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경으로 기억한다. 스웨덴의 삼할 (Samhall)이나 영국의 렘플로이 (Remploy)와 같은 장애인다수고용사업장에 대한 논의가 한참이던 시절이 있었다.

종전의 장애인고용 정책이 고용부담금과 장려금으로 단순화되어 있고 민간기업에 장애인 고용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어 그 대안으로 제시된 대안이 바로 장애인다수고용사업장이었다.

당시 앞서 언급한 사례 외에도 일본의 특례 자회사, 미국의 굿윌 (GoodWill), NIb (National Industries for the Blind), NISH (National Industries for the Severely Handicapped) 등 매우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었다.

이들 장애인다수고용사업장들은 나름의 특성과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최종적으로 표준화 사업장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2006년 이후 장애인다수고용사업장에 대한 논의는 거의 사그라졌는데, 논의가 막바지에 이르게 된 결정적 원인들이 있다.

첫째는 렘플로이나 삼할이 실패한 모델이라는 소식이 전해졌고, 둘째 표준화 사업장이라는 형태로 다수고용사업장 모델이 정책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장애인 고용은 나름대로의 발전을 해 왔다. 공공분야를 포함하여 장애인 채용 인원도 늘었고 의무고용율도 상향 조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의 실업률은 비장애인의 그 것보다 높고 장애인 근로자들의 평균임금은 도시 근로자 평균임금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장애인들이 고부가가치 직무에 종사하기보다는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장애인 고용에 대한 노력이 아직 2%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장애인다수고용사업장들 중 미국 사례들은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이 여전히 실패하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이유를 살펴보고, 얼마 전 방문했던 스페인 온세재단 (ONCE Foundation)에서 운영하고 있는 세탁공장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장애인 다수고용사업장의 나아갈 바에 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굿윌은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가게'라는 이름으로 도입되어 우리나라 기부문화 확산과 민간사회복지자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의 굿윌과 아름다운 가게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굿윌이 장애인의 일자리 제공을 목적으로 처음 시작되었다면 아름다운 가게는 자원의 재활용을 목적으로 아바나다 (아껴쓰고 바꿔쓰고 나눠쓰고 다시쓴다)라는 절약 정신을 실천하고 물품의 판매수익을 사회공헌에 활용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굿윌의 주요 사업이 여러 가지 자원의 재활용, 기부 물품의 판매 등인데, 그 일을 장애인이 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단순한 방식으로 아름다운 가게와의 차이를 이해하면 무난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굿윌의 경우 사회적 기업 (Social Enterprise)의 형태로 생수 등의 재화를 생산하기도 하고 메트로 레일(도시간 통근열차의 일종) 등의 좌석 시트나 커튼을 세탁하는 용역 서비스도 운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굿윌과 유사하게 장애인들이 생산과정에 참여하거나 서비스 제공에 참여하는 장애인 중심기업협동조합이 바로 NIB나 NISH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장애인생산품의 우선구매가 이들 장애인 중심기업들과 관련 있다.

과거에는 이 우선구매 프로그램을 JWOD 프로그램이라고 했는데, 이는 우선구매를 규정한 법률의 이름 Javits-Wagner-O'Day Act에서 기인한 것이다.

동일한 프로그램이 최근에 AbleOn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국민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미국 장애인생산품우선구매위원회 (The Committee for Procurement from People who are Blind or Severely Handicapped)에 따르면 최근 정부 및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는 조달 외에도 민간의 소비 수효가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 최대 조달물품 생산자인 교도소에 대한 의회의 인식이 나빠지고 있어 NIB나 NISH의 전망이 밝다고 한다.

좀 더 부연하면 미국 의회는 우선구매에 있어 1순위를 부여하고 있는 교도소는 법을 어긴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고, 2순위인 NIB나 NISH는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므로 순서를 바꿀 필요도 있다는 주장이 있다.

여하튼 미국의 장애인다수고용 사례들은 재활용이 하나의 소비문화로 정착된 미국의 특성을 잘 이용하거나 엄청난 구매력을 가진 공공분야의 조달에 우선권을 가지고 참여함으로써 아직도 훌륭한 장애인다수고용 모델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제 새로운 장애인의 다수고용 모델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부럽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사업장이 운영되고 있으니 거짓말이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는 장애인 중심기업이 스페인에 존재하고 있다.

스페인 온세 사람들은 이 사업장을 '훈도사'라고 부르는데, 하나의 사업장이 아니라 여러 개의 사업장을 기업집단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주된 사업 내용은 세탁공장인데, 그 운영방식이 종전의 그 것과는 상이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은 훈도사의 세탁공장 사례를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완전경쟁 시장에서 훈도사의 세탁공장은 승승장구 하고 있다. 훈도사 관계자에 따르면 스페인 전체 세탁물 용역 시장의 약 30% 정도를 훈도사에서 처리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공장을 방문해 보니 완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 있었다.

우선 세탁공장에서 자체 연구소 (Laboratory)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연구소에서는 세탁물에 가장 적은 영향을 미치면서 빨래가 잘 되는 세제에 관해 연구하고, 어떤 직물이 어느 정도의 자극에 마모되는지 또는 어느 정도의 물리적 자극에 찢어지는지 등을 연구한다.

또한 표백제를 사용하지 않고 표백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도 연구하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 이렇게 직물이나 세제에 관해 연구하는 것은 세탁공장의 서비스가 단순히 세탁물을 받아서 빨아 주는 것이 아니라 호텔이나 병원 등에서 사용되는 침대 시트, 베개 커버 등을 용역방식으로 서비스 하고 있었다.

즉, 수건이나 시트, 그리고 베개 커버는 실제 세탁공장의 소유이고 호텔이나 병원에서는 세탁된 물품을 받아서 사용하고 다시 보내는 용역 서비스를 이용하는 조건으로 일정한 비용을 세탁공장에 지불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세탁공장에서 연구하는 내용은 결국 어떤 감이 가장 좋은 커버나 시트가 될 수 있는지, 어떤 감의 수건이 가장 세탁하기 좋은지 등을 연구하여 비용절감은 물론 사용하는 시트나 수건의 품질을 최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또한 연구소의 연구결과는 세탁 공정에서 세탁물을 어떤 방식으로 건조하고 다려야 하는지도 결정한다.

건조나 다림질에 있어 물리적 방법과 화학적 방법을 모두 사용해야 하므로 시트나 수건이 파손되지 않게 잘 말리거나 다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찾아낸 결과물은 그대로 현장에 적용되고 비용절감, 서비스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 사업장은 대형병원과 대형 호텔 체인에 침대 시트, 베개 커버, 수건을 용역방식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중증 장애인들이 90% 이상 종사하고 있지만 완전 경쟁 시장에서 충분히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중증의 장애인들을 절대 다수고용하고도 이 공장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전략은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이다.

세탁물의 이동부터 마지막 정리까지 90% 이상의 공정이 완전 자동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장애인들은 무거운 세탁물 바구니를 옮길 필요도 없고 세탁기에 세제를 넣을 필요도 없다. 세탁이 끝난 시트를 정리할 필요도 없고 수건을 말릴 필요도 없다. 거의 대부분의 공정이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된 자동화 시스템이다.

장애인들은 그저 반복적이고 단순한 작업 가령, 세탁 바구니가 실린 카트를 밀거나 세탁이 끝나 정리되어 나오는 시트나 수건을 바구니에 옮겨 담는 정도의 작업만 수행해도 공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고 100여명의 근로자가 일하는데 100만 유로 (105억원 정도)의 자금이 들어간다고 말한다.

공장의 시설물 또한 장애인들의 재해를 막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공장에서 만난 관계자에 의하면 통상적으로 700만 유로가 작업장을 만드는데 필요하지만 자신이 일하는 작업장의 경우 그 보다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다고 말했다.

최소한 1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딱히 변화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사업장에 장애인다수고용을 목적으로 얼마나 투입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었다.

끝으로 안정된 판로를 확보하고 있었다.

훈도사 그룹 세탁공장에서 거래하는 호텔은 스페인 최대 규모의 호텔로 약 40여개 호텔을 보유하고 있는 체인이라고 한다. 또한 이 호텔은 모두 6성급의 호텔들이다. 병원 역시 대형병원으로 일반 세탁물이 아닌 병원 세탁물이라는 특성에 의해 부가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우선구매 제도의 도움을 받거나 재활용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모델과 달리 스페인의 장애인다수고용 모델은 이미 시장경제 속에서 완전 경쟁 체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부담하고 연구소의 운영과 같은 자구 노력으로 스페인은 지금까지 알려진 모형 중 가장 건전한 장애인다수고용 모델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미국의 모형이 불건전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다만, 장애인의 생산품이 완전 경쟁 상황에서 원활하게 생산되고 판매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너무 부럽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표준화 사업장 한 곳에 지원되는 예산과 세탁공장 하나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도 들었고, 서울시내 아니 수도권에 소재한 6성급 호텔을 모두 모아도 20개도 안될 상황에서 6성급 호텔 40여개에 세탁물을 공급하는 스페인의 세탁공장을 우리나라에서 상상할 수 있을까?

장애인에게 더 높은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여 고부가가치 직종에 진출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결국 누구나 쉽게 그리고 안정된 환경 속에서 일할 수 있는 다수고용사업장과 같은 형태의 장애인 근로 현장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필요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다수고용사업장에 대한 지원은 아직 초보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자동화 시스템의 도입을 통한 원가 및 노동 강도 절감은 장애인에게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설비 투자를 통한 작업공정의 개선은 생산되는 재화나 용역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 온다.

이러한 노력이 집약되어야만 장애인의 안정된 다수고용사업장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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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준 럼리스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국장이자 아시아태평양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 부회장이다.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위한 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유엔 에스캅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세계 장애인계의 동향, 뉴스를 소개하며 시사점을 살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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