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들이 노래를 만들어서 그 노래가 화제가 되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사실, 유럽에서는 믿을 수 있습니다.

팝에 관심 있는 분들 중에는 유럽 최대의 가요제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대회를 아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팝의 전설인 아바(ABBA)도 1974년 대회에서 ‘Waterloo'를 내걸고 스웨덴 대표로 참가하여 우승을 차지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셀린 디옹도 1988년 대회에서 스위스 대표로 참가하여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995년 우승팀인 노르웨이 대표 ‘시크릿 가든’도 기억합니다. 시크릿 가든은 그 대회 사상 첫 악기 연주곡으로 우승했고, 한국에도 광고 음악으로 쓰인 적이 있었습니다. 또 저는 공연을 못 봤지만 한국에 공연을 올 정도로 말이죠.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올해도 어김없이 대회가 열렸는데, 핀란드 대표로 출전한 밴드가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이들입니다.

밴드의 이름을 읽으면 “페르티 쿠리칸 니미패이배트”입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핀란드어 줄임말인 PKN으로도 부르며, 그들의 드럼에도 새겨져있습니다. 이름의 뜻은 밴드의 리더인 페르티 쿠리칸과 관련이 있습니다. 밴드 이름을 번역하면 “페르티 쿠리칸의 영명축일”이라는 뜻입니다. (예전 유럽에서는 생일대신 성자 개념이 없는 종파를 뺀 교회에서 많이 쓰이는 세례명에 붙어있는 성자의 기념일, 즉 축일을 많이 따졌었는데 이것을 영명축일이라고 합니다.)

PKN는 남성 4인조 밴드입니다. 장애유형은 드럼을 치는 또니 밸리딸로만이 다운증후군, 즉 지적장애인이고 나머지 셋은 자폐성장애인입니다. 페르티 쿠리칸은 전기 기타를 치고, 카리 알또는 보컬(밴드의 가수), 사미 헬레는 베이스 기타를 다룹니다. 그리고 이들은 성인 발달장애인작업장에서 일하다가 밴드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들 중 장애인당사자 운동을 많이 하는 구성원은 베이스 기타를 맡는 사미 헬레로, 장애인운동단체 회원이고 핀란드의 주요 정당인 중도당의 당원입니다. 그의 꿈은 나중에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의 시의원을 넘어 국회의원까지 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참고로 핀란드도 한국처럼 국회가 하나뿐인 ‘단원제’입니다.

PKN는 핀란드에서도 유명합니다. ‘펑크 신드롬’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소개되기도 하였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2006년 우승팀이자 유일한 역대 대회 우승자중 유일한 핀란드 출신인 록 그룹 ‘로디’의 자선공연에 함께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는 유럽 각국의 자존심을 건 대회이기 때문에, 국가별 예선을 거치는 국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도 핀란드 예선을 거쳤고 핀란드 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본선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들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핀란드 대표로 참여한다는 것이 결정되자, 유럽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발달장애를 가진 구성원들로 구성되었다는 것과 그들이 그 대회 역사상 최초로 ‘펑크 록’이라는 음악 장르를 내걸고 출전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본선대회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렸습니다. 그들도 5월 19일,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대회장 무대에 섰습니다. 이들은 준결승 1부 무대에 서서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인 자신들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노래로 풀어낸 ‘나는 항상 해야만 해’(Aina mun pitää)라는 제목의 노래 공연을 했고, 대회의 규칙인 전화투표에 따라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은 결승에 진출하지는 못했습니다. 우승은 스웨덴 대표가 차지했고 그 부상으로 대회 규칙에 따라 내년 대회 본선개최권도 얻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예상외로 PKN처럼 발달장애인들이지만 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발달장애인 예술가들이 더러 보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가끔씩 그런 발달장애 예술인들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일반 언론에서도 보도할 정도이니까요. (사진작가인 저도 유명 인터넷 언론, 지역지 등에 보도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이 전 유럽의 시청자들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삶을 노래로 풀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전 세계의 어디든 좋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예술을 내걸고 대중들 앞에서 주목받는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이 그림이건, 음악이건, 사진이건, 글이건 또 다른 무엇이건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그날을 위해 올해 여름휴가의 휴가지에서 열심히 셔터를 돌릴 것입니다. 왜 셔터를 돌리냐고요? 저는 사진작가니까요.

이제 그들이 불렀던 노래 가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원래 노래 가사는 핀란드어로 썼는데 한국에서는 핀란드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저번에 소개했던 영어 편지와 달리 한국어 번역만 소개하겠습니다. 다만, 노래 가사의 한국어 번역은 한국어와 핀란드어를 모두 할 수 있는 제 친구이면서, 방송인이자 번역가인 핀란드인 따루 살미넨씨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 제 친구 따루 살미넨씨에 대한 이야기도 나중에 이 코너에서 다루겠습니다. 또 다른 의미의 ‘조력자’니까요.)

난 항상 해야만 해

번역: 따루 살미넨

나는 항상 청소해야해

나는 항상 설거지해야 해

나는 항상 일 해야 해

나는 항상 병원에 다녀야 해

컴퓨터 하면 안 되고 TV를 봐선 안 돼

친구도 만나서도 안 되고

나는 항상 집에만 있어야 해

나는 항상 심부름해야 해

나는 항상 밥 많이 먹어야 해

사탕을 먹어서도 안 되고 콜라를 마셔도 안 돼

(그리고) 술도 마셔선 안 돼

나는 항상 쉬어야만 해

나는 항상 자야만 해

나는 항상 일어나야 해

나는 항상 샤워해야 해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