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그 프로그램 출연으로 방송계에 입문한 출연자들이 방송에 계속 나오고 있다지만 종영한지 5년이 지났기에 여러분들의 기억에는 잘 남아있지는 않을만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KBS 2TV를 통해 방송된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 2006~2010)를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미수다와 조금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몇몇 미수다 출연 패널들과 인터넷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를 활용하고 있죠. 모든 패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결된 패널들과는 적어도 가끔씩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중 페이스북으로 대화를 나누는 패널들 중 하나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윈터 레이먼드 ⓒ윈터 레이먼드 페이스북

그녀의 이름은 방송에서는 ‘윈터’로 줄여서 부른 윈터 린 레이먼드(Winter Lynn Raymond)입니다. 미국인이고, 미수다 출연 당시에는 로펌 인턴이었으며, 지금은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한 기업의 법무부서 수석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름의 "윈터"라는 뜻은 우리가 다 아는 ‘겨울’이 맞습니다. 그저 겨울에 태어났다고 윈터의 부모가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미수다 출연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겨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미수다에서 윈터의 인상은 할리우드 배우 같은 외모, 패션과 방송에서 전할 이야기를 떠듬떠듬 한국어로 하더라도 중요한 말을 많이 하고 의미가 있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의 의료보험 문제를 비판할 때 많이 인용되는 이야기인 “내가 독감에 걸려 보름간 입원했는데, 병원비가 4,500만원(5만 달러)이 들었다”라는 이야기를 한 것도 윈터였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강도 사건을 담담히 말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깊이가 있는 윈터였습니다.

처음에는 트위터로 대화를 나눴었는데, 나중에 페이스북으로 옮겨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인사말을 건네면서,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졌습니다. 그러다 제 마음 속에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처음 만나서 본격적으로 친해지면 반드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그 것, 바로 제 장애를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2013년 1월, 정식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고난이 있었음을 윈터에게 고백했습니다.

며칠 뒤, 윈터는 댓글을 통해 긴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당당하게 살길 바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영어로 보내왔지만요.

저는 이 메시지에 감동했습니다. 처음으로 내 손으로 만든 인간관계를 통해 만난 사람에게 담담히 장애 사실을 이야기해도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빌미로 놀리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짧은 편지를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Cheer Up!"(힘 내!) 하는 수준의 메시지였다면 이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 메시지를 받았을 시점은 마침 제가 사회인으로 나아갈 무렵이었습니다. 그 것도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저를 찾기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그림이 대학원 진학 이외에는 그려지지 않았던 상황이었기에 더 감동적이었던 것이죠.

장애 당사자의 장애가 겉으로 드러난다면 쉽게 장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가 아니라면 장애를 설명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첫 칼럼에서도 잠깐 이야기를 했었지만 제 장애도 직접 고백하지 않거나 발달장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사리 제가 장애인임을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인터넷으로만 만나는 사람이라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는 더욱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장애는 숨길 수 없습니다. 장애인이 아닌 척 할 수는 있겠지만, 옛 말에도 있듯이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제가 최근에 읽었던 책의 마지막 장 제목도 “조금 덜 아닌 척 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발달장애 당사자들도 자신에게 발달장애가 있음을 당당히 말해도 좋은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다가왔습니다. 이제 입을 열어 내가 발달장애 당사자임을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말해봅시다.

제가 윈터에게 말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저와 태평양을 마주보고 있지만 하여튼 윈터의 미수다 출연을 계기로 친해진 엄연한 인터넷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면, 제게 윈터가 그랬듯이 따뜻하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이제 당당히 말하세요. “사실, 저 발달장애가 있어요!” 라고 말입니다. 다만, 그것을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핑계로 삼아서는 안되겠지만요.

그런데, 만약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듣는 사람이 이것을 알고 무시하거나 차별한다면, 그런 사람은 당신과 함께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일 것이니 상대를 할 필요가 없고 있는 그대로의 당사자 특징을 이해하고 차별 없이 대할 때까지 상대하지 말거나 심각하게 무례함을 저질렀다면 경찰이나 국가인권위원회등을 통해 대응하시면 됩니다.

최근에 화제가 된 인물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녀’라고 말해야 하는데, 한 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정도로 유명한 운동선수였던 '케이틀린 제너'라고 불러야 하는 그녀는 최근에 담담히 여성으로 성전환 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그녀는 유명인사이기는 하지만, SNS의 대표주자인 트위터에서 팔로우 100만 명을 개설 4시간 만에 모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놀라운 기록인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개인 트위터를 열었고 10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지만 걸린 시간은 그녀보다 1시간정도 더 걸렸다고 하네요.

그런 그녀의 첫 메시지는 “오랫동안 정체성을 찾아 방황한 끝에 내 진정한 모습으로 살 수 있게 돼 행복하다. 케이틀린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러분이 나를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였습니다. 성 정체성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었습니다.

이에 화답하듯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당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라는 격려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마치 제가 발달장애 당사자임을 고백하고 윈터가 따뜻하게 받아들여줬듯이 말이죠.(주: 트위터는 어떠한 언어라도 14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메시지가 짧습니다.)

하여튼, 발달장애를 가진 당사자들도 이제 자신이 발달장애인임을 고백해도 되지 않을까요. 죄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발달장애는 발달장애 당사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크고,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정체성이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발달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도 좋은 대상은 교육기관 교사, 당사자가 일하는 회사의 동료와 관리자, 연인, 친한 친구, 종교 지도자, 상담사, 사회복지사, 가족과 자주 만나는 친척, 모임 활동을 함께 하는 동료 등 자신의 삶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대상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옮겨보겠습니다.

- 한국어 번역본 (제가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다음 Europa Universalis 카페의 디버터님이 번역해주셨습니다. 디버터님의 동의를 얻어 전체 내용을 소개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디버터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항상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바로 신은 실수를 하지 않으며(실패작을 만들지 않으며) 당신은 행복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특별하고 고유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이들이 타인의 유약함을 조롱하고 폭행 혹은 험한 말로 상처를 주는 까닭은 바로 그들이 그들 자신의 부족함과 완벽하지 못함을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워하기에 그 사실을 직면하기 보다는 남들에게 그 화살을 돌리는 것이 더 쉬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바로 자기 자신, 즉 자기 자신의 행복과 사랑하는 것들을 영위하며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입니다. 이것들만이 당신이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당신의 태어난 곳, 선천적인 특성 또는 다른이들이 당신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순 없습니다. 당신이 자신의 장애를 떳떳하게 제게 밝히는 그 용기가 자랑스럽습니다.

단언컨데 당신은 당신의 신체적 약점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걸 느끼게 하고 그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장애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당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지극히 정상인 것이지요! 괴롭힘에 굴복하지 마시고 매번 굴욕감을 느낄 때마다 당신의 슬픔, 분노를 당신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키는 불꽃으로 삼길 바랍니다.

- 영어 원문

What is important to remember always, is that God doesn't make mistakes, and you are a special unique person deserving of love and happiness. When people make fun of someone for a weakness, or when hurts someone in some way, whether by beating them up, or by taunting them, they do it only because of fear of their own inadequacy, they do it because deep down, they are scared that they too aren't perfect, and rather than focusing on their own issues, it is easier to direct them outwards, towards another.

Best thing to do is to just keep on being you, be yourself, be happy, be unique, do the things you love and focus on individually being the best person you can be because that is the only thing you can control. You can't control where you were born, what you were born with, or how people treat you. I am proud of you for telling me about your disorder.

It is important and I bet, you can use your illness in someway to help someone else out, to make them feel not so alone. What you have is not unique---there are a TON of kids like you---you are perfectly normal! Don't let the bullying get you down and every time you feel defeated, use your sadness, use your anger as a fire to make a change in the world.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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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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