은 다른 부처로 전보발령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예시로 제시하여 평가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소통능력이나 조정능력,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 등은 관련 업무와 연관하여 평가한다면 매우 합리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업무와 무관한 우편국의 과제를 풀지 못하고, 물류유통에서 고객의 불만해소 방안을 몰랐다고 그가 개방직에서 장애인과 소통을 못하고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할까?

줄자를 가지고 백만분의 1센티미터를 측정하는 평가를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평가방식이 문재인 정부의 꼼수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개혁은 현실을 반영하고 발전하기 위한 것이지, 생소한 이론들의 실험이 아니다. 장애인 개방직 씨를 말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장애감수성과 업무수행 능력을 가진 공모자 중에서 조속히 선정하여 임용해야 할 것이다.

정말 실망이다. 장애인을 기만하는 인사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인사는 만사이지만 망사는 아니다. 연이은 해당자 없다는 결과 발표는 정말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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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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