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Braille)는 시각장애인의 문자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눈으로 글씨를 보지 못한다. 또 연필이나 펜으로 글을 쓰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오랜 세월 동안 시각장애인은 자신의 생각이나 말을 기록으로 남길 수 없었고 문자에 의한 기록이 점차로 중요해지기 시작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사회 진출이나 직업능력이 현저히 떨어졌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측면이다.

그러던 중 19세기 프랑스의 시각장애인 루이 브레일은 당시 프랑스 군대에서 야간 통신문 작성 암호를 이용하여 오늘날의 6점자를 고안했다.

19세기 프랑스 군대에서는 불빛이 없이도 작성하고 읽을 수 있는 야간 통신 암호로 12개의 점을 활용한 문자를 개발했는데 루이 브레일은 이를 파리 맹학교에서 공부하던 중에 처음 접하게 되었다.

막상 쓰는 방법과 읽는 방법을 배우고 보니 문제가 있었다. 점이 12개 세로로 긴 방향이다 보니 읽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인지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루이 브레일은 상대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고 인지하기도 쉬운 형태의 점을 고안하기 위해 실험한 결과 세로로 점을 3개씩 가로 두 줄을 배열하는 오늘날의 6점자를 고안하게 되었다.

이렇게 고안된 6점자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점자에서 각종 부호의 활용 빈도가 높아지면서 세로로 네 개의 점을 가로 두 줄로 배열하는 8점자의 활용도 일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 점자 외에 시각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문자는 없는가? 답은 “아니다”이다. 실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보스턴 선형 문자, 뉴욕 점자 등 다양한 양각 문자의 체계들이 개발되고 활용되었으며 이들은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지만 실용성 면에서 6점자에 뒤떨어져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점자를 읽기 어려운 시각장애노인이나 심한 당뇨를 가진 시각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피쉬본 (Fish-bone)이라는 양각 문자도 있다.

피쉬본은 생선 뼈와 유사한 모양으로 알파벳을 표기하는 방식인데 선과 점의 조합이다. 미국에서는 이 양각 문자를 이용하여 출판되는 도서는 전무하며 영국에서 일부 도서가 이 피쉬본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한글 점자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1926년에 발표한 훈맹정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훈맹정음의 우수성은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되는데 첫째, 한글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살려 독특한 체계로 개발한 것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사례인데 소리에 기초하여 표기하는 훈민정음의 체계를 점자로 거의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 일본어 점자의 경우 점자로 히라가나만 표기할 수 있으며 중국어 점자의 경우 한자를 표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간체나 번체의 필기체만을 점자로 표기하는 것에 비해 획기적인 것이며, 대다수 국가들이 자신들의 문자 없이 알파벳을 소리나는 대로 쓰는 것처럼 점자도 알파벳 점자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비해 독창적인 것이다.

훈맹정음의 우수성은 6점자를 채용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실제 6점자 보다 4점자가 먼저 보급되었고 보급된 점자 역시 지역별로 상이하게 활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송암 박두성 선생은 이를 6점자에 기반한 단일한 표기법으로 정리하여 훈맹정음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들이 6점자를 활용한 한글 점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끝으로 훈맹정음에 기반한 한글 점자는 기계화가 용이한 과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근 점자 도서 제작은 점자 인쇄기에 의한 수동적 방식이 아니라 컴퓨터 프린팅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과정이 전자 문서로 작성된 도서를 점역 가능한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브레일링이라고 하는데 한글 점자는 한글의 과학적 체계를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브레일링 과정이 용이한 문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에서는 이미 1990년대 초반 컴퓨터에 의한 점자 문서의 제작이 현실화 되었으며 잡지나 도서의 제작에 점자 프린터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

한글 점자의 우수성과 자국 언어 및 문자 체계에 맞는 점자 개발의 경험을 국제협력에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그것이 오늘날 점자에 관한 국제협력의 과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자국 언어를 점자로 표현할 수 있는 국가는 매우 많다. 물론 그 보다 많은 수의 언어가 점자로 표기되지 못하고 있다.

점자를 활용하더라도 언어 자체의 고유성을 무시한 채 그냥 영어 점자를 소리나는 대로 기록하는 방식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점자를 더 많은 지역에 살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보급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점자가 보급되면 스스로 우리의 훈맹정음과 같은 고유의 점자 체계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은 매우 길고 지루하며 많은 비용적 부담을 유발한다. 때문에 재정 능력이 없는 장애인 당사자 단체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재정은 동원할 수 있으나 점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국제협력기관들은 우리의 이러한 생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지 않는다.

덴마크의 Danish Foundation은 자국의 시각장애인 당사자 단체와 협력하여 재개발국 시각장애인의 역량강화를 위한 사업에 연간 상당한 액수의 예산을 집행한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올해 몽골이 지원국으로 선정되어 직업훈련, 재활교육 등의 목적으로 다년간 5만 달러 가량을 지원받는다.

이러한 사례는 장애인 관련으로 확대하면 더 많이 나타나는데 일본의 JAICA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장애인 관련 국제협력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제2차 아태장애인10년과 관련하여 태국 방콕에 APCD를 설립하고 그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아직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지원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으며 최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이 KOICA에 장애 관련 국제협력을 목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는 중에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추진되어 온 국제협력의 주류가 이미 견고하고 심심치 않게 국제협력사업을 빙자하여 국가 예산을 유용, 전용, 횡령한 사례들이 많아 정부 예산을 배분하는 공공기관들이 이 분야에 대한 관리가 엄격하다는 문제도 있다.

관리가 엄격하니 선정 단계에서부터 엄한 잣대를 가지고 심사하고 교육이나 연수와 같이 실적을 증명하기 어려운 사업, 구호품 지원이나 물건 보급과 같은 단순 지원사업의 경우 선정되기 어렵다.

오히려 학교나 병원을 건립하거나 종자를 보급하면서 재배기법을 교육하는 형태의 지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패턴을 이해하고 장애인 관련 국제협력을 계획하는 민간단체는 패턴에 부합하는 형식의 사업을 개발할 필요가 있고 국제협력을 지원하는 공공기관 역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식으로 엄한 잣대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보다 탄력적인 사고에 기반하여 효율이나 효과, 가시적 성과 등의 평가기준이 아닌 사업이 가지는 무형의 가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사업 등은 일정한 비율을 정하여 지원할 필요가 있다.

11월 4일은 점자 기념일이었다. 점자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점자보급을 생각했고 점자보급을 생각하다 보니 국제협력사업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처음 점자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아무도 점자를 문자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활용하여 교과서도 만들고 자신의 생각이나 말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이러한 사실들이 오늘날 시각장애인의 역사가 되었고 각종 보조공학기기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을 만들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말을 기록으로 남겨 인류 문화유산으로 만들 수 있도록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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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준 럼리스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이자 아시아태평양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이다.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유엔 에스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세계 장애인계의 동향, 뉴스를 소개하며 시사점을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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