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4월 20일은 돌아왔습니다. 올해도 장애인의 날 기념식은 열릴 것이며,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자들이 발표될 것이며, 기념식장 밖에서는 420공투단의 집회와 구호 제창이 있을 것임을 장애계에 끼어 있는 저조차 압니다.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 시절(2005년 3월 ~ 2008년 2월)에는 4월 20일을 기분 나쁘게 바라봤습니다. 사연인즉슨 이렇습니다.

사실 제 생일은 12월에 있습니다. 그러나 애들은 4월 20일만 되면 제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막상 장애 당사자였던 저는 “왠 뚱딴지 같은 소리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들은 그 때 통과되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뭔지도 몰랐고(만약 수능이나 학교 시험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소재로 한 문제가 나온다면 재빨리 공부했을 것이라 짐작되지만), 심지어는 그 이전부터 장애인 사회가 제기했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던 때였습니다.

물론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통과 사실을 기뻐했었고, 그 사실을 특수학급 선생님께 전해드렸을 정도였고, 장애인 이동권 구호가 제기되었다는 사실도 장애인 활동가들의 지하철 점거 투쟁을 통해 거꾸로 알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 장애인의 날 행사라고 연 것은 특수학급 공개 행사와 장애인 이해관련 글짓기 대회를 빼면 하나도 없었습니다. 특별히 주목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집시다.” “장애인 차별은 인권침해행위입니다.”(그 때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있었습니다.) 같은 가정통신문도 나눠주지 않는 등 교육현장에서는 장애감수성을 가질 수 있는 교육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혁신학교다 뭐다 해서 그런 것이 어느 정도 줄었다고는 하지만 학교는 입시위주의 교육만 진행하다보니 장애인 이해에 관한 교육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구석도 일부 존재하였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국제적 기념일이기도 한 노동절(저는 근로자의 날을 노동계의 표현을 따라서 노동절로 표기합니다)에 노동에 관한 교육도 안 하는 등 기념일 계기 교육은 그저 학교 공문에만 존재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보건복지부도 장애이해 교육 지도안을 내려보낸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장애인개발원(이하 개발원) 근무 시절 2번이나 봤지만 두 해 모두 똑같은 지도안으로 가르치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개발원 업무를 보다보니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만날 수 있었는데, 제가 생각이 짧아서 이제야 지도안을 조금씩 다르게 해야 한다고 지적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만큼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식 수준은 TV 코미디에서 사회현상을 풍자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거기서 거기’라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을 되짚어 볼 수 있기도 하죠.

문제는 4월 20일이 되었을 때, 애들이 4월 20일을 어떻게 대했는가도 생각해보면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논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4월 20일이 '장애인의 생일’이라고 했으면 ‘생일’답게 행동해야 했지만, 사실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4월 20일을 ‘장애차별철폐투쟁의 날’도 아닌 ‘장애차별합리화의 날’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 날도 때리고, 욕하고, 모멸주는 그러한 행동은 반복되었습니다. 생일상을 차려오라는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을 정도로 말입니다.(듣자하니 요즘은 생일상을 차려오라는 척하면서 가정 경제를 파괴하는 신종 학교폭력이 있다고 하니 그것이 참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그들 중, 반성한 친구는 한 명 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것도 훗날 잠실야구장에 야구경기 응원하러 갔다가 집에 들어가기 일보 직전에 만난 한 친구가 직접 말 한 것이 그나마 고마웠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대화를 한 40분 이상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프라이버시상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제게 “이제야 네가 했던 말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수교육법상 장애학생, 즉 특수교육대상자 중에는 전체의 절반 이상이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들일 정도로 발달장애인이 많고, 비중도 지체장애를 가진 학생의 5배가 넘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그만큼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은 학교에서 만난 발달장애인들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심지어는 발달장애와 정신장애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있다 해도 별도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의 문제로 해결할 문제를 발달장애인인 제게 뭐라고 했던 그 날을 생각하면 학교 내의 장애 감수성은 극히 낮다는 결론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나마 몇몇 대학에서는 신입생 교육 중 하나로 장애학생 인권교육을 실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습니다.(제가 다닌 학교는 지금은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입학할 때는 안 했습니다.) 게다가 몇몇 대학은 장애 유형별 장애대학생 지원 방침에 관한 지시가 내려온다고 하는 점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만큼 학교에서도 장애학생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학생들의 인식이 변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시되기는 하지만요.

요즘은 장애인의 사회 투쟁을 통하여 장애인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잘못되었음을 대중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렇긴 해도 발달장애는 그 당사자가 발달장애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사나 장애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 학생들이 ‘장애인의 날’조차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을 듯합니다.

저는 이제야 4월 20일과 화해할 수 있지만, 4월 20일은 장애인의 생일이 아닙니다. 4월 20일생인 장애인이 아닌 이상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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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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