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인 근대건축관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이 곳은 한국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가 설계해 1922년에 준공한 은행건물이다. 근대건축관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묘사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의 강제 수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2008년 보수와 복원과정을 거쳐 근대건축과 은행관련 자료 및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의 역사인 ‘경술국치’를 추념하기 위한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근대건축관은 착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근대문화제 답지 않게 승강기도 설치돼 있어 건축관을 둘러볼 때 자유롭다. 건축관 마당엔 유치원에서 소풍 나온 아이들이 해맑은 웃음을 토해내고 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구령에 맞춰 큰소리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한다. “참새~ 짹짹!! 통닭~ 삐약삐약!! 오리~꽥꽥!!”아이들이 재잘대는 모습은 흡사 노란 병아리들이 햇볕 잘 드는 마당에서 암마닭을 쫒아다면서 세상을 익히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자연의 모습이다. 답답한 교실 내 교육보다 살아서 꿈틀대는 현장중심의 싱싱한 교육이야 말로 진정한 교과서일 것이다.

문득 지금의 자유가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숱한 아픔을 이겨낸 근대 역사 에서 거저 얻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생을 다한 선조들이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맑게 웃어대는 저 아이들에게 부끄럼 없이 물려 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점심 때가 지난 듯하다. 배도 고프고 잠시 쉬었다가 다음 행선지로 갈 채비를 해야 했다. 스탬프 투어 벨트에 묶인 코스 중간에 휠체어 접근 가능한 식당이 있지만 그 곳을 뒤로하고, 군산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을 먹기로 했다.

여행은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의 유래를 알고 먹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일부분이다. 어떤 여행에선 먹기 위한 여행일 때도 있어 각자가 지향하는 여행의 취향대로 여행하면 된다.

군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맛, '이성당 빵집'으로 갔다. 이성당 빵집은 1920년 군산시 중앙로 1가에 ‘이즈모야’라는 제과점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곳은 일본 시네마현 ‘이즈모시’의 지명에서 그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한국으로 이주한 ‘히로야 야스타로’라는 일본인이 이성당의 첫 주인이었다.

당시는 찹쌀 과자의 일종인 아라레와 일본식 전통 과자를 만들어 팔았다. 1930년대 후반 일본 정부는 이즈모야를 군인들이 식사 할 수 있는 식당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해방과 동시에 군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서둘러 돌아가야 했고 그들이 남기고간 자리에서 이성당 빵집이 시작됐다.

이곳의 최초 사업주는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 후 이성당 이란 상호를 가지게 됐다. 이성당 빵집을 찾아 걸어가는데 백 미터 전방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이성당 빵집이란 걸 짐작 할 수 있었다.

단팥빵과 야채빵 나오는 시간이 따로 있어 그 시간만 되면 줄이 길게 늘어선다. 한 시간 정도 줄을 서도 차례가 올지는 모른다. 한참동안 줄서기를 하다 너무 배가 고파 빵은 나중에 먹기로 하고 물짜장부터 먹기로 했다.

물짜장은 군산시민이 추천해 준 음식이다. 여행객은 군산에 오면 복성루 짬뽕 먹고을 꼭 간다지만 군산시민들은 물짜장을 추천한다. 근대역사건축관 관리인도 추천해주고 장애인 콜택시 승무원도 추천해준 메뉴다.

“우리 군산사람들은 복성루 짬뽕보다 물짜장을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물짜장이 훨씬 맛있거든요, 짬뽕은 방송타고 나서 외지인들이나 와서 먹는 거고 군산사람들은 국제반점 물짜장을 주로 먹어요, 거긴 탕수육도 맛있어요. 그리고 거긴 턱이 없어서 휠체어 장애인들이 식당 안에 들어갈 때 편할 걸요”

사람들이 일러준 대로 국제반점 물짜장을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엔 팔십년대로 세월이 멈춰 있었고, 군산의 명소라고 쓰인 ‘항도장’ 여관과 목욕탕 건물이 발길을 붙잡는다.

‘항도장’ 여관은 작은 건물에 여관과 목욕탕까지 함께 운영하는 대중탕이다. 지금은 대중목욕시설이 기업화되고 현대화된 대형 사우나의 찜질방 형태지만 ‘항도장’ 목욕탕은 삼십년 전 목욕탕 풍경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

항도장을 보니 어릴 때 엄마 따라 목욕탕을 처음 간 기억이 난다. 당시 나이는 여섯 살 쯤으로 기억한다. 추석이나 설날이 다가오면서 엄마 손에 이끌려 때빼고 광내러 목욕탕엘 처음 간 것이다. 처음 본 목욕탕 내부는 신기하기만 했다.

반질반질한 하얀 타일이 벽면과 바닥에 깔려있고 어른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온몸을 구석구석 문지르고 있었었다. 한쪽에선 때수건이 오갈 때마다 굵은 국수발 같은 때가 쑥쑥 밀려나오면서 내 또래 아이가 울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가정집에 목욕시설이 갖춰진 곳은 드물었다. 목욕탕이 없다보니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거나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 실컷 물놀이 하고나면 나중에서야 엄마가 때를 밀어주는 것이 목욕의 전부였다.

겨울엔 연탄불 위에 물을 끓여 부엌에서 목욕을 하곤 했고, 어느 겨울은 그나마도 하지 않고 겨울을 나곤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특별한 날이 다가오면 목욕탕을 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빨래거리를 보자기에 싸서 일년에 서너번 목욕탕을 가기 시작했다.

목욕을 하면서 가져간 빨래까지 몰래 하고 큰 행사를 치르듯 묵은 때를 벗겨냈다. 그러고 나서는 명절을 쇠며 조상님께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냈다. 나의 목욕탕 출입은 그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항도 목욕탕을 보니 어릴 때 목욕탕이 간 기억이 생생하다. 목욕탕에 대한 추억을 뒤로 미뤄놓고 바로 앞에 있는 국제반점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국제반점은 이성당 빵집에서 가까웠다. 작고 소박한 국제반점은 군산 시민들이 추천해준 것처럼 진입 문엔 턱도 없고 내부도 입식 테이블이어서 휠체어 접근이 편리했다.

식당 안은 도심의 중국집에서 느낄 수 없는 추억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물짜장과 탕수육을 시키고 식당 안을 천천히 살펴봤다. 벽엔 붉은 색으로 치장했고 영화 ‘타짜’에서 고니(조승우) 와 고광열(유해진) 국제반점에서 만난 사진과 타짜 “신의 손”촬영 장소를 알리는 액자가 걸려있다. 신의 손만이 아니다.

식당주인은 영화 촬영장소였던 국제반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밖에서 보기엔 평범한 중국집이지만 맛으로 승부해서 군산시민들에게 인정받는 것 뿐만 아니라 영화촬영 장소와 음식 프로그램에 소개된 자랑이 늘어진다.

잠시 후 물짜장과 탕수육이 테이블 위에 차려진다. 물짜장이라고 해서 국물이 있는 면을 생각했다. 하지만 물짜장은 탕수육 소스처럼 하얀 소스에 면을 넣었다. 맛은 탕수육 소스와는 전혀 다른 맛이지만 기존에 먹어왔던 춘장을 쓴 짜장면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면발은 짜장면발 그대로이고 탕수육 소스에서 설탕을 빼고 소금간해 면을 비벼먹는 맛이다. 배가 고파서인지 맛은 더 여느 짜장면보다 더 맛있는 것 같다. 게다가 탕수육도 일품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맛있고 유명한 음식은 많이 먹어본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과 탕수육, 부산역앞 차이나타운 탕수육, 그리고 우도의 흑돼지 탕수육까지 내가 먹어본 탕수육을 맛을 꼽으라면 세 군대 맛이 가장 좋았다.

그 중에서도 우도 흑돼지 탕수육은 내 입 맛에 맞아 제주여행 갈 때 마다 탕수육을 꼭 빼놓지 않고 먹는다. 그런데 군산 국제반점 탕수육도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맛이 좋다. 아니 우도 흑 돼지 탕수육과 우열을 가르기 힘들 정도로 맛이 있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먹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 유명한 먹거리나 토속 음식을 먹어보는 맛 여행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맛여행이란 상품까지 있을 정도니 지역마다 특색있는 먹거리는 여행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자연환경에 따라 음식의 발달정도가 다르고 같은 음식이라도 지역과 기후에 달라지기 때문이다. 배가 부른데도 자꾸 탕수육에 손이 가고 다 먹고 나서도 자꾸 생각날 것 같았다. 배가 부르니 기분은 더 좋아졌다.

국제반점을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해망굴이 나온다. 등록문화제로 해망 굴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그저 평범한 터널이지만, 일제 식민지 시절 수탈의 기지가 된 군산 초고의 호황을 누리던 무역항이다.

당시 군산 내항과 시내를 연결하려고 만들어진 터널로 군산항 3차 항구 구축공사기간이었던 1926년에 건립된 터널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식민지 시절 상처로 가득한 군산은 역사의 아픔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 반대편 쪽으로 가봤다. 반대편은 수산물센터 사거리다. 이 곳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진행 중이다. 새로 건물이 들어서기 하고 기존에 있던 허름한 건물에서 생선을 고르는 손길이 분주하다.

해망 굴은 여름철 무더위 쉼터로도 지역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다. 한여름 더위를 피할 곳으로 안성맞춤인 곳이 터널만한 곳이 없는 듯하다. 산을 뚫어 길을 냈으니 시원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이다. 해망굴을 다시 나와 초원사진관으로 걸어갔다.

초원사진관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주인공 한석규가 일하던 곳이다.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정원’ 한석규는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 심은하를 만나게 되고 차츰 평온했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밝고 씩씩하지만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스무 살 주차 단속요원 ‘다림’은 단속 차량 사진의 필름을 맡기기 위해서 드나들던 사진관의 주인 ‘정원’ 한석규에게 어느새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지금 영화 속 초원사진관에는 여행객이 드나들고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젊은 한석규와 심은하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카메라와 사진이 귀하던 시절 동네 사진관에 누군지도 모르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으면 왠지 부럽기도 했다. 가족이 다 같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이다.

초원사진관엔 추억의 이동 사관도 있는 것 같았다. 80년대 초만 해도 이동하는 사진관이 동네를 돌며 사진을 찍어줬다. 리어카에 배경 그림을 싣고 의자와 꽃 장식을 한 채 동네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이동 사진관을 졸졸 따라 다녔다.

그러다 사진이라도 찍게 되면 뭐가 그리 반가운지 제일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배경 의자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바로 현상되는 것이 아니어서 며칠 있다가 사진사가 가져다준다.

그 때 사진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초원사진관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이번 여행은 문득 마음이 먼저 움직여 준비도 없이 그냥 떠나왔다. 그냥 떠나온 군산여행은 추억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

•가는 길

용산역, 수원역에서 장항선 무궁화호 3호칸 이용, 요금 복지할인 적용 왕복 1만 2천 원

군산역에서 장애인 콜택시 등록절차 후 이용 063-471-8187

•먹거리

역사벨트 동선 안에 있는 복성루 ‘물 짜장’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1945년생 이성당 빵집, 단팥빵, 야채빵

•장애인화장실

근대역사 박물관, 근대 건축관, 진포해양공원,

•문의

휠체어 배낭여행,

http://cafe.daum.net/travelwheelch

근대 건축관. ⓒ전윤선

이성당 빵집. ⓒ전윤선

이성당 빵. ⓒ전윤선

해망 굴. ⓒ전윤선

초원 사진관. ⓒ전윤선

초원 사진관 안. ⓒ전윤선

복성루. ⓒ전윤선

복성루 탕수육. ⓒ전윤선

복성루 물짜장. ⓒ전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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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칼럼니스트
여행은 자신의 삶을 일시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천차만별이지만 일상을 벗어나 여행이 주는 해방감은 평등해야 한다. 물리적 환경에 접근성을 높이고 인식의 장벽을 걷어내며 꼼꼼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돈 쓰며 차별받지 않는 여행, 소비자로서 존중받는 여행은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모두를 위한 관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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